나는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싶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올렸더니 조회수가 0이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검색에 노출이 전혀 되지 않아서인지, 검색한 사람들에게 선택받지 못해서인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 게시글이 AI가 쓴 글처럼 보였던 걸까?’
쇼핑몰에 특가로 뜬 가방이 실제로 어느 정도 크기인지, 재질이 어떤지, 코디하기 좋은 가방인지 궁금해서 네이버에 검색해 봤다. 검색 결과로 상단에 뜨는 게시글은 모조리 AI로 쓴 글이었다. 내돈내산 실제 후기가 아니라, AI로 만든 여자가 가방을 들고 있는 사진을 쓴 AI 게시글들. 나는 기어이 시간을 들여 내돈내산 한 가방 사진이 담긴 ‘수제’ 게시글을 찾아 클릭했다.
내가 쓴 글의 조회수가 0에서 1로 바뀐 것도 ‘직접 찍은 책 사진’ 덕분이었다. 서점 사이트에서 가져다 쓴 책 표지 사진을 지우고, 직접 찍은 책 사진으로 바꾸어 올렸더니 생긴 변화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점 사이트 상세페이지의 책 내용을 긁어 쓴 AI의 글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읽고 쓴 글이 읽고 싶은 거다.
400권의 책을 쓴 작가...?
지난 9월 웹소설 플랫폼 리디북스는 AI 웹소설 때문에 논란을 겪었다. 자가출판 이북 플랫폼 '유페이퍼'를 통해 유통된 AI 웹소설들이 무더기로 리디북스에 등록되어 이용자들이 불만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한 명의 작가가 십여 권의 웹소설 단행본을 한 달 안에 썼다면 AI가 썼다고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작가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AI로 전자책을 쓰는 강의 홍보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정말로 AI로 웹소설을 써서 유통까지 시킨 것이다.
AI로 수많은 책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작가의 목적은 ‘글 쓰는 나의 즐거움’이나 ‘독자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다. ‘독자에게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짧은 기간 안에 최대한 많은 책을 만들어 유통하고 한 푼이라도 더 버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AI로 돈을 벌어보고 싶은 이들에게 강의하는 것.
누가 봐도 AI가 만든 것 같은 비슷비슷한 표지에 제목만 바꿔가며 쏟아낸 수많은 책들. AI 티가 듬뿍 나는 작가의 그 많은 책은 결국 리디북스에서 판매 중단되었다. 리디북스에 올라왔던 작가의 소개 글은 이랬다.
400권 작가 ㅇㅇㅇ입니다. 20년 동안 미용실을 운영하며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왔어요. 매일 주어진 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며 살아가던 삶은 책을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을수록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고, 어느 순간 직접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이하 생략)
‘AI로 전자책 내기’ 강의를 하는 저자가 과연 자기소개 글을 직접 썼을까? 만약 직접 썼다고 할지라도 읽는 사람은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자신의 블로그에도 수많은 글을 매일 기계적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저자가 썼다는 400권의 전자책은 웹소설과 작법서, 동화책, 자기계발서까지 장르도 다양했다. 이런 책들이 대량으로 쏟아지면 사람들은 옥석을 가리기보다 ‘읽지 않기’를 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읽고 싶은 글을 직접 씁니다
AI 블로그 자동화로 클릭 한 번에 월 몇 백을 번다고? AI 웹소설을 써서 월급보다 더 벌 수 있다고?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읽고자 하는 사람은 적다. ‘글로 돈을 버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차라리 유명해지고 나서 글을 쓰는 게 글로 돈을 버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돈 안 되는 글을 오래 쓰며 살아가려면 글 쓰는 사람의 ‘자기만족’이 중요하다. 내 글의 첫 번째 독자인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나는 아직 AI가 쓴 글에서 어떠한 만족감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직접 쓸 수밖에 없다.
나는 비평과 에세이, 소설을 직접 쓰고 있다. 독자인 나 역시 '작가가 직접 쓴 글'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조금 서툴고 뾰족하고 비문이 있을지라도 글을 쓴 사람이 느껴지는, 전달하고자 하는 욕망이 보이는 글이 좋다. 클릭을 유도해서 돈을 벌겠다는 욕망만이 가득한, 온갖 광고를 덕지덕지 달고 있는 AI 글이 아니라.
* 사진 :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한 장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내글구려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한다. 그런 주인공에게 친구가 "아직은 실력 없는 작가가 아니야. 처지 한탄은 그만하고 형편없는 뭔가라도 써. 엉덩이 떼고 글을 쓰란 말이야"라며 조언을 해준다. 그 스틸컷이 내 핸드폰 배경화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