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덜컹이면서도 나아가는 글쓰기

글 입력 2024.02.1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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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열며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인지, 자신의 글이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서로의 독자가 되어주는 모임이다. 글을 쓰는 방식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많다. 우리는 함께 쓰고, 함께 읽고, 고민을 나누고,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을 고른다.


나는 이런 기회를 맞아 타인의 글을 깊이 있게 읽어나가고 나의 글을 톺아본다. 그러자 나의 글에도 여기저기 비어있는 부분이 보이고, 동시에 타인의 글쓰기에서 발견한 조각으로 채워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함께 갖는다. 내 안에만 갇혀 있을 때에는 알 수 없던 것이 내 세계 밖에 있는 것으로부터는 아주 쉽게 단서를 찾을 수 있는 때도 있다.


그러니 어쩌면 다른 이들도 나를 통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듯 나의 글쓰기를 통해서도 어떤 조각을 얻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간단하게 적어본 글쓰기에 대한 규칙과 짧막한 생각들을 나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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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독성을 높이는 법

 

나는 모든 글이 꼭 잘 읽혀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술술 읽혀나가는 글이란 어떤 면에서는 칭찬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지독하고 냉소적인 비판이 되기도 한다. 때때로 나는 오히려 너무 쉽게 읽어내려가지는 글을 미워한다. 내가 저에게 준, 시간이라는 나의 한정적이고 유일한 가치를 아까워한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글이란 무릇 컨베이어 벨트처럼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종종 그 속에 숨겨진 강력한 인식이 내 뒷통수를 후려치거나, 문장의 아름다움에 의해 멈춰서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예컨대 심미성과 실용성을 모두 갖춘 디자인과 같은 것을 글에서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잘 읽혀나가는 글이란 나에게 있어 보통 그리 좋은 글은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잘 읽히기만 하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물론 어려운 글이 더 좋은 글이라는 뜻은 아니다. 너무 쉽고 나태한 글을 경계한다고 해두면 적당할 것이다.


그러나 가독성은 독자에게 글이 가닿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내용의 전문성과 인식의 심오함 그리고 형식적이나 미학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가독성을 방해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잘 읽히지 않는 글이란 정확하지 않은 글이고 기술적으로 심각하게 미달된 글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적어봤다. 이미 널리 알려진 기본적인 내용이기도 하지만 글을 쓸 때 신경쓰기가 은근 까다롭고 마음처럼 잘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에세이 같은 유형의 글에서는 완벽히 부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논설문이나 소개하는 글에서는 참고하기 괜찮은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짧게 정리한다.



<가독성을 위한 참고사항>


글을 쓰기 시작하며: 글을 쓰기 전에 방향-개요가 있어야한다. 제재(글의 중심이 되는 재료, 글의 소재)를 기반으로 주제를 명확히 정하고 글의 뼈대-구조를 잡아두면 표현을 덧붙이고 살을 붙여 글을 완성했을 때도 균형잡힌 글이 된다.

 

- 글의 구조: 글이 두괄식(주제문과, 서론을 초반에 제시)일 때 가독성이 높아진다. 미괄식이라면 초반에 흥미를 끄는 내용이 들어가야 하고, 문장과 문단들이 연결성 있게 전개되다가 뒷부분 핵심까지 다다라야한다. 서론-본론-결론으로 구조화하여 내용을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분량을 균형있게 구성하면 좋다. 

 

- 글의 문단: 문단 역시 두괄식이면 도움이 된다. 한 눈에 내용이 파악되는 글일수록 읽기 편해진다. 가독성을 위해 문단을 짧게 나누는 경우에는 문단끼리 연결, 확장되어야 한다. 반대 내용이라면 접속사가 적절히 쓰여야 한다.

 

- 글의 문장: 문장이 지나치게 길어서 모호해지지 않아야 하고, 도치법 등 수사법은 적절하게 쓰여야 한다. 적절한 접속사와 긴 문장이 문체나 글의 맛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짧고 명확한 문장이 더 쉽게 읽힌다.

 

글의 단어: 단어 선택이 정확해야 한다. 형식적 미학이나 내용의 표현적 정확성 없이 불필요한 전문용어나 사어를 사용하면 가독성에 방해가 된다.

 

- 글을 마무리하며: 글을 살펴봤을 때 문단이 구조적으로 적절한 양과 논리적 내용을 가지고 쌓여있어야만 하고, 문단을 한 줄씩 요약해서 봤을 때 글 전체의 개요가 되어야 한다. 글을 시작할 때와 반대로 역기획하듯, 글을 개요로 요약하는 과정이 도움이 된다.  주제에서 벗어나거나 늘어지는 문단과 문장은 과감히 정리한다.

 

 

***

좋은 문장을 찾는 법


좋은 문장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하고싶은 말을 적절히 정리하고, 개요를 짜고 구조적으로 들어날 내용을 정리해도 결국 그 의미를 전달해나가는 것은 문장들이다. 아름다운 문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강력한 힘이 있는 문장, 정확한 의미를 가진 문장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문장은 찾는 것이다. 그러니 뻔하게도 많이 읽어야 한다. 좋은 문장, 아름다운 문장의 정의는 모두 다르겠지만 많이 읽어보고 나서야 스스로 좋은 문장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문장은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돌림판을 돌리듯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들을 계속해서 조합해보며 찾아나가야 한다.


같은 의미를 다양한 문장으로 표현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랑한다는 말을, 그립다는 말을, 슬프다는 말을 하나의 문장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동어반복은 글을 지루하게 하고 한정된 지면을 낭비하게 만드니, 지지부진하게 반복하지 말고 힘있게 전개되어야하고 필요하다면 다양한 문장과 표현으로 계속 변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좋은 문장이 모인다고 해서 다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제가 명확하고 개요를 잘 정리해두었어도 좋은 문장을 찾아내지 못하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마치 외국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하고 싶은데 선뜻 입을 열 수 없는 것처럼. 하고싶은 이야기는 그저 가슴속에 품어두고 알고 있는 몇가지 조악한 영어로만 대화를 시도하는 순간처럼. 많이 읽고 고민하면서 언어의 재료를 쌓아두지 않으면 모국어에서도 그와 같은 순간을 겪게 된다.

 

글과 언어에 대한 감각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자주 사용할 때 더 세밀해지고 자유로워진다. 책을 읽지 않고, 깊이 있는 대화를 하지 않고 일상적인 삶만을 살아가다 보면 언어는 쉽게 거칠어지고 사유 역시 그 언어에 갇혀 함께 좁아지기 시작한다.

 

나는 한 번에 10권 가까이 병렬독서를 하는 편인데, 그 중에는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책을 꼭 한두 권씩 섞어둔다. <사피엔스>라든지, <코스모스>라든지, 아니면 <정의는 무엇인가>처럼 제목은 익숙하지만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책들. 종종 전공책도 섞여있다.

 

다른 책들의 목록이 몇 바퀴 바뀌어서야 겨우 한 권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책들을 조금씩 읽으면 세계가 확장되고 사유가 깊어지고 언어의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있는 책, 인문사회쪽을 전공했다면 과학책을, 공학쪽을 전공했다면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시집을 읽는 것도 언어를 활용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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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닫으며

 

이 모든 것들이 중요하지만 계속 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잘 읽히는 글도 좋고 아름다운 문장도 좋지만 글을 읽고 쓰고 고민하는 순간 자체가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간다. 책상에 홀로 앉아 마음속에 담긴 마음들을 언어로 정리하고, 글을 쓰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순간들은 내가 가장 포기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시간이라는 형태로 분할납부 하고 있는 거라면, 시간을 쓰는 행위 자체는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 걸까. 소중한 만큼 효율을 따지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그 시간동안 꼭 대단한 것을 이루지 않아도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에 시간을 쏟는 행위 자체가 의미를 가지고 가치를 만들어낸다.


글을 통해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충분하다. 시간이 바뀌면 휘발되고 변화하고 말 생각들과 지금의 나를 남겨두는 것 자체도 의미있다. 견딜 수 없는 감정들을 뱉어내고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하는 글쓰기도 의미있다. 많이 적지 못하더라도 글쓰기라는 행위에 나의 시간을 주는 것도 의미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은 보편타당한 것이겠지만 가독성이 좀 나쁘면 어떻고 글이 좀 별로면 어떤가. 다들 계속 썼으면 좋겠다. 쓰다보면 좋아질 것이다. 별로인 글은 있어도 별로인 글쓰기는 없었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힘주어 적자면 글쓰기는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간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일단 쓰자. 우리 함께.


엊그제는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최근 몇 달은 정말 살만하다고 느꼈었는데, 또 무언가 견딜 수 없어져서 일기장을 꺼내들었나. 나의 글은 많은 부분 무언가를 견디기 위해서, 더 나은 것을 꿈꾸기 위해서 쓰여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사건들을 지나오고 나서도 쓰고, 책을 읽어도 일단 쓰고, 잘 모르는 공연을 보고도 일단 써보려 한다.


나는 그렇게 덜컹이면서도 나아가는 글들을 사랑한다. 덜컹이면서도 나아가는 글쓰기는 삶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훌륭한 글들은 질투하지만, 투박하지만 솔직하게 써내려가는 글들을 애정한다.  삶에서도 그렇다. 그러니 나는 계속해서 그냥 쓴다. 덜컹이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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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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