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야기를 파는 극장, 무비랜드 [공간]

글 입력 2024.04.1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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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무비랜드 (MOVIE LAND) 에 다녀왔다. 성수의 콘크리트 골목 골목을 타고 들어가다 보면, 이 작지만 알찬 공간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인데 사실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여기는 정확히 뭘 하는 곳일까.

 

 

 

모베러웍스, MO BETTER WORKS


 

모베러웍스 (MO BETTER WORKS)라는 브랜드가 2년의 준비기간을 끝마치고 2월 29일에 정식으로 오픈한 소규모 영화관이다. 모베러웍스를 알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나의 최측근이 유튜브를 보여주며 '내가 하고 싶던 모든 것들을 이미 하고 있는 분들이야' 라고 소개해 준 적이 있었다. 꼭 영상을 보라는 그의 외침을 기억하여 불 꺼진 침대에서 영상 몇 개를 돌려보았던 기억이 있다.

 

["모베러웍스는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유쾌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제품을 만드는 것에 앞서 '일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과 경험을 만듭니다."]

 

'A Little Joke For Free Workers', 모베러웍스는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유쾌한 메시지를 전한다. 라인프렌즈 브랜드 디자인팀에 속해있던 모춘과 소호가 퇴사하여 새로 창립한 브랜드로, MoTV 유튜브를 통해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하고, 그 모든 과정을 공유한다. 위클리 플래너, 수납 박스와 같은 굿즈 제작은 물론이고, 직접 원고를 쓰고 출판한 책 <프리워커스>의 제작 과정도 영상으로 세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극장을 만들자는 아이디어, 무비랜드 개관은 이제껏 진행한 프로젝트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OTT 시장의 놀라운 성장으로 인해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조차 큰 위기를 맞이한 이 시점에서, 소규모 극장이라-.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될 수 있지만, 그들은 '돈이 되는 것', 흔히 말해 사회가 정의한 '성공'을 쫓지 않는다. ASAP (As Soon As Possible)을 비틀어 'ASAP (As Slow As Possible)'을 슬로건으로 내건 것처럼. 그저 하고 싶고, 재밌어 보이고, 마음이 가는 것을 천천히 지속할 뿐이다. 왜 극장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극장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모두 영상에 담겨 날 것 그대로 전달된다. 성수동에 있는 20평짜리 구옥 주택을 직접 철거하고, 모두 다시 짓고 인테리어 하나하나 신경 써서 가구를 들이며. 그들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또 다시 만들어낸다.

 

 

 

무비랜드라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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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난 무비랜드. 인테리어의 'ㅇ'자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무비랜드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느낌이 좋았다. 곳곳에 잔뜩 묻어있는 아메리칸 빈티지 무드가 즐거웠다. 나무라는 소재 자체가 주는 그 아늑함과 일상성, 그럼에도 너무 가볍지 않도록 톤 다운한 컬러감과 약간의 유광 처리가 주는 세련됨이 좋았다. 무비랜드의 마스코트인 새를 문양으로 한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은 후, 직접 사인펜으로 체크해서 주는 영화 티켓을 받는 순간까지. 그 어떠한 작은 순간에서조차 그들의 고민과 정성이 느껴졌다. 극장 안에서 발생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경험이라면, 그 경험의 모든 모서리에까지 최대한으로 뻗고자 하는 그들의 손길이 와닿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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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movieland.archive_ 최지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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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movieland.archive_ 최지훈 작가

 

 

1층에는 굿즈샵과 스낵샵이 있고, 2층에는 대기 공간과 화장실, 3층에는 상영관이 있다. 각각의 공간에 맞춰 3가지의 페르소나를 내세운 아이디어가 귀엽다. 기념품을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수집하는 Trash Collecter, 영화를 보러온 건지 먹으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의 Snack Killer, 그리고 입이 근질근질해서 도저히 스포일러를 하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하는 Heavy Spoiler. 흔히 떠올리는 시네필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모습으로 페르소나를 내세운 것은, 극장을 찾는 손님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 귀여운 세 가지의 페르소나는 굿즈샵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라이터, 모자, 스티커 및 와펜부터 그 자리에서 직접 그래픽을 골라 실크 스크린으로 찍을 수 있는 티셔츠와 가방까지. 무비랜드 극장의 감성을 듬뿍 담아낸 굿즈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핫도그와 츄러스는 바로 전에 돌체라떼를 마시고 온 탓에 맛 보지 못했지만, 다 써버린 라이터를 대신할 멋진 새 라이터를 들고 귀가할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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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올라가면, 감각적인 휴식 공간이 펼쳐진다. 관객들의 눈을 심심하지 않게 달래줄 스크린과 모베러웍스만의 취향이 잔뜩 묻어있는 오브제들. 입체감이 훌륭한 책꽂이는 정중앙에 놓여있어도 될만하지만, 자유롭게 앉을 수 있는 입술을 닮은 긴 의자에게 자리를 빼앗겨버린 듯하다. 곳곳에 놓여있는 새를 연상케 하는 오브제와 입술 의자는 '마음껏 이야기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스토리가 없는 오브제들이 없을 정도로, 무비랜드는 이야기투성이이다. MoTV 유튜브 영상을 꼼꼼히 본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친근하게 느껴질 만한 공간이기도 하다.


무비랜드에 가면 화장실은 꼭 들려야만 한다. 사진으로 남길 순 없었지만, 좋았다. 극장 전체적인 분위기와 유사하지만, 좀 더 짙은 원목을 써서 그 프라이빗함을 돋보이게 했달까. 독특했던 핸드워시의 사용법이 쓰여있던 것도 기억난다. 화장실은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공간이지만, 가장 사적인 공간이 아닌가. 난 어딜 가도 화장실의 인테리어에 유독 신경이 쓰인다. 이상한 버릇인 것 같은데, 화장실이 예쁘면 기분이 좋달까. 그렇게 잔뜩 기분이 좋아진 채로 3층 상영관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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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늦게 입장한 탓에 상영관 구석구석을 살필 수 없어서 아쉬웠다. 단지, 의자가 유독 편했고 자수로 박혀있는 좌석번호가 예뻤고 자리가 넓어서 좋았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구경하다가 시선이 벽면을 타고 내려오면 'TO BE CONTINUED' 라고 쓰인 문구와 글자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가 눈에 들어온다. 모베러웍스의 마스코트 '모조'. 왜 굳이 '새'를 마스코트로 정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문자(message)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상영되는 오프닝 영상들도 무비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마음껏 보여주고 있었다. 앞서 보았던 세 가지의 페르소나를 적극 활용하여 무비랜드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종이의 질감을 포인트로 살려서 아날로그함과 빈티지스러움을 내세운 트레일러였다. 뒤이어 상영되는 행동 수칙 안내 또한 재밌었다. '영화가 지루하다면, 언제든 자도 된다!'라는 독특한 에티켓은 그들이 어떤 극장을 만들고 싶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선정하는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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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랜드 극장의 상영작은 구작이다. 그리고 매달 바뀐다. 첫 달 3월의 상영작은 모베러웍스 브랜드 창립자 모춘이, 그리고 4월의 상영작은 코미디언 문상훈이 직접 선정했다. 큐레이터를 누구로 할 것인가, 그리고 큐레이터가 어떤 영화를 선정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고 한다. 이윤이나 상업성을 고려하기보다는, 그저 모베러웍스 팀이 '궁금해하는' 인물이 큐레이터가 되고, 그 큐레이터가 '좋아하는' 영화가 선정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문상훈이 선정한 4가지의 코미디 영화 중 유독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행오버 (HANGOVER), 2009>였다. 되돌아보니, 정말 '재미' 있는 코미디 영화를 만나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믹한 요소를 긴 시간 동안 끌고 가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고, 웃기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너무 터무니없는 스토리는 몰입을 깨기 때문에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이 까다롭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내가 본 코미디 영화 중 가장 재밌었다. 웃음의 포인트를 강요하지 않은 영화였달까. 무비랜드에서 본 첫 영화답게 영화조차 무비랜드다웠다. 어쩌면.... '이곳에서' 봐서 재밌었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 그것을 내가 어쩌면 이미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집에서 OTT 서비스를 통해 혼자 침대에 누워서 <행오버>를 봤더라면, 이렇게 재밌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1층에서 라이터를 사고, 2층 화장실에서 감탄하고, 그렇게 얻은 설렘을 안고 상영관에 입장하여 사람들과 같은 포인트에서 웃음을 공유하는 경험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들의 브랜드가 특별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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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브랜드는 스토리이다. 물론 모든 브랜드, 더 나아가 모든 '것'들에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모든 상품이 서사성을 품고 있고, 역사성을 갖고 있지만 그것들이 곧 브랜드를 형성하진 않는다. 다시 말해 스토리텔링은 브랜드 이미지 메이킹의 큰 부분을 차지함이 분명하지만, 그 스토리 자체가 상품이 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베러웍스는 그 정체성이 곧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판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로써 그들의 상품 형태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들이 판매하는 것처럼 보이는 형태의 것은 책이 될 수도 있고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어느날은 자전거가, 혹은 식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사실 팔고 있는 것은 책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다. 이제껏 상품을 담는 그릇이 이야기였다면, 이제는 상품이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 된 것이랄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비랜드는 무엇이 무엇을 담는다는 선후관계가 명확한 개념보다는.. 그저 상품이 곧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무비랜드 라디오 프로젝트를 떠올려보면 그들의 방향성을 더 잘 엿볼 수 있다. 시각적인 자료가 차고 넘치고, 필요한 정보만을 빠르게 전달하는 숏폼이 트렌드의 선두를 이끌고 있는 요즘. 라디오는 생소하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어려운 이야기의 형태라고까지 느낀다. 직관적으로 표현되는 영화, 줄글이 눈으로 보이는 책, 정적이지만 여전히 가만히 존재하는 그림. 그러나 라디오의 '말'은 바로바로 날아가버린다.

 

그럼에도 라디오를 택한 그들. 그럼에도 긴 대화와 무편집의 40분을 택한 그들. 그들의 방향성은 가장 본질에 가까운 접근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브랜드들과 쏟아지는 자극적인 컨텐츠들 사이에서 결국은 근본적인 것들이 빛을 발할 것이다. 흔히들 사람 냄새라고 하지 않냐. 사람과 사람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관계성, 소비자는 결국 상품을 만드는 사람과의 상호작용과 감정적인 교류가 잔뜩 묻어있는 것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어질 것이다.

 

모베러웍스 브랜드 창립자 모춘은 '1000명이 1번 오는 곳 보다, 100명이 10번 오는 곳'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영화가 끝난 후, 다양한 색깔로 프린팅 되어있는 포스터 중 주황색을 골라 들고선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나도 그 100명 중 한 명이 되어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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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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