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홀로 마주한 토론토 [토론토 여행기- ep.2] [여행]

글 입력 2024.03.2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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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의 여름이 이렇게 좋다는 걸 왜 아무도 안 알려준 거야


 

캐나다를 간다고 하면, ‘단풍국’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가을 여행을 추천한다. 하지만 나는 여름의 토론토를 권하고 싶다. 20도 안팎의 선선한 날씨, 따스하게 내리쬐는 태양 빛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맑은 하늘이 사람을 참 기분 좋게 한다. 장마와 태풍으로 정신없던 한국의 8월, 나는 토론토에서 ‘기분 좋은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날씨가 워낙 좋았기 때문인지 토론토에서 인상적이었던 곳들은 대게 자연과 가까이 있었다. 여행 중 세 번이나 방문했던 곳은 온타리오 호수를 볼 수 있는 하버프론트였다. 하버프론트까지 가는 길도 잊을 수 없다. 탁 트인 거리와 저 멀리서 보이는 호수, 그리고 가까이 갈수록 점점 시원하게 불어오는 호수 바람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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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프론트에는 온타리오 호수를 감상할 수 있는 벤치가 죽 늘어서 있는데, 이곳에서 사람들은 호수를 바라보며 사색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함께 온 이와 이야기도 나눈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온타리오 호수의 잔잔한 파도를 바라봤다. 토론토 아일랜드까지 향하는 페리와 페리에 탄 사람들도 구경했다. 별 건 아니지만 날씨 좋은 날, 호수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금방 행복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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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아가라 폭포를 즐기기에도 여름이 좋다. 토론토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반 정도 달리면 나이아가라 폭포에 도착한다. 맑은 하늘 아래 경이롭게 떨어지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볼 수 있고, 날씨가 좋기에 나이아가라 폭포 전망대 근처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 깊숙한 곳을 들어가는 유람선도 굳이 탄다면 여름에 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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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아가라 폭포는 그것을 다 보기 위해서만 40분 이상을 꼬박 걸어가며 구경해야 할 만큼 컸다. 나는 전망대에서 폭포를 구경하다, 나이아가라 폭포 속으로 들어가는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유람선을 타기 전, 제공해 준 우비를 입고 한국에서 가져온 방수팩 안에 휴대폰을 넣었다.

 

유람선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멀찍이서 바라봤던 나이아가라 폭포 깊숙한 곳으로 조금씩 들어갔다. 멀리서 봤을 땐 몰랐는데 폭포 소리가 엄청 우렁찼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폭포수가 강하게 몰아치며 사람들을 덮쳤다. 어찌나 몰아치던지, 나중에는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 정도였다. 폭포수가 나를 거세게 때리는데, 폭포수를 맞으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다. 어린아이들은 엉엉 울기도 했다.

 

거대한 자연 앞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한다. 참고로 한화 약 4만 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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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아일랜드로 피크닉도 갔다. 한국에서 워홀 온 친구 두 명과 함께였다. 토론토 아일랜드는 토론토 근교의 섬으로, 하버프론트에서 20분 정도 페리를 타고 가면 나온다. 거대한 나무로 둘러싸인 울창한 숲과 꽃밭, 바다 등 섬 곳곳에서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볼 수 있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벤치도 많고,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 곳도 있어 피크닉에 제격이다. 우리는 벤치에서 미리 사 온 간식들을 꺼내 먹고, 툭툭과 유사한 3~4인용 자전거를 빌려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중간에 위치한 거대한 그네를 타보며 어릴 적 추억에 젖어 깔깔대기도 했다. 토론토 여름 피크닉은 정말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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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값 주고 구매한 값진 고생


 

여행하면 고생도 빠질 수 없다. 타고난 길치와 방향치인 나는 거의 모든 곳에 갈 때마다 길을 헤매거나, 버스를 잘못 탔던 것 같다. 하지만 길을 잃었기 때문에, 정해진 길로 갔다면 보지 못했을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도 했다. 카사 로마로 가는 길을 헤매다가 마주한 공원도 그랬다. 이름도 모를 그 공원이 카사 로마보다 더 아름답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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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겪는 식품 알레르기로 고생하기도 했다. 삼 일차 저녁, 숙소 근처 베트남 쌀국수 집에서 저녁으로 쌀국수와 함께 새우 월남쌈을 시켰다. 새우 월남쌈 하나를 다 먹자마자 갑자기 목이 엄청나게 마른 것 아닌가. 입술이 따갑고 가려운 느낌도 들었다. 전형적인 알레르기 반응이었는데 나는 식품 알레르기가 없다.

 

알레르기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잡화점, shoppers drug store에 갔다. 그곳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레르기 약을 샀다. 그날 저녁에는 물을 엄청나게 마셨는데, 그 이후로 더 심한 반응이 있지는 않았다. 별 일 아니었지만, 의지할 곳 없는 먼 해외에서 난생 처음으로 식품 알레르기 반응을 겪자 머리가 새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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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발에 불이 나도록 많이도 걸었다. 길을 잃고 헤매고, 다시 찾아가기를 반복했다. 식품 알레르기로 고생하기도 했다. 중간중간 불친절한 사람들, 약에 취해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도 만났다. 그래도 이 모든 상황을 혼자 마주하고, 나름대로 해결해 나가며 대담해졌다. 내가 지닌 가능성을 봤다.


혼자 여행은 나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준다.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물론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늘 불안에 떨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낯선 곳을 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그곳에서 막연히 걱정하고 불안해했던 일들을 마주하고, 해결해 가며 뭐든지 부딪히면 되는 일이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에서, 사소한 경험과 성취가 쌓이며 얻게 된 가능성에 대한 확신은 여행 이후에도 내 일상을 지켜내는 힘이 되었다. 캐나다에서 혼자 일주일 동안 있으면서 이런 일도 겪어봤고, 저런 일도 해결해 봤는데, 이것도 해보자, 저것도 할 수 있을 거야 하면서.

 

 

 

세상이 넓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작가 레베카 솔닛은 그의 저서 <멀고도 가까운>에서 세상이 크다는 사실이 구원이 된다고 말했다. 스무 살 때 그 글을 읽을 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나도 세상이 크다는 사실이 왜 구원이 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좁은 세상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세상은 무지 크고 넓다. 내가 경험해 온 세상은 그 넓은 세상의 극히 일부분이다. 그러니 그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이치를 절대적인 진리로 삼거나, 내가 속한 세상에서 겪는 걱정과 고민에 잠식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언제든지 그 작은 세상을 박차고 더 큰 세상으로 향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의 걱정과 고민이 너무나 작아 보이는, 그것을 더 이상 붙들고 있지 않아도 되는 탁 트인 드넓은 세상 속으로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쉽게 가르쳐주는 것이 여행이다.


토론토를 일주일 동안 여행하며 느낀 것도 이런 것들이었다. 세상이 참 넓구나,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전부라 믿고 그곳에서의 고민에 매몰될 필요가 없구나. 그래서 내가 속한 세상이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에 크게 개의치 않기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로, 삶과 세상을 너무 많이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여행을 계획했으며, 그동안 미뤄왔던 교환학생을 준비했다. 탁 트인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보자.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여전히 ‘스펙 경쟁’이 치열하고, 어쩌면 나는 그곳에서 뒤처진 자일지 모르겠으나 그 세상이 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알기에 상관없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좋은 스펙을 쌓아 그럴듯한 직장에 하루라도 빨리 취직하고, 나의 생산적인 삶을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기 위해 쫓기듯이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여유롭고, 한가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 삶을 채워 나가려 노력한다. 어떤 일이 더 재미있을까, 어떤 일이 더 행복할지 고민하면서.


내 가능성을 믿으며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싶다. 그래서 더 크고 드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런 삶을 지향하게 된 것, 그것이 토론토 여행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친구에게 받은 프레스토 카드는 친구가 일하는 곳의 동료가 토론토 길바닥에 떨어져 있던 카드를 주워 온 것이라고 한다. 때마침 내가 올 시기였기에 친구는 그걸 나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토론토 길바닥에서 쓸쓸히 버려져 있던 그 주인 없는 카드는 그렇게 친구에게로, 또 나에게로 왔다. 일주일 동안 토론토 여행을 함께한 그 프레스토 카드는 지금 한국에 있는 나의 자취방에 고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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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프레스토 카드를 보며 언젠가 다시 토론토에 가볼 수 있을까, 생각한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혼자 갔던 그 토론토를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어 그때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후 다시 가보고 싶다. 토론토 길바닥에서 우연한 기회로 머나먼 한국으로 오게 된 프레스토 카드를 보고 있자니, 앞으로 내 삶에서 마주칠 수많은 우연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어떤 세상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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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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