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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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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시 「오감도」는 1934년 발표된 이래 오늘날까지도 잊을만하면 화제가 되는 문제작이다. 원래는 『조선중앙일보』에 30회 연재될 예정이었으나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 편지와 전화로 15회까지만 실리고 연재가 중단된 바 있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오감도 시제1호」에는 '제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라는 시행이 띄어쓰기도 없이 열세 번 반복된다. 지금 읽어도 여전히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행들은 독자를 불안하게 한다.

 

창작집단 공놀이클럽은 이 괴상한 시에서 두 가지 키워드를 읽어냈다. 바로 '두려움'과 '어린이'다. 다양한 해석을 잠시 미뤄두고 시 자체만 읽어보면 13인의 아해가 무섭다고 외치며 도로를 질주하는 풍경이 보인다. 이 아해들은 과연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공놀이클럽은 이 질문에서 시작해 오늘을 살아가는 실제 어린이들과 만났고, 공동창작의 방식으로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를 만들었다.


크게 13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연극에서 어린이들은 각자 자신이 무서워하는 것을 털어놓는다. 집이나 학교, 부모님 등은 어린이가 무서워할 거라고 쉽게 예상되는 한편, '태어나는 것'이나 '꿈', '나'는 허를 찌른다. 두려움은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의 마음에 똬리를 튼다. 꼭 물리적 위협만 두려운 것은 아니다. '제2의 아해도 달리기 무섭다 그리오'에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격려가 오히려 큰 압박감으로 다가간다. '제3의 아해도 부모님 무섭다 그리오'에서 부모가 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끝없이 되뇌는 '너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될 거라는' 축복이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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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어른들이 자랄 때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들이 어린이를 위협하기도 한다. '제7의 아해도 스마트폰 무섭다 그리오', '제8의 아해도 아이돌 무섭다 그리오'에서는 오늘날 사회 병폐가 날카롭게 드러난다.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서로 비교하는 게 일상이 된 세상에서는 어린이들도 아무렇지 않게 주식이나 아파트 브랜드 이야기를 입에 올리고, 자극적인 쇼츠에 빠져 SNS에서의 관심을 갈망한다. 이런 장면들은 '그래도 어린이는 아직 순수할 거'라는 어른들의 막연한 희망을 깨뜨린다. 이들은 어른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어른보다 세상의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다.


'제11의 아해도 노키즈존 무섭다 그리오'에서는 공연 중 객석과의 공놀이를 금지당한 어린이들이 다른 어른 배우들과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자기 의견을 말한다. 진지한 말투로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는 모습에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곱씹어보니, 적절한 웃음이었는지 조금 반성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린이가 등장하는 작품에서 어린이가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의젓한 태도를 보내면 관례적으로 웃곤 한다. 그런 반응 자체가 우리가 은연중에 어린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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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통념과 달리, 기억을 더듬어 어린이였던 때를 떠올려보면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진지한 문제와 논리가 있었다. 그중 어떤 것들은 어른이 되어도 그대로 마음속에 남아 우리를 지탱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와 어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어린이가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모습을 간직한채로 나라는 존재가 조금씩 변해간다.

 

이 연극에서도 그러한 연결성을 강조하며 어린이를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존재'가 아니라, 어른을 '시간이 흐른 어린이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어른이 아닌 어린이를 기본값으로 두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 배우들은 어린이의 세계를 위협하거나 어린이를 이끄는 부모님 또는 선생님의 역할을 넘어서, 후반부로 갈수록 어린이 중 하나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이들과 함께 무대를 누비며 두려운 것을 털어놓는다.


어른과 어린이의 연결성은 마지막 장면인 '제13의 아해도 나 무섭다 그리오'에서 분명해진다. 여러 개의 문 앞에서 무엇을 택해야 할지 몰라 난처한 어린이 앞에 키높이 신발을 신고 뒤뚱거리는 한 남자가 뛰어든다. 어린이는 그가 미래의 자신임을 곧 눈치챈다. 어른이 된 자신은 무엇이든 알고 있고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며 반가워하지만, 어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미래가 두렵고 선택은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자라서 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막다른 골목에 선 것처럼 막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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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이 연극은 내가 나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얻게 되는 자유가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네가 나이고 내가 너라면, 과거에 웅크린 사람도 나고 미래에 나를 기다릴 사람도 어차피 나다. 우리는 그 사이를 오가면서 주어진 인생을 살면 된다. 질주해도,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것은 「오감도 시제1호」의 마지막 행이기도 하다. 조그만 자유를 깨달은 아이들은 저마다 기합과 함께 자신 앞의 문을 열어젖힌다. 문을 열고 무대를 뛰어다니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기운이 난다.


많은 관객이 작품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봤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어린 나는 걱정도 많고 쉽게 불안해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늘 무언가를 확인받고 싶어서 부모님을 귀찮게 했는데, 그렇게 얻어낸 답변은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그때 내가 정말로 듣고 싶었던 말을 이제는 안다. 크면 안 그럴 거다, 앞으로는 괜찮아질 거라는 말 대신 "지금, 그래도 괜찮다"라는 말이었다.

 

어른들의 말과 달리, 현실은 어른이 되어도 무섭고 이상한 것투성이다. 그래도 괜찮다. 무서우면 무서운 대로 이상하면 이상한 대로. 오늘의 어린이에게 필요한 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어린이는 어제의 우리니까.

 

 

*사진: 공놀이클럽, 이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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