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동아연극상 3관왕 수상
죽어서 집이 되어버린 사람,
그 안으로 찾아온 기적같은 사랑의 이야기
마음이 평평하다 이내 울퉁불퉁하다, 매끈매끈해 보이는 심장의 촉감이 꽤나 거칠다. 외딴 숲속, 죽음을 결심한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공간. 그 안으로 찾아온 인물들은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는 신호를 보낸다. 어쩌면 기도, 아니면 비명 같기도 한… 아직 끝내고 싶지 않다는 흔적에 가까운 외침을 부르짖는다. 한없이 약해진 이들의 고백을 기다리는 공간,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키리에]를 만난다.
국립정동극장(대표이사 정성숙)은 2026년 국립정동극장 세실의 첫 기획 작품으로 연극 [키리에]를 선보인다. 2023년 창작ing 공모에 선정되어 정식 무대화 된 [키리에]는 초연 당시, 제60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기상(유은숙), 유인촌신인연기상(백성철)의 3관왕을 거머쥐며 '철학적인 내용이지만 죽음을 보는 흔한 방식에서 벗어나 삶을 관조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한,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작품'이라고 평가받으며 관객과 평단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이번 무대는 창작ing에서 발굴된 공연 중 예술성과 확장 가능성을 시사한 작품을 기획공연으로 발전시키는 네 번째 시도이다. 국립정동극장은 잠재력 있는 작품이 일회성 공연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창작 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끄는 2차 제작극장으로서의 역할을 공고히 하고 있다. 2022년 창작ing 프로그램을 운영한 이래, 극장은 2023년 뮤지컬 [딜쿠샤], 2024년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2025년 연극 [굿모닝 홍콩] 재공연을 올리며 우수한 작품이 긴 호흡으로 관객 곁에 머물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 중이다.
연극 [키리에]는 죽어서 '집'이 된 영혼의 긴 독백으로 시작된다. 독일의 검은 숲 근처, 30대에 과로사한 천재 한국인 여성 건축가의 의식이 깃든 공간. 저마다의 사연으로 '끝'을 소망하는 인물들이 그 안으로 찾아온다. 아픈 남편을 돌보는 전직 무용수, 죽은 반려견의 고향을 찾아 떠난 소설가, 종교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희생만을 배운 성직자, 스스로를 학대하는 교직원 등 각기 다른 에피소드들이 수평적으로 펼쳐진다.
한편, 작품은 사람과 동물, 사물과 장소 등 등장인물/건물을 관통하는 수직성을 지닌다. 기존의 삶으로부터 추방되고 내몰린 자들의 서사는 자신의 가장 아픈 고백이 머무는 곳, 그곳에서 벌어지는 죽음 앞의 '사람' 이야기, 곧 '사랑' 이야기를 함축한다.
[키리에]는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서로를 통해 자기 삶의 기적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려 나간다. 고립된 개인들이 겪는 삶의 고단함을 '의인화된 집'이라는 매개체로 풀어내며, 결핍과 결함을 지닌 인물들이 타인과 교감하며 진정한 사랑을 배워가는 치유의 기록인 셈이다.
[키리에]라는 제목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의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에서 비롯되었다. 본래 카톨릭과 성공회 미사곡에서 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기도였던 '키리에(Kyrie)'는 종교적 색채를 넘어 작품에서 더욱 확장된 의미의 '사랑'을 품은 단어로 다시 태어난다. 신의 긍휼을 구하는 단순한 종교적 의례를 넘어 세상과 타인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구원의 말로 종교의 단어를 빌린 인간의 언어를 가리킨다.
작품명은 이해받고 싶고,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자 살고 싶다는 마지막 기도의 절망과 간절함을 동시에 전달한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자비와 소외된 존재를 품는 너른 마음, 즉 인간이 인간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하고 거대한 사랑의 형태를 '키리에'라는 이름에 담아낸다. 침묵보다 무거운 말. 결국 '키리에'는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채우게 만드는 단어가 된다.
무대 역시 장치를 최소화하고 배우들의 대사 속 촘촘한 묘사와 미세한 감정선을 강조했다. 전인철 연출가는 "특정 공간을 무대 위에 재현하지 않고 배우의 수행성과 그 배우를 통해 발화되는 작가의 텍스트가 전면에 부각 되는 표현을 통해, 모든 관객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연극이 되길 바란다."며 연출 의도를 전했다. 창작ing 초연에 이어 최희진, 유은숙, 백성철, 조어진, 윤경 배우가 다시 한번 무대에 올라 더욱 깊어진 호흡과 밀도 높은 연기로 관객과 사유하는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키리에]는 지난 시즌 한 언론 리뷰를 통해 '꼭꼭 씹어 먹고 싶은 맛있는 대사의 향연이며, 외워 두고 싶은 잠언'이라는 평을 들으며, 올 1월 희곡집(1도씨희곡선)을 발간하기도 했다. 장영 작가는 "나라는 언어가 깨져버린 자리에 스며드는 타자들을 통해 변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히며, "작품 속 캐릭터들의 중층적인 삶의 요소들을 신경 다양성, 퀴어니스, 비인간 등의 관점으로 폭넓게 감각하기"라는 감상 포인트도 전했다.
소외되고 상처받은 존재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가 장영과 동시대의 고민을 무대 위에 올려 주저없이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지는 단단한 연출가 전인철의 또 한 번의 시너지가 기대된다.
국립정동극장 정성숙 대표는 "[키리에]는 언어의 힘이 살아있는 공연이다. 배우들의 치밀한 대사와 행간을 읽어내는 연출을 통해 연극적 경험의 새로움을 증명한 작품이다. 한층 깊어진 시선으로 돌아온 무대를 통해 예술이 지닌 지속 가능한 힘을 함께 경험해 보길 바란다."며 재공연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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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독일의 검은 숲, 죽으러 온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바로 그 숲 근처에 집 하나가 있다.
천재 한국인 여성 건축가가 기존 집을 허물어 다시 설계하고 지은 집이다. 30대 이른 나이에 과로사하고, 그의 영혼이 그가 설계한 이 집에 깃든다. 그의 영혼은 외로운 집에 25년 동안 갇혀서 끝없이 과거의 부족한 기억들을 형벌처럼 곱씹고 있다.
비가 내리는 봄, 엠마라는 60대 한인 무용수가 근육이 굳어가는 전직 무용수 남편과 함께 그 집에 쳐들어온다. 평생 남편의 병간호를 하며 살던 엠마가 남편의 죽음을 연습하기 위해, 혹은 유예하기 위해 외딴 마을에 있는 건축가의 집을 사서 남편과 함께 떠나왔다. 엠마는 이 집을 스스로 죽으러 가는 사람들이 결단의 순간까지 머무를 수 있는 여관으로 만들어 돌보기 시작한다.
엠마의 여관으로 이른 죽음을 결정한 사람들이 찾아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