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일단 글 쓰시오

글 입력 2024.02.1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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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어려운 것은 글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마지막 문장보다는 첫 문장을 쓰는 데 훨씬 많은 공을 들이게 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말머리를 적절하게 꺼내는 것은 다소 신내림과 비슷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가끔 한다. 그러나 이제는 내림을 받기보다 어떻게든 비슷한 결과를 내려 애쓰는 것 같다. 내림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라면, 내가 주로 하는 것은 백 개의 후보 중에 하나 고르기 정도의 것이다.

 

그러나 첫 문장보다 어려운 것은 역시 컴퓨터를 키는 게 아닐까. 운동에 비유하자면 운동복을 입는 것까지, 혹은 헬스장에 갈 마음을 먹는 것까지가 가장 고역인 것처럼. 가끔은 필요에 의해서, 가끔은 의무에 의해서 노트북을 열고 워드나 한글을 키는 것까지가 한나절이다. 그리고 키보드에 손을 얹으면 백지가 그렇게 막막해 보일 수가 없다. 해야 할 말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도 왜 그렇게 머릿속이 엉키는지 늘 의문이다.

 

그럴 때는 하고 싶은 말, 혹은 해야 하는 말을 줄줄이 늘어놓고는 한다. 나는 그것을 ‘문단 바꾸기’라고 부르는데, 일단 말부터 하고 문장이나 문단의 순서를 바꾸어 그럴듯한 덩어리를 먼저 만들어 두는 것이다. 그 덩어리는 당연히 엉망이며, 그래도 된다. 맞춤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음슴체를 써도 되며, 추후 덧붙일 것을 생각하여 간결하게 쓰거나 혹은 소거할 것을 고려해 굉장히 길게 써도 된다. 한마디로 마음대로다. 그렇게 써서 생긴 덩어리들은 얼기설기 얽힌 애매한 문단이 될 것이다.

 

덩어리가 두어 개 생긴다면 이제 주제와 글의 특성을 고려해 문장 내지는 문단을 재배열할 때다. 뼈대를 잡는 과정이 있으면 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기가 쉽다. 이때 이 문장 혹은 문단의 위아래에 어떤 내용이 있으면 좋을지를 대략 채워 넣는다. 애매한 덩어리와 문장들이 혼재한 상태라면 이제 기-승-전-결, 혹은 서-본-결로 그것들을 정확히 나눈다. 이때 덩어리들이 본론에 가장 많이 들어가 있도록 글을 구성한다. 때로는 결론만 엄청나게 길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결론의 핵심 부분만을 결론 문단으로 구성하고 나머지는 본론으로 올리는 것이 좋다.

 

덩어리 혹은 문장으로 글을 구성했다면 이제 그것을 처음부터 쭉 읽는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말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가 맞는지, 혹시 너무 많은 것을 동시에 말하려고 해서 글이 마구잡이로 어지러워지지는 않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주제를 하나로 고정하고 글의 빈 곳을 채워 넣는다면 이제 처음보다는 나은 뼈대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이것으로 글쓰기의 70%는 끝났다. 남은 일은 채워 넣는 것뿐이다. 해야 할 말과 하고 싶은 말을 적당히 섞어 문장을 쓰고, 그를 늘리거나 줄인다. 더욱 완벽한 글을 쓰고 싶다면 퇴고를 하는 것이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한두 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오래 붙잡고 있으면 있을수록 전혀 다른 글이 되기 십상이며 스트레스는 곱절로 받기 때문이다. 퇴고를 할 때 맥락에 문제가 없다면 입으로 소리를 내어 읽어보는 것이 수정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글쓰기 방식은 머릿속에 말이 둥둥 떠다닐 때 가장 효과적이지만 도저히 할 말이 없을 때도 도움이 된다. ‘일단 쓰는 것’이 도움을 주지 않을 때는 없다. 글을 쓰는 것이 운동이라면, 근육을 단련시키는 방법은 늘 비슷한 듯싶다. 근육을 쪼개고 파열시켜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것이 먼저다. 몸을 움직이고 컴퓨터를 키는 것이, 운동복을 입고 펜을 드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진부할 수 있지만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 왕도다. 하고 싶은 말을 잘 할 수 있으려면 그것을 담아낼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누구나 자신의 말을 더욱 편안하게 해낼 수 있기를, 그리하여 자신을 밉지 않게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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