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The Reader 책 읽어주는 남자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5.2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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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참 안 하는 시대, 세대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으레 인생 책이 뭐냐라는 질문은 심심찮게 받아보았다. 대학 자기소개서부터 동아리 면접 혹은 소개팅 자리 등등.

 

그럴 때마다 조금은 융통성을 발휘해 신나고 가벼운 주제의 책을 말하면 좋으련만, 이상하게도 항상 인생 책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떠오르는 단 하나의 책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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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주는 남자 미하엘과 듣는 여자 한나

 

 

더 리더_ 책 읽어주는 남자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동명 영화로도 유명한 더 리더_ 책 읽어주는 남자는 본래 법관이었던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작품이다. 내가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중고 서점에서 영화 포스터로 표지가 만들어진 책이 독특했고 ‘열다섯 살 가을, 나는 간염에 걸렸고 그녀를 처음 만났다… 서른여섯 살 한나는 나의 첫사랑이 된다’라는 책 뒤편의 소개 글귀에 혹했기 때문이었다.


통속적인 멜로물을 기대하면서 집어 든 책이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한동안 법과 정의, 난 무엇인가 라는 깊이 있는 고민을 하면서 살았던 기억이 난다.


미하엘은 전쟁이 끝난 독일의 60년대를 살아가는 15세 소년이다. 팔다리가 멋없이 길고, 특징이 없이 소극적인 소년으로 살아간다. 비가 거세게 내리는 날, 간염에 걸린 소년은 급하게 아무 정거장에서 내려 토를 하고 그런 소년을 발견한 한 여성이 그를 부축해 주고 토가 묻은 얼굴을 씻겨 준 후 집으로 데려다준다. 미하엘과 한나의 첫 만남이다.


몇 달 후 간염에서 다 나은 미하엘은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한나의 집에 찾아간다. 그리고 그날 스타킹을 신는 한나의 모습을 먼발치서 몰래 훔쳐보고는 도망치듯 그 집을 떠나곤 그다음 날 다시 한나의 집에 찾아간다. 이번에는 그냥 집에 가지 않는다. 소년의 마음을 눈치챈 한나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그 둘은 사랑을 나누게 되고, 그날부터 그들의 질긴 인연이 시작된다.


소년은 이제 학교를 종종 빼먹고 한나의 집에 찾아가 시간을 보낸다. 한나는 기차 검표 업무를 하는 직장인이다. 그러다 소년이 학교를 빠지고 집에 찾아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치 말썽부리는 십 대 아들을 엄하게 혼내듯 이렇게 말한다.

 

너 공부를 하지 않으면 어떤 인생을 살게 되는지 아니.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 그리고 내게 책을 읽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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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는 아이처럼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듣는다.

 

 

둘의 사랑 루틴이 바뀐다.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을 하고 돌아온 소년은 한나가 퇴근 할 때쯤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책을 읽어준다. 한나는 소년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면서 늘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에밀리아 갈로티>, <간계의 사랑>, <어느 건달 이야기>, <전쟁과 평화>. 긴 사랑의 대서사시를 읽고, 함께 샤워하고 사랑을 나눈다.


이제는 나도 샤워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집에 올 때 함께 가져온 욕망은 책을 읽어주다 보면 사라지고 말았다. 여러 등장인물의 성격이 어느 정도 뚜렷이 드러나고 또 그들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작품을 읽으려면 집중력이 꽤 필요했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면서 욕망은 다시 살아났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있기- 이것이 우리 만남의 의식이 되었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한나는 어딘가 결핍이 있는 듯하지만, 그 결핍이 무엇인지 도통 꺼내서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미하엘에게 화를 내면서도, 너는 나를 화나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라고 말하며 그의 존재를 업신여기고, 그가 싹싹 빌고 난 후에야 그녀가 미하엘을 사랑했기에 상처받았음을 고백하곤 한다.

 

미하엘 역시 성장통을 겪는다. 사랑을 나누면서 미하엘은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공부와 운동에 모두 능한 소년이 된다.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기 나이 또래의 매력적인 소녀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시절 그들의 인연은 비극적으로 끝난다.


미하엘은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물속에서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한나처럼 보이는 여성을 본다. 순간 그는 친구들에게 한나를 숨기고 싶은 마음에 그녀를 모른 채 하고 다시 물속에 고개를 담근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이미 여성은 사라지고 없다. 곧바로 한나의 집에 찾아간 미하엘. 집은 텅 비어 있고 말도 없이 한나는 직장도 그만두고 함부르크라는 도시에서 아예 사라져 버리고 만다.


여기에서 둘의 서사가 끝났어도 미하엘의 삶은 충분히 비극적이었을 것이다. 원래 가장 견디기 힘든 이별은 잠수 이별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린 10대 시절의 첫사랑에게서 매정하게 잠수 이별을 당했던 미하엘은 냉소적인 남학생이 되어 공부에 매진하곤 법학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전후세대의 법대생들에게 가장 큰 화두는 그들의 부모 세대를 향한 단죄였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부모님들에게 수치의 판결을 내렸다. 우리가 그들을 고발한 내용은, 그들이 1945년 이후에도 주변에 있는 범죄자들의 존재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전후세대는 전쟁 세대인 자신들의 부모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아니 용서할 수 없었다. 직접적으로 유대인을 학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들 주변에서 자행되고 있는 끔찍한 제노사이드를 묵인했고 자신의 생업을 이어 나갔다. 그것을 용서한다면 그것을 용서함으로 인해서 전후세대는 자신들의 죄를 짓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미하엘은 자기 세대의 그러한 동료들을 다소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그러다가, 한 재판에 참관하게 된 그는 운명의 장난 탓인지 그곳에서 전쟁범죄의 피고인으로 앉아 있는 한나를 보게 된다.


미하엘을 만나기 전, 그러니까 한나가 20대인 지금의 미하엘만 한 나이였을 때 그녀는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유대인들을 관리·감독하는 지멘스에서 일했다. 한나뿐만 아니라 나이 지긋한 여자들 몇 명이 같은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하지만 잘못 얻어걸렸다는 표정의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게 한나는 일면 순진무구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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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꼿하게 앉아있었다, 고 묘사되는 한나

 

 

“우리는 그들에 대해 책임져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수용소 안에서건 행군할 때건 줄곧 감시해 왔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그들을 감시해야 하고 또 그들을 도망치도록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였습니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한나는 왜 유대인들을 감시하고, 불타는 건물 갇힌 유대인들을 풀어주지 않고 계속 그 안에서 불타 죽게 했는지 물어보는 재판관에게 도리어 물어본다. 그들을 감시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으며, 당신이었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요. 일견 모자라 보일 정도 한나의 모습. 뒤이은 모습도 이상하다.


그토록 꿋꿋하게 스스로를 변호하던 한나였는데, 보고서 작성의 책임자를 알기 위해 필적 감정을 해야 하니 글씨를 써보라는 재판관의 말에 바로 모든 것이 자신의 죄라고 자백하고 만다. 미하엘은 그제야 오래전 연인이 결핍 이유와 비밀을 알게 된다.


한나는 문맹이었다. 스스로 글을 읽을 수도, 버스 정류소도 읽지 못하는, 몸만 큰 어린아이로 세상을 매일 두려움으로 마주하는 문맹인이었다.


여기서 미하엘과 우리는 질문 할 수 있다.


우리는 무지한 자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그것을 죄라고 할 수 있는가? 그에게 단죄할 수 있는가?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저서에서 the banality of evil (번역하면 악의 평범성이라 한다) 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우리는 보통 죄인, 악인이라고 하면 마치 설화 속에서 등장할 법한 혹은 괴테의 파우스트 속 메피스토펠레스처럼 본성부터 사악한 악마의 형태로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제노사이드 범죄자들은 마냥 그렇지도 않았다.


그들은 단지 매일 밥을 먹고, 사무실에 앉아 회사의 장부를 처리하는 회사원인 것처럼 사람들을 선별하고 이송하고 죽이는 업무를 수행했다. 그것이 그들의 ‘일’이니까.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윤리적 결함을 가졌는지 알지 못한 채 매일 매일 자기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가?


아렌트는 그들이 죄가 있다고 한다. 그들은 ‘알고자 하지 않았기에’ 죄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죄인인 것이다.


미하엘은 한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내가 그녀를 배반하고 부정했기 때문에 그녀가 내게서 떠나버렸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녀는 단지 전차 회사에서 자신의 약점이 노출될까 봐 두려워 도망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쫓아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내가 그녀를 배반했다는 사실을 바꾸어놓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유죄였다. 그리고 범죄자를 배반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으므로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범죄자를 사랑한 까닭에 유죄였다.


미하엘은, 그가 그의 부모 세대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한나에게도 쉽게 단죄를 요구하지 못한다. 그들은 물론 잘못했다. 하지만 생업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무지해서’ 그들은 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들에게 미하엘이, 그리고 비난할 권리가 있는가? 죄를 저지른 것과, 법에서 죄인으로 규정 받는 것과, 타인이 그들을 비난하는 것. 그것이 모두 함께 일어나는 것인가?


미하엘은 그에 대한 답을 요구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짝은 비겁하게 한나와 소통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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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프 파인즈가 분한 미하엘. 책 읽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책 읽어주기.


나의 결혼과 나의 딸 그리고 나의 인생에 대한 기억과 꿈으로 점철된 분위기 속에서 반쯤 깬 상태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자꾸만 생각 속에 빠지다 보면 나중에 남는 것은 늘 한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나는 한나를 위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한나를 위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하면서 읽었다.


미하엘이 가장 처음 한나를 위해 녹음한 책은 <오디세이>였다.


나는 <오디세이>를 학교 다닐 때 처음을 읽었으며 그것을 하나의 귀향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귀향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똑같은 강물에 결코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리스인들이 귀향을 믿겠는가. 오디세우는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출발하기 위해서 귀향하는 것이다. <오디세이>는 목표점이 확실하면서도 목표점이 없는, 성공적이면서도 헛된 운동의 이야기이다. 법률의 역사 또한 이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 책을 시작으로 장장 10년 동안 미하엘은 한나에게 책을 읽고 녹음해서 보내준다. 그 긴 대장정의 시간의 첫 시작이 오디세이, 인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서양 문학사의 기원이 되는, 귀향 모티브의 대표작 오디세이. 그리고 그 귀향이 머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향해 다시 출발하고, 지향하고자 하는 귀향이라는 점에서 한나와 미하엘의 인생 모두 다시 어딘가로 향하게 되는 것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실제로 한나의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미하엘이 테이프를 보낸 지 4년째 되던 해 한나로부터 편지가 날아온다.


“꼬마야, 지난번 이야기는 정말 멋졌어. 고마워. 한나가.”


미하엘은 감격하지만, 그렇다고 답장을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10년의 세월 후, 느닷없이 가석방하게 된 한나. 연인이었던 시간 이래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된 한나와 미하엘. 이제서야 미하엘은 묻는다. 당신이 저지른 일이 무슨일인지 알고는 있냐고. 그는 아직도 화가 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배신한 과거의 연인에게, 그리고 범죄자인 그녀에게.


“그게 그렇게도 마음에 걸리니? 나는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저런 일을 하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리고 넌 알 거야. 너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너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야. 그렇기 때문에 법정 역시 나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는 없었어.

하지만, 죽은 사람들은 내게 그것을 요구할 수 있어.”


그녀 역시 그녀의 삶에서 피해자였다. 그렇기에 누구도 그녀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글을 익히고 배움으로서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죽은 사람들에게 단죄해야 했다.


가석방하는 날 아침, 그녀는 책 무더기 위로 올라가 자살한다. 늘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았던 그녀는 이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한다. 이번에는 그녀의 행위가 어떤 것을 뜻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그녀는 돈을 미하엘에게 남기며 자신과 관련된 유대인 희생자의 자녀에게 그 돈을 전달하라는 유서를 썼다. 그녀는 죽음으로서 죗값을 치르러 했던 것이다.


미하엘은 어떠한가.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나는 이 사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것이 정말로 참기 어렵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비록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썼는지도 모른다.


미하엘은 벗어나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고 말했다. 과연 그는 자기 삶을 괴롭혀 왔던 이 일련의 사실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다시 <오디세이>가 떠오른다. 그는 글을 쓰며 과거의 기억들로 돌아왔다. 머무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출발하기 위한 일환으로서의 귀향.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거의 매년 이 책을 한 번씩 다시 읽고 누군가에게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한 지가 어언 6년이다. 읽을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나는 조금씩 달라져 있고, 인생의 층위는 쌓여간다. 죄를 저지르기도, 단죄를 요구하기도,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할 때가 있다. 그 인생의 층위 속에서 난 한나이기도 하고 미하엘이기도 한 것이다.

 

 

[김정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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