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잘하는 게 없어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기
글 입력 2023.01.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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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정말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격려하고 칭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스스로의 미흡함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둘의 모습을 오가는 게 대부분의 인생이겠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나는 후자의 순간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도 좋아하는 일도 많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면 성에 차지 않는 나의 모습에 실망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다음의 문장이다. 아, 내가 또 괜한 욕심을 부렸구나.

 

그래서인지 늘 자신감이 가득해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공연한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해내는 능력뿐만 아니라, 자신감이라는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까지도 갖춘 사람 같아서.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언젠가 좋아하는 가수가 연습생 시절에 만든 포스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만능 ○○○"

"공연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당시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에 그가 적은 글을 보니,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능력을 저렇게나 당당하게 어필할 수 있을까? 본인을 만능이라고 얘기하려면 얼마나 많은 것에 도전해봤을까?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연습을 해야할까? 어떻게 스스로에 대해 저런 '확신'을 가질 수 있지?

 

내가 나를 소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무엇을 잘한다고 말하면 좋을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나에게 그런 게 애초에 존재하긴 할까? 역시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조금은 무력해지는 순간이었다.

 

 

 

잘 치지는 않지만 배운 적은 있어


 

이렇게 의미 없는 고민을 하며 울적해 하다 보면, 13살 즈음에 만난 친구 한 명이 생각난다.

 

미국에 잠시 살았던 당시 그 친구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친구는 자신이 최근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지금은 계이름과 악보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면서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누르던 그 아이는 나에게도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냐고 물었다.

 

지금의 아이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또래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태권도와 피아노는 필수 코스였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말이다. 운동하기를 정말 싫어했던 나는 8살이 되면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3년 정도 학원을 다녔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연습을 하지 않아 몽땅 잊어버리고, 악보도 더듬더듬 음을 찾아 겨우 보는 정도지만.

 

질문을 받았던 당시에는 동요 하나만 겨우 기억나는 정도였다. 있는 그대로 잘은 못 치지만 배운 적은 있다고 대답했는데, 친구가 배운 걸 보여달라고 아주 간절하게 부탁하더라. 결국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어릴 적 내가 좋아해서 매일 치곤 했던 동요 <피노키오>를 연주해주었다.

 

친구의 반응은 여전히 기억이 선명하다. 자신은 이제야 막 도레미파를 배웠는데 한 곡을 온전히 칠 줄 아는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뭐냐고, 친구는 내 옆에 앉아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친구가 칭찬에 후한 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대뜸 나에게 영어를 잘한다고 말을 해준 적도 있다. 당연히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자신은 외국어로 인사하는 법도 모르는데 자신과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는 나는 정말 잘하고 있는 거라고 또 한 번 강하게 주장을 펼쳤다.

 

무언가를 잘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눈에 띄게 월등한 능력을 갖추어야만 한다고 은연 중에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할 수 있어야만 잘하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잘'한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 친구가 해준 말들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다.

 

여전히 박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스스로 높여놓은 기준에 지칠 때면 어김 없이 그 친구의 말들이 생각이 난다. 이제는 연락도 닿지 않는 친구가 되었다 해도, 그 말들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에게 위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능력에 질문을 하게 되는 일은 여전히 자주 찾아온다. 늘 하던 일이 갑자기 잘 안 돼서, 새로 시작한 일을 하다가 자꾸만 실수를 해서, 함께 하는 사람들은 잘만 나아가는데 나만 유난히 발전이 더뎌서 등등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여전히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하게 될 수 있는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알겠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그걸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주 작은 칭찬거리라도 찾아 스스로를 칭찬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계속할 힘이 생기고, 진짜로 잘하게 될 때까지 노력할 힘이 생길 테니까.

 

적어도 '잘'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소소한 응원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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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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