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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어릴 적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본 적이 있는 거 같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기억 속 흐릿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단지 그 순간만을 기억할 뿐, 내가 정확히 거기에 무엇을 적었는 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어린 시절의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서, 그 수많은 나의 꿈을 모두 옮겨 적느라 100가지의 목록을 다 채웠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금도 나의 꿈들로 100가지를 채울 수 있나, 그건 또 아니다. 나의 꿈은 이제 너무 희미하고 애매해져서 나조차도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꿈이 10개도 넘는다고 자부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나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자만했던 학창 시절을 지나, 현재의 내가 되었다. 과연 남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만화 '캐릭캐릭 체인지!'에 나오는 빌런의 대사가 요즘따라 부쩍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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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이 삶이 조금 더 다채로워질까. 항상 목표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나에게 현재의 시점은 방황의 시기이다. 그 시기 속에서 최대한 여러 활동을 해보면서 마치 꿈을 찾아가는 소년 만화의 주인공처럼 언젠가 나의 새로운 목표를 꼭 집어서 말 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버킷리스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드레스덴 크리스마스 마켓 즐기기'였다. 독일과 연도 없는 내가 드레스덴을 이토록 그리워하게 된 데에는 한 음악의 영향이 컸다. 기욱의 'Outro : 한 소년의 촛불 (Dresden)'은 그 영어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드레스덴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노래했다. 겨울만 되면 해당 노래를 즐겨 들었던 터라, 나에게 겨울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드레스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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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본적도 없고 인연도 없는 나라의 겨울을 그리워하다니. 노래가 주는 힘은 대단하다. 노래 하나에 홀려서 나는 드레스덴으로의 유학까지도 결심했다. 사람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른다고 했던가, 새내기 시절부터 떠들고 다녔던 드레스덴 유학은 비록 엎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드레스덴을 그리워한다. 겨울마다 찾아 듣는 노래 속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기는 상상을 늘 한다. 노래는 결코 신나는 분위기가 아니지만, 모두의 축제와도 같은 크리스마스에 어떤 감상을 받아서 그런 쓸쓸함을 노래했는지도 궁금하다. 드레스덴을 거닐면서 그 쓸쓸함과 겨울의 축제를 모두 느끼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꿈이 없어서 방황하던 시기에도 드레스덴은 늘 마음 한 구석에서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여러 사정으로 그 끈을 잠시 놓았던 순간, 나는 그제서야 내가 찾던 목표가 드레스덴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참 어리석지 않는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게 바로 옆에 있었는데, 그걸 몰라보고 여지껏 빙빙 돌고 있었다. 놓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나의 새로운 꿈이자 목표가 드레스덴이었구나, 하고 자각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마냥 악재만은 아니었다. 나의 새로운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되었고, 지금은 확정적인 목표를 찾지 못해 또 다시 방황의 시간이지만 꿈을 마음에 담고 있던 순간의 열정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는 무언가를 열렬하게 원하지 않는다고, 그 느낌을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드레스덴이 주는 그리움 덕에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현재의 방황이 마냥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확하게 말 할 수는 없어도, 드레스덴을 꿈 꿨던 그때의 마음이 다시금 피어오르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나의 4번째 목표를 단어 혹은 문장으로 구상할 수 없을 뿐, 이마저도 빠른 시일 내에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든다.

 

*

 

다음은 비교적 최근에 떠오른 소망이다. '나의 이야기가 사랑받는 것'이다.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소원이지만 그 속뜻은 단순하다. 나는 현재 웹소설 작가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이야기를 다듬고 출판사에 연락을 돌리는 과정이지만, 언젠가는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와 다른 이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꼭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된다. 나의 수많은 세계관 속 한 가지 이야기여도 행복할 거 같다.

 

나는 유난히 나만의 세계관을 구상하는 걸 참 좋아하는데, 이렇게 구상한 이야기들을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워서 생각한 방안이 바로 웹소설이었다. 웹소설이라면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장르의 한 클리셰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자연스레 떠올린 것 같다. 워낙 웹소설을 좋아하기도 해서 이 외에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기도 했고. 언젠가는 나의 필명을 걸고 나온 근사한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나의 세계가 주는 그리움은 드레스덴이 주는 그리움과는 또 다른 결이다. 내가 스쳐 지나온 나의 애정들을 모두 글에 담아낼 수 있다니! 내가 세계관 구상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와도 같다.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내 애정들을 한 데 묶을 수 있는 가장 최적의 방법이다. 어떤 세계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우주와 인류가 등장하기도 하고, 어떤 세계에서는 주인공이 나와 비슷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또 다른 세계는 노래 한 곡에서 영감을 얻어서 탄생했다. 그리고 한 편의 주인공은 나의 모든 단점들을 극대화 했지만, 동시에 가장 성장한다. 나조차도 끌어안지 못한 나의 단점을 성장의 발판으로 써서 힘차게 딛고 올라선다.

 

변덕스러운 취향은 대체적으로 좋게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얕고 넓게 아는 것은 그 수심이 금방 드러나기 마련. 나의 변덕도 그런 식으로 몇몇 애정을 감추기 급급했다. 그러나 나의 글 안에서 그 모든 변덕은 하나의 세계로 살아 숨쉰다.

 

*

 

100가지를 금방 채우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다소 초라한 버킷리스트이다. 내용이 기억 나지는 않지만, 그 중에는 현재의 내가 이룬 버킷리스트도 어쩌면 존재할 거라 믿는다. 나는 여전히 나를 불신하지만, 그 정도의 믿음은 용인할 수 있다. 그 시절에는 꿈도 참 많았다. 하루는 바리스타라는 단어를 배운 후, 다짜고짜 바리스타가 되겠다며 부모님에게 선언한 적도 있다. 그렇게 나의 꿈은 추가되었다. 현실을 살아갈수록 그 모든 꿈을 다 이루는 건 만화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다지 슬프지는 않았다.

 

가장 슬펐던 건 아무래도 나의 꿈을 내 손으로 놓아줬을 때였다. 첫 번째 애정을 그런 식으로 알게 되어서 그런가, 이후 나의 모든 목표는 항상 슬픔이 동반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내가 부러 꿈을 설정하지 않은 방황을 겪고 있나 보다. 꿈은 찰나고, 슬픔은 기니까.

 

하지만 버킷리스트를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나의 꿈과 목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시에, 나의 목표들을 좀 더 구체화 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나는 죽기 전 무엇을 하고 싶은가 떠올리면 되는 것이니, 그만큼 간절히 원하고 또 열렬히 생각하는 걸 그대로 옮겨 적게 된 거 같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가 두 항목 뿐이라 조금 부끄럽지만. 한 번 떠올렸으니 다음은 더 쉬울 거라 자신한다. 나의 버킷리스트가 10개까지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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