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리 작가의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었다. 읽기 전에 작가가 시각장애인이고 안마사로 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제목이 노골적이라서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지랄맞은 하루들이 끝내는 축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태도. 작가의 정체와 제목에서 책의 내용을 넘겨짚었다. 더구나 시각장애인이 썼다고 하니까.
1. 닳지 않은 사람
39p
장애란 이런 것이다.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와 등짝을 걷어차버린다. 속절없이 바닥을 구르며 억울함을 삼키던 어느 날.
100p
열두 살의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얼른 돈을 벌어 나 때문에 팔려간 암소를 되찾고 싶었다. 우리가 소작 부치고 있던 땅도 엄마에게 사주고 싶었다. 성치 못한 자식의 속죄였다. 중학교 때 장래희망을 발표한 일이 있었다. 나는 확고한 신념처럼 '경리'라고 적어 냈다. 담임선생님은 내 장래희망을 보고 한심한 눈초리로 너는 어떻게 꿈도 없냐고 쏘아붙였다. 꿈이 있었기에 그리 적어 낸 것임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책을 읽고, 자신의 오만이나 편견을 성찰했다는, 그녀에게 섵부른 동정을 거두고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는 식상한 고백은 생략하겠다.
내가 느낀 것은 경이로운 충격이었다.
그녀 자신이 묘사하는 인생은 맵기도 맵고, 시기도 셨다. 인생에 꿀이라고는 빨아본 적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간이 찌푸려지는 인생의 신산스러움 속에서 어떻게 그녀는 인생에게 아무것도 뺏기지 않았을까. 그토록 가혹한 인생의 파고 속에서 어떻게 그녀는 요만큼도 닳지 않았을까.
출근길 빽빽한 한칸 전철에서 부대끼기만 해도 사람이 싫어진다.
전철 문이 열리고 닫힐 때 마다 옆에 있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밀쳐대는 사소한 불친절에도 열이 오른다. 아저씨! 가까이 붙지도 마시고, 저 밀치지도 마세요! 하면서 쏘아붙이고 싶다. 물론 꾹 참는다. 집에서 회사까지 몇 정거장 안되는데도 내리는 정거장에서는 눈꼬리가 샐쭉해진다. 에휴.
일터에서 가끔 날이 선 말을 듣는다.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곡해된 비난을 정면으로 맞은 적이 있었다. 상황 자체도 억울했지만, 그보다는 아무리 맞아도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처지가 더 분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보니 자주, 나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들어야 한다. 이리저리 해결해보려고 애를 썼으나, 암만 해도 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다소 건조해질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카페에서 손님이 점원에게 화풀이하는 장면을 본다. 음료가 조금 늦게 나왔다는 이유로, 자리가 비좁다는 이유로, 와이파이가 느리다는 이유로. 점원은 죄송하다고만 반복하고, 손님은 그 사과를 받으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아 더 큰 소리를 낸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데도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욱신거린다. 영혼이 닳는 데에는 내가 직접 당하는 일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토록 시답잖은 부침에도 나는 쉽게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불친절해진다. 그러나 환멸과 냉소는 이 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내 마음과 기력을 보호하는 장치라고 여겼다. 그러니까 영혼이 가난하다는 말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대단히 악해졌다는 것이 아니다. 흉흉한 세상살이 속에서 세상에 싫은 것이 많아지고, 미운 사람이 많아지는 것. 나에게만 자꾸 불쌍한 마음이 들고, 억울한 일이 많아지는 것. 그래서 타인에 대한 다정함과 사랑이 닳아 없어지는 것. 나에 대한 긍지가 비루해지는 것.
영혼이 가난하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녀가 부러워서 조금 미워지기까지 했던 것은 그래서다.
자신의 가난함과 초라함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타인의 넉넉함과 화려함을 목격했을 때니까.
2. 그녀는 많은 것들을
58p
청명, 말 그대로 맑고 푸른 봄날에 나는 귀향길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 입구로 향했다. 길은 넓어지고 싸리문답장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하지만 공기의 질감이, 발끝의 감각이 고향을 기억하고 있었다. 공터가 되어버린 본향 집터 앞을 오래도록 서성였다.
외조부가 없는 고향은 낯선 언어로 듣는 익숙한 노래처럼 어색하고 괴기스러웠다. 외조부가 지키지 않는 고향은 더는 본향이라 할 수 없었다. 순간 깨달았다. 인간의 귀소본능이란 태어난 장소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어하는 그리움이라는 것을.
외조부 앞에 포와 술을 올리고 무릎을 꿇었다. 빈손으로 돌아온 방아깨비만도 못한 외손녀는 용서를 비는 대신 열 살 계집아이로 돌아가 낮잠이 드신 외조부께 다라니경을 암송해드린다. 외조부는 찔레꽃 향기가 되어 내 손등을 도닥여주신다.
그녀는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이사람, 저사람의 눈코입과 목덜미, 등허리를 상상하면서 온갖 사람들을 자기 글에 데려다 앉힌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어린 승리를 기억하는 정많은 조선족 언니, 자기는 결혼을 세번씩이나 했지만, 그녀를 아끼는 마음에서 너는 절대 결혼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열아홉살 많은 아저씨, 위로를 주고받는 은사님, 너무 어려서 예뻤고, 예뻐서 슬펐던 동무 균호, 찔레꽃 외할아버지와 세상에 한방 먹이지 못하고 떠난 사촌오빠. 그들은 세상의 기준에서 내세울 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렇지만 작가가 그들에 대해서 묘사할 때, 그들과의 기억을 핍진하게 풀어놓을 때, 우리도 그들에게 마음 한 켠을 내어주게 되고 만다.
138p
오빠는 의기양양 두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고 승자의 포효를 내지른다.
“한 방이면 끝나!”
그때 들에 나갔던 당숙모가 들어와 고함을 지른다. 나는 흙투성이가 된 당숙의 사각 팬티를 벗어 평상에 내려놓고, 벗어던졌던 티셔츠를 찾아든 채 집으로 달아난다. 철썩철썩 오빠의 등을 내려치는 당숙모의 손바닥 매질 소리가 어찌나 매서운지 가슴이 벌렁거린다. 담장 너머로 오빠의 비명이 구슬프게 넘어온다. 그 시절 그는 내게 우상이었으며 가장 좋은 친구였다.
그녀는 단골손님이 많다. 손님들이 쏟아 놓는 배설물 같은 감정들을 당황하지 않고 정돈해낸다. 과하게 공감하지도, 매섭게 밀쳐내지도 않는다. 절묘한 균형감각에 약간의 유머를 섞어서 그녀의 방식으로 손님들을 대한다. 교묘한 무례에도 그녀는 쉽게 치사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허약한 영혼의 속엣말에 귀기울이는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녀는 하고싶은 것이 많다. (결혼만 빼고!) 장애인들 끼리는 못간다는 여행도 가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책도 내고 싶고, 꽃다발을 받는 사람을 시샘하지 않고 싶어서 꽃다발도 받아내고야 만다. 숱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탱고도 배운다. 그녀는 글도 자기를 위해서 쓴다고 했다. 자기를 학대하지 않는 것, 자기를 기만하지 않는 것. 대신에 자기를 돌보는 것. 자기에게도 친절한 것. 자기의 필요에 정열을 다 하는 것.
그녀가 가진 영혼의 넉넉함이다.
3. 승리, 승리
"시각장애인이 썼다는 것을 떠나서 좋은 책이다."라는 것은 표면적인 감상에 그친다고 생각한다.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순진하고, '지워야 할 낙인'으로 여기는 것은 거만하다.
이 책은 시각장애인이 썼다는 것을 떠날 수 없다. 시각장애인이라서 경험할 수 밖에 없었던 좌절과 슬픔의 편린을 외면하면 그녀가 가진 것들, 이뤄낸 것들의 가치를 할인하는 것이 된다. 이 책은 시각장애인이 써서 좋은 책이고, 쓴사람이 조승리라서 좋은 책이다.
이만큼이나, 그녀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고,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런 것을 '승리'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