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불편함을 선물하는 드라마들
AI로 쉽게 만든 타임 킬링 콘텐츠가 점점 많아지는 요즘이다. 볼거리는 넘쳐나는데 정작 무엇을 봐야 할지는 더 어려워졌다. 이러한 '콘텐츠 대홍수' 시대일수록 무엇을 볼 것인가가 더욱 중요해지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애플TV는 다소 독특한 플랫폼이다. 다른 OTT들에 비해 절대적인 콘텐츠 개수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화 카테고리의 상당수는 스트리밍이 아닌 개별 유료 결제를 요한다. 그럼에도 애플TV가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이유는 바로 완성도 높은 오리지널 시리즈에 있다.
모든 플랫폼마다 소위 '효자'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있다.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 티빙의 <유미의 세포들>, 아마존 프라임의 <멋진 징조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유독 애플TV의 드라마들은 서사의 촘촘함을 넘어서, 여운 있는 질문들을 남기곤 한다. 이를테면, 일과 삶을 완벽하게 분리한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지 묻는다거나, 내 아이가 살인자일지도 모르는 상황을 제시한 후 시청자들의 믿음에 도전장을 던진다. 내가 확신했던 진실이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허구일 수 있다는 사실도 꼬집는다.
시간을 투자한만큼 가치있는 생각들을 돌려주는 애플TV의 수작 여섯 편을 당신에게 추천한다.
1. 취약성이 낳을 수 있는 것들 | 더 모닝 쇼 (The Morning Show)
<더 모닝 쇼>는 시청률 1위를 달리던 아침 뉴스 프로그램의 메인 앵커 미치 케슬러가 직장 내 성추행 스캔들로 해고되며 시작된다. 공동 진행자였던 알렉스의 일상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방송국의 견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충동적으로 지방 방송국의 열혈 보도기자 브래들리를 새로운 파트너로 지목한다. 미투 폭로의 후폭풍 속에서 두 여성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미치는 부하 직원에게 '내가 당신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알렉스와 브래들리 사이에서 다시 등장한다. <더 모닝 쇼>가 바라보는 미투는 한 명의 가해자가 저지른 문제가 아니다. 타인의 취약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이용해 침묵을 만들어내고, 그 침묵은 기존의 권력을 견고하게 만든다.
그런데 취약성은 역설적으로 그 시스템을 깨뜨리는 힘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느라 침묵했던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기꺼이 드러내고 연결되는 순간, 권력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더 모닝 쇼>가 흥미로운 것은 권력과 연대라는 정반대의 힘이 모두 인간의 약한 곳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타인의 취약성을 이용하면 권력이 되고, 자신의 취약성을 서로에게 내보이면 연대가 된다.
2. 고통을 완전히 잘라내는 것이 행복과 같은 말일까 | 세버런스: 단절 (Severance)
일하는 나와 퇴근 후의 나를 완전히 분리할 수 있다면 행복할까?
루먼 산업의 직원들은 뇌 속에 침을 심어 직장 안의 자아(Innie)와 일상 속 자아(Outie)의 기억을 완벽하게 절단한다. 퇴근 후의 나는 일의 고통을 전혀 모른 채 살아가지만, 회사 안의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오직 노동만을 위해 영원히 깨어있는 형벌을 받는 것이다.
워라밸을 문자 그대로 실현한 설정에서 드라마가 파고드는 것은 단순히 노동과 자아의 문제가 아니다. 고통스러운 기억만 떼어낼 수 있다면 우리가 과연 완전히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세버런스>에서 재미있는 것은 회사 밖 자아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통을 없애는 것과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직장 안의 자아가 점점 독립적인 욕망과 감정을 갖게 되는 과정은 섬뜩하며 슬프다. 그는 노동만 하도록 만들어졌는데도 끝없는 복도와 형광등 불빛을 헤매며 사랑하고 욕망한다. 인간은 노동만을 위한 존재로 분리해놓아도 인간성이 생기고 만다.
3. 고전은 한때 가장 급진적인 것이었다 | 디킨슨 (Dickinson)
외딴 방에 틀어박혀 고독하게 시를 쓰다 세상을 떠난 내성적인 시인.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에밀리 디킨슨의 이미지다. <디킨슨>은 그 초상화를 과감하게 깨뜨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사랑하고 질투하고 파티하고 세상에 분노했던 열렬한 청춘을 데려옴으로써 시인에게 자유를 준다.
주인공 에밀리뿐만 아니라 19세기 코르셋을 입은 인물들이 모두 현대의 슬랭을 쓰며 힙합에 맞춰 춤을 춘다. 이 설정이 위화감이 들지 않고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디킨슨의 시에 급진성이 있는 까닭이다.
지금 디킨슨의 시는 고전이 되었지만, 당시 그녀의 시는 여성에게 요구되던 삶과 언어의 경계를 깨뜨리는 급진적인 글쓰기였다. 가부장제의 규율과 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시로써 자신의 세계를 써 내려가던 것은 그 당시의 펑크록이었을 것이다.
4. 부모의 사랑이 시험대에 오르다 | 제이콥을 위하여 (Defending Jacob)
보스턴의 조용한 마을에서 한 중학생이 살해된다. 그 용의자로 지목된 것은 지역 검사 앤디의 아들 제이콥이다. 그러나 <제이콥을 위하여>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다. 더욱 잔인한 질문을 끝까지 던진다. 바로 내 아이가 살인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도 부모는 이전과 똑같이 아이를 바라볼 수 있을지다. 드라마는 부모의 믿음과 사랑을 피고인석에 앉힌다.
검사인 아버지 앤디는 결정적 증거가 없는 한 아들을 믿으려 하지만, 어머니 로리는 사건이 진행될수록 자꾸만 아들을 의심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믿고, 다른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의심하게 된다.
시청자 또한 마음을 정하기 어렵다. 제이콥의 알 수 없는 표정과 말투는 결백의 증거처럼 보이다가도 다시 의심의 근거가 된다. 목숨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과연 어떤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을까.
5. 아름다운 화면이 추구하는 진실 | 디스클레이머 (Disclaimer)
저명한 다큐멘터리 저널리스트 캐서린의 집으로 어느 날 의문의 소설 한 권이 배달된다. 책 속에는 자신밖에 알 수 없는 과거가 적혀 있고, 그녀는 두려움에 떤다. 그것을 읽어버린 가족들은 캐서린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배달된 소설은 눈부신 이탈리아의 햇살 아래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인물들을 보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누군가의 시선으로 편집된 이야기일 뿐이다. 같은 사건도 누가 말하고 무엇을 생략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실화 기반 작품 앞에 으레 붙는 '본 이야기는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 문구(Disclaimer)를 제목으로 내건 이 작품은, 시작부터 관객에게 경고했다. 우리는 진실을 보고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먼저 판단하고 그 판단에 맞는 이야기만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지도 모른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로 유명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정교한 화면, 케이트 블란쳇의 치밀한 연기가 이 작품의 함정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낸다. 아름다운 화면은 진실을 보증하지 않기에 <디스클레이머>는 계속해서 의심하라고 부르짖는다. 이야기가 흉기가 되는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뿐 아니라 휘두른 사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6. 비전과 허풍은 어디에서 갈리는가 | 우린폭망했다 (WeCrashed)
공유 오피스 기업 위워크(WeWork)의 신화와 몰락을 다룬 실화극이다. 단순한 공간 임대업을 '세상의 의식을 고양하는 공동체'
라 포장하던 창업자 아담 뉴먼과, 그의 비전에 영적 언어를 불어넣은 아내 레베카. 두 사람이 만들어낸 거대한 이야기에 투자자들과 직원들이 차례로 올라타며 위워크의 기업가치는 한때 47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부부의 자신감에 홀린 직원들은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이라 믿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노동은 더 이상 노동이 아니라는 믿음, 거대한 비전이 있는 창업자라면 미래를 곧 현실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 위워크는 이 기한 없는 낙관 위에서 몸집을 불려간다.
'Fake it till you make it.' 성공할 때까지 성공한 척하라는 실리콘밸리의 오랜 구호다. 그 앞에서 <우린 폭망했다>는 '망할 때까지 속여라'는 뜻이었냐며 비전과 허풍의 경계를 묻는다.
위의 명품 드라마들은 시청하기 마냥 편하지는 않다. 시간만큼이나 정신적 에너지도 많이 소요되는 내용들을 다룬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의 역할은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전처럼 편안하게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데 있지 않을까. 나는 정말 저 사람과 다른가,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은 정말 당연한가,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면 콘텐츠에 투자한 시간은 성공적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