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 반영의 현실? - 소년심판 [드라마]

글 입력 2022.09.2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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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오리지널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은 K-콘텐츠의 경쟁력을 증명하는 동시에, 그 이면의 짙은 그림자를 드러내기도 했다. 화려한 스펙타클과 볼거리는 그 자체로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곤 한다. 그러나 최근 지나치게 많은 양의 콘텐츠가 순간적인 쾌락과 오락성을 뿜어내는데만 주력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등장했다. 콘텐츠 제작자들이 과연 소재나 묘사에 대한 충분한 경각심을 갖고 있느냐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은 것이다.

 

필자 역시 이러한 여론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는데, 시장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치부하며 마냥 배제할 수는 없다고 느꼈다. 대중성이란 결국 말초적인 장면을 잘 조직해내 연이은 자극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달성될 수밖에 없나 싶은, 창작자로서의 의문도 떠올랐다. 그러던 중 2022년 상반기에 공개된 이 작품, <소년심판>을 만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 대한 필자의 걱정에 깨끗한 해답을 제공함은 물론, 그런 재고 따짐마저 잊은 채 서사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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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평가하자면, <소년심판>은 아주 영리한 작품이다. ‘영리하다’란 사회적 민감도가 높은 소재의 사용에도 불구하고 여러 비판 앞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는 뜻이다. 이는 작품의 구성, 플롯, 인물 설정을 비롯한 내적 요소와 작품이 만들어낸 여론, 던져낸 메시지 등의 외적 요소를 아우른 개인적인 결론이다. <소년심판>의 영리함을 방증하기 위해, 지금부터 몇몇 키워드를 통해 해당 작품을 리뷰하고자 한다.

 

 

 

드라마적 허용과 현실 사이의 균형


 

<소년심판>은 소년범을 혐오하는 소년부 판사, 심은석이 연화 지방 법원에 새로 부임하며 시작되는 휴먼 법정 드라마이다. 우선 지금껏 드라마가 소년범죄를 다뤄온 방식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소년범죄는 주로 극악무도한 악인에게 전사를 부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혹은 특정 범죄의 잔혹성에 터무니없을 정도로 어린 나이라는 설정을 더해 시청자들의 분노를 키우고, 자극을 높이며, 이후 처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소년 범죄를 사회적인 문제로서 묵직하고 세심하게 다룬 작품은 많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대중 콘텐츠에서 적극적으로 다루기에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을 거라 추측한다. 그렇기에 <소년심판>은 이에 도전하는, 상당히 선언적인 작품처럼 느껴진다.

 

<소년심판>의 무대는 연화지방법원의 소년 형사합의부이다. 이 기관은 일명 드라마적 허용으로, 실제 존재하는 기구는 아니다. 제작발표회 당시 감독은 인물들을 하나로 모아 활동하도록 하기 위해 현실의 설정을 조금 바꿔 소년 형사합의부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판사의 위치에서도 다양하게 사건에 개입할 수 있는 배경이 필요했을 테니 말이다.

 

인상적인 건 이러한 허구적 기관의 등장이 드라마의 현실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소년부 판사를 묘사한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소년부 판사는 처분 이후에도 소년의 동태나 사회 적응 여부 등을 모니터링 한다고 한다. 이것이 서사화 하기 좋은 부분임을 포착하고,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는 드라마적 허용 장치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는 익숙하더라도, ‘소년부 판사’라는 소재는 분명 아주 신선한 지점이 있는데, 이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때 <학교의 눈물>과 같은 다큐멘터리의 영향으로 몇몇 소년부 판사가 주목을 받았음에도, 지금껏 왜 드라마화 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적절한 타이밍과 흥미로운 드라마적 과장, 동시에 현실성 사이에서 <소년심판>은 훌륭하게 줄타기를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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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심판>의 이러한 드라마적 허용은 첫 장면부터 두드러진다. 이 작품은 판사가 직접 소년범을 잡으러 다니고, 자료와 증거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마치 형사처럼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청자는 이러한 판사의 역할에 다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의문이 서사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년심판>은 1화 초반부에 소년범죄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심은석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입을 빌려 소년범죄의 실태, 전반적인 인식, 소년부 판사의 특수성과 역할을 다큐멘터리처럼 설명하는 것이다. 거기다 ‘소년범을 혐오한다’라는 인상적인 대사로 장식한 것은 너무나 영리한 방식이다. 이는 차례로 드라마가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 그에 대한 현실 여론, 메인 주인공의 가치관과 성향까지 보여준다. ‘소년부 판사인데 소년범을 혐오한다고? 분명 갈등이 생기겠군.’하는 긴장감도 놓치지 않는다. 즉, 아주 영리한 방식이다. 완성도 높은 소설의 완벽한 첫문장을 만난 기분으로, 1화만에 필자는 <소년심판>이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균형적인 인물 설정과 갈등 구도


 

소년부 판사인 심은석이 소년범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직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은 드라마 초반부, 강한 긴장감을 야기한다. 이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은 좌배석 판사, 차태주의 존재이다. 이 두 인물의 대립 역시 <소년심판> 특유의 영리함을 방증하는 설정이다. 이들은 그 자체로 소년법에 대한 상반된 두 여론을 대변한다.

 

어린 나이를 이유로 너무도 쉽게 법망을 피해나가는 소년범들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심은석을 통해 드러난다. 반대로, 귀책사유를 소년뿐 아니라 사회와 시스템, 어른들의 이기심에 있다고 주장하는 온건한 입장은 차태주로 형상화된다. 시청자들은 자연히 두 여론이 주장하는 바와 그들이 현실에서 갈등하는 방식에 대해 재고하게 된다. 와중에 심은석과 차태주를 단순히 은유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설득력 있는 과거사를 풀어내 그러한 가치관을 지니게 된 배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나는 심은석이 이해 된다’, ‘차태주 쪽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운다’등의 간단한 감상으로 드러나고, 서사가 전개될 수록 더욱 깊은 사유의 층위로 이어진다.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란 말이야!’라는 식으로 시청자의 윤리적 판단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도록 유도하는 것이 <소년심판>의 미묘한 매력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소년범을 혐오한다’라는 가치 표현을 서슴지 않는 심은석의 존재는 약한 거부감을 갖게 한다. 10호 처분을 밥먹듯이 내린다는 악명으로 ‘십은석’이라는 별명까지 지닌 그녀는 웃는 표정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냉정한 인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다소 현실적이지 못한, 지나치게 컨셉츄얼한 인물처럼도 느껴진다. 그러나 이 생각은 곧 빠르게 뒤집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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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석 판사가 혐오하는 것은 ‘소년범’이지 ‘소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매끄럽게 설득하기 때문이다. 심판사는 말한다. 당한 사람이 격리되지 않고, 폭력을 행한 사람이 격리되도록 하겠다고. 피해자는 집을 지키고, 가해자는 벌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이다. 차태주와 다른 결의 돌봄을 통해 혐오하는 ‘소년범’들을 보호 받아 마땅할 ‘소년’으로 돌려놓는 심은석의 모습은 신파를 배제한 깔끔한 울림을 선사한다. 결국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는데 성공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쾌감까지 느낀다. 심은석의 경우, 결국 이 모든 노력은 소년범을 혐오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했다고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게다가 심은석의 과거사도 이 설득에 한 몫 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사건 중간중간마다 끼어내기 보다는, 약간의 떡밥만 던져준 후 마지막 한두 화를 통해서만 깔끔히 봉합함으로써 불필요한 신파의 가능성을 지워냈다. 소년범에 의해 어린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다소 짐작 가능한 뻔한 전사라 하더라도 심은석의 냉정함에 대한 내적 논리를 명확히 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녀의 아픈 과거는 첫 에피소드였던 연화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피해자 엄마에게 돌려주었던 따뜻한 도시락을 떠올리게 하며, 묘한 수미상관의 구조를 띄게 된다.


부장판사 강원중이 퇴장하는 플롯 역시 흥미로웠다. 자신의 위치를 누구보다 실감하며 직업적 책임감과 소명 의식을 가진 인물이지만, 가족에게는 한없이 가부장적인 아버지이며 정의보다는 실리를 따지기도 한다. 법조인으로서의 책임감이라 포장하며 권력에 대한 헛된 욕심을 부리기도 하는,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인물이다. 그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시험지 유출 사건에 말려들면서 위기는 시작된다. 어쩌면 그간 다양한 드라마를 통해 무비판적으로 올려쳐진 전문직의 위치를 재고하게 하는 인물이다. 그의 퇴장은 자연히 나근희 판사의 등장을 야기해 심은석 대 차태주 이외의 새로운 갈등 구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지금껏 봐온 한국 드라마 특유의 ―때로는 과할 정도의― 뜨거움을 지향했다면 <소년심판>의 주인공은 차태주가 되었어야 했다. 잘못은 아이들이 아닌 사회에 있다 믿으며, 박애를 잃지 않는 선한 인물. 그러나 사회적 장벽에 부딪혀 자꾸만 무너지는 인물. 그러면서도 정의감과 책임감을 지키는 이 시대의 참 지식인의 이야기. 이런 방식이 더욱 익숙하다. 그러나 감정 표현이라곤 없고, 거의 마지막 화에 이르기까지 과거사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며, 눈썹 하나 까딱하는 것만으로 장내 분위기를 압도하는 심은석을 주인공으로 함으로써 이 드라마는 한층 더 신선해질 수 있었다. 감정적 신파에 휩쓸리기 보다는 사건에, 현실에 드리운 문제에, 그것을 다루는 드라마의 서사 구조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깔끔하고, 매끄럽고, 다시 강조하지만 영리하다.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 혹은 반영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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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소년심판>의 전체적인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최근 인기를 얻은 법정/범죄 수사 드라마 대부분이 취하는 구도를 안전하게 따라갔다. 약 1~2회에 걸쳐 개별적인 사건을 다루고, 그 사이사이에 인물들을 하나로 모으는 커다란 사건이 척추처럼 뻗어 있는 형식이다.

 

<소년심판>은 약 5개의 큰 사건들을 에피소드 삼고 있다. 이들을 어떤 순서로 조합했는지 살펴보면, 이 작품이 얼마나 치밀하게 구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먼저 가장 큰 사회적 분노를 일으켰던 초등학교 유괴 살인사건을 제시해 소년법의 모순을 드러냈고, 커다란 문제의식 하나를 던진다. 이후 소년을 범죄에 노출시킨 환경을 보여준 에피소드(가정폭력에 처한 소녀 이야기, 돌봄센터에서 되풀이되는 폭력의 고리)를 통해 이러한 소년범죄가 어째서 악순환되는지 그 원인을 톺아간다. 첫번째 애피소드를 통해 분노를 감추지 못했던 시청자들에게 좀 더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후 나근희 부장판사의 등장과 함께 판사들 사이의 갈등, 법조계의 시스템 문제를 다루며 서사는 조금 더 커진다. 소년범이라는 사회 문제 앞에서는 소년도, 보호자나 교육자도, 법조인도, 그 어떤 이도 무죄일 수 없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것이다. 귀책사유는 국가의 것으로 커지기까지 한다.

 

*

 

<소년심판>은 납작하게 말하자면 현실을 아주 잘 반영한 드라마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반영의 현실, 즉 오늘날 창작자들이 작품을 통해 현실을 어떻게 반영해나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해당 작품이 핍진성 측면에서 다소 아쉽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다큐멘터리나 르뽀가 아닌 엄연한 드라마로 형상화될 때 놓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고 느낀다. 적어도 이 드라마가 드라마로서 무언가를 시도했고, 또 뿌린 씨를 꽤 풍족하게 거둬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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