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울트라 백화점 시즌2 확장판_IG용_1080 1350.jpg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다. 인스타그램 매거진부터 뉴스레터, 숏폼 콘텐츠까지, 플랫폼이 늘어난 만큼 콘텐츠의 양도 폭발적으로 불어났다. 그 안에는 분명 밀도 있는 것들도 있지만, 비슷한 이야기가 다른 포장지를 달고 반복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일까. 원하는 콘텐츠를 무엇이든 골라볼 수 있는 지금, 오히려 "이걸 누가 만들었지?"가 더 궁금해진다.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어떤 태도와 생각으로 만들어졌는가 처럼 만든 사람의 의도와 오리지널리티가 콘텐츠를 고르는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는 바로 그 질문을 전면에 내세운 전시다. 도시 콘텐츠 전문 기업 어반플레이가 주최하는 이 전시는 단순히 브랜드와 콘텐츠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음악, 영화, 출판, 패션까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온 70여 팀의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해, 결과물 너머의 시간과 태도를 솔직하게 펼쳐놓는다.

 

이번 시즌의 테마는 '포스트 서브컬쳐'다. 록, 힙합, 독립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서브컬쳐는 늘 ‘비주류’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 경계가 흐릿해졌다. 한때 소수만 알아보던 것들이 어느새 일상의 언어가 되고, 브랜드의 문법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 전시에서 서브컬쳐란 단순히 유행에 반응하는 취향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맥락을 이해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곁에 둘 취향을 디깅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FINDER — 탐색의 시작


 

전시의 포문을 여는 FINDER 섹션은 '서브컬쳐 스트리트'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이곳에서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서브컬쳐 플랫폼들, 특히 인스타그램 매거진을 중심으로 지금, 이 순간의 풍경을 보여준다. 새롭게 파이를 키워가고 있는 060mag, 슐튀르매거진, 메트로 매거진부터 오랜 시간 독자 곁을 지켜온 ELLE까지. 서브컬쳐의 스펙트럼을 한자리에 모아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트라백화점Vol2_공간사진_04(저용량).jpg

 

 

전시는 각 매거진의 짧은 서문과 그들이 만든 콘텐츠를 일부 보여주며, 왜 이 주제를 선택했는지, 어떤 이유로 이 아티클을 썼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기획되어 있다. 그중 몇 문장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메트로 매거진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은 어떤 것에 어디까지 빠져봤나요? 연차를 내고도 쉬지 않은 채 또 다른 어딘가를 향해본 적은요." 음악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겠다는 이 한 단락이,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를 압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데이지 매거진의 시선도 날카로웠다. 수영장 레인에 빗댄 음악 취향 이야기, 장르와 취향으로 서로를 나누고 얕잡아보더라도 결국 음악의 본질은 같다는 이야기. 결론은 간단했다. "음악은 우리를 첨벙 뛰어들고 싶게 만들 뿐이다."

 

관람객은 마음에 드는 문장을 직접 골라 파일에 담아갈 수 있다. 단순히 읽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다는 행위로 좋아하는 취향의 첫 번째 단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COLLECTOR — 취향의 층위를 따라가다


 

전시의 중심부인 COLLECTOR 섹션은 음악, 출판, 영화, 패션이라는 네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각 분야마다 장르 바깥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쌓아온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해, 결과물이 아닌 그 뒤의 시간과 태도를 꺼내놓는다.

 

 

음악 — B-SIDE 레코즈

 

울트라백화점Vol2_공간사진_06(저용량).jpg

 

 

가장 오래 발길이 머문 공간은 음악 섹션 'B-SIDE 레코즈'였다. 공간 구성 자체가 바이닐 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청춘, 열정, 내면, 위로, 연대.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뉜 공간에는 실제 바이닐샵 운영자와 아티스트들이 직접 선곡한 음악들이 채워져 있다. 관람객은 마음에 드는 LP를 디깅하듯 한 곡 한 곡을 발견해 나가는 방식으로 전시를 경험하게 된다. 마음을 건드리는 곡을 찾으면 옆에 비치된 LP 모양 스티커를 골라 안내판에 붙여 가져갈 수 있다.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무언가를 선택하는 행위 자체가 전시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오디오 테크니카와의 협업도 눈에 띄었다. 실제로 고른 앨범을 LP 플레이어를 통해 재생해 들어볼 수 있는 청음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패드에 연결된 헤드폰을 끼면 아티스트와 바이닐샵 직원들이 엄선한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해 들어볼 수도 있다. 눈으로만 머물던 전시가 귀까지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출판 — 텍스트 에비뉴

 

울트라백화점Vol2_공간사진_10(저용량).jpg

 

 

출판 섹션 '텍스트 에비뉴'에서는 여러 독립 출판사가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시를 꾸렸다. 아날로그, 습관, 유물, 미스터리, 재미, 정체성, 예술. 그들이 선택한 키워드만 봐도 출판사마다 품고 있는 세계관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시를 둘러보다 마음이 끌리는 출판사를 발견하면, 그에 맞는 책갈피를 하나 골라 가져갈 수 있다. 책을 펼치기 전에 그것을 만든 사람의 태도를 먼저 마주하는 경험, 어쩌면 이게 더 정직한 순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텍스트 힙과 같은 흐름이 꾸준하게 이어지면서 단순히 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어떤 출판사의 세계관에 끌리는지를 먼저 확인하게 만드는 이 섹션은, 그 흐름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 리뷰어스 씨어터

 

'리뷰어스 씨어터'는 독립영화의 장면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되, 그 장면을 바라보는 리뷰어들의 시선과 언어를 함께 전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코미디언 김경식부터 영화배우 권해효, 인스타그램 매거진 '영화 볼 결심', 유튜버 원의독백, <세계의 주인>의 윤가은 감독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영화를 읽어온 사람들이 모였다. 관람객은 그들의 리뷰를 읽으며 자신의 취향에 맞을 것 같은 영화 한 편을 골라 티켓을 끊을 수 있다. 독립영화는 시장의 논리보다 창작자의 태도와 선택으로 지속되어 온 문화라는 전시의 설명처럼, 이 구역은 작품 자체보다 그 작품을 대하는 사람의 감각을 먼저 내세운다.

 

 

울트라백화점Vol2_공간사진_18(저용량).jpg

 


패션 — 더 리얼 부티크

 

패션 섹션 '더 리얼 부티크'는 '입는 것'을 넘어 '이야기가 된 패션'을 다룬다. 각자의 패션 서사가 담긴 엽서를 하나 골라 가져가는 방식으로, 스타일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그 뒤의 맥락을 수집하는 경험에 가깝다. 옷 한 벌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과 태도가 엽서 한 장에 압축되어 있다.

 

 

울트라백화점Vol2_공간사진_24(저용량).jpg

 

 

이 섹션은 패션을 단순히 입는 것이 아니라 수집하고 창작하는 행위로 바라본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끈 건 죽음의 바느질 클럽이었다. 헌 옷을 수선하고 다시 이어가는 그 과정은, 패션이 소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계속해서 연결되고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CUSTOMER — 취향을 일상으로


 

울트라백화점Vol2_공간사진_29(저용량).jpg

 

 

전시의 마지막 공간 CUSTOMER는 여기까지 쌓인 감각을 실제로 손에 쥐고 나갈 수 있도록 설계된 구역이다. 전시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아트웍과 한정판 굿즈를 만날 수 있는 '울트라 스토어'가 마련되어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자신의 취향에 대해 깊게 들여다볼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느끼면서도, 왜 좋아하는지, 어떤 맥락에서 이 선택을 했는지를 차분히 짚어보는 일은 일상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다.

 

울트라 스토어에서는 전시를 통해 마주한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들의 세계관을 다시 한번 천천히 되짚으며, 내가 어떤 기준으로 이것을 선택했는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된다. 전시장 안에서 발견한 취향이 굿즈 하나를 통해 일상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구조. 결국 이 전시가 말하고 싶은 것도 그것일지 모른다. 소비란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세계와 연결되길 원하는지를 선택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는 관람객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당초 일정을 넘어 2026년 5월 10일까지 확장판으로 운영된다. 기존 전시에 더해 버스킹, 토크쇼, GV, 워크숍 등 창작자와 직접 교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새롭게 추가될 예정이다. 아직 방문하지 못했다면, 지금이 오히려 더 좋은 타이밍일 수 있다.

 

한편 2026년 하반기에는 지역의 색채와 가치를 재해석하는 Vol.3 '로컬 헤리티지'가 예정되어 있다. 울트라백화점이 앞으로 어떤 질문을 들고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