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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꽃이 피어나는 눈부신 3월의 파리.

   

우리는 본능적으로 '빛'와 '생명력'을 찾는다. 그러나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의 원형 홀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짙은 그림자 속에 잠겨 있다. 2026년 첫 기획전 《Clair-Obscur》는 찬란한 봄날의 활기 대신, 우리 존재의 심연에 도사린 불안과 어둠을 꺼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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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서울에서 개막한 일민미술관의 《기.기.기.》 전시와 맥을 같이 하며 문득 드는 의문이 있다.

 

왜 하필 이 좋은 계절에 이런 '우중충하고 으스스한' 전시인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역설적으로 그 성장을 위해 죽음과 부패를 밑거름 삼아야 하는 잔혹한 계절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빛이 강렬할수록 그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듯, 우리가 향유하는 현대 문명의 찬란한 이면에 도사린 인간의 근원적 불안과 파편화된 실존을 '명암'이라는 렌즈를 통해 집요하게 시작화한다.

 

전시는 상층부에서 시작해 지하로 내려갈수록 인간의 정신적 사유에서 구체적인 육체의 변주, 그리고 마침내 인류 이후의 소멸로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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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전시실은 인간의 형상이 어디까지 해체되고 축소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고독한 사유의 장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앙상한 청동상은 전후 실존주의적 고뇌를 넘어, 2026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소외'의 감각을 일깨운다. 그 곁에 거칠고 가공되지 않은 질감을 내세우는 장 뒤뷔페의 작업은 문명이라는 매끄러운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생명력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여기에 초현실주의 작가 이브 탕기(Yves Tanguy)의 기묘한 풍경화가 더해지며 관람객은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탕기가 그려낸 정체불명의 오브제들은 마치 전시장 곳곳에 흩어진 파편화된 신체들의 전조처럼 느껴지며, 상층부의 이 차분하고도 산뜩한 분위기는 아래층에서 마주할 본격적인 기괴함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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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으로 내려오면 이 기괴함이 숭고함과 충돌하면서 불협화음의 절정을 이룬다.

 

삶과 죽음, 영혼의 정화 과정을 물과 불이라는 원초적 요소를 통해 구현하는 빌 비올라(Bill Viola)의 영상은 전시의 '빛(Clair)'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 바로 옆에 놓인 마르코빌(Marcoville)의 작업은 이 성소같은 분위기를 산산조각낸다. 화려한 색감의 유리와 거친 질감의 신체 형상이 결합된 조각들은, 인간의 몸을 더 이상 온전한 생명체가 아닌, 해체되고 재구성된 기이한 오브제로 인식하게 한다.

 

특히 신체 일부의 기괴한 변형과 노골적인 생명력의 과시는 빌 비올라의 정적인 숭고함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왜 이토록 이질적인 성격의 작품들이 한 공간에 묶여 있는가.

 

작가는 인간을 단지 영적인 존재로만 추앙하지 않는다. 비올라가 포착한 영혼의 깊이와 마르코빌이 시각화한 육체적 뒤틀림 및 원초적 기괴함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인간성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병치는 우리가 흔히 예술에 기대하는 '아름다운 조화'를 배신하며, 외면하고 싶은 추한 진실 또한 우리를 구성하는 엄연한 빛과 그림자임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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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층 한쪽 방에 위치한 제임스 리 바이어스(James Lee Byars)만의 공간은 이 전시에서 가장 비현실적이고 압도적이다.

 

이 금빛 커튼의 방은 절대적인 완벽함과 영원성을 상징한다. 중앙에 놓인 대리석 구체와 천장에서 바닥까지 흐르듯 내려오는 금빛 천들은 종교적 성소에 들어온 것 같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이곳은 전시의 명암 중 '명(明)'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람객을 바깥으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키며 일종의 고독을 선사한다. 이는 윗층에서 본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문 앞에 던져둔 주인 없는 신문 뭉치와도 의미를 같이 한다.

 

세상의 모든 정보와 빛이 쏟아져 들어오지만, 정작 문 안의 진실은 침묵 속에 닫혀 있는 현대 사회의 단절을 시각적으로 완성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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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공간에서는 소멸과 재생의 미학이 교차한다.

 

앞서 0층 로툰다의 폐쇄된 공간에서 마주했던 피에르 위그의 영상 작업 《Untitiled (Human Mask)》가 가면에 가려진 인간성과 비인간 존재가 뒤섞인 기이한 생태계를 고발했다면, 지하 오디토리움 외부 벽면에 상영되는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의 영상 《Camata》는 그 혼돈의 끝, 고요한 심연으로 우리를 이끈다.

 

바닥에 이불처럼 깔린 매트는 관람객이 서서 관찰하는 타자가 아니라, 누운 자세로 이 비현실적인 명암의 세계에 침잠하기를 권유한다. 사막의 황량한 풍경과 푸른 빛이 도는 인물들의 얼굴과 사막의 어둠이 교차하는 영상은 인간의 물리적 존재감을 지워내고 정신적인 명상 혹은 사후 풍경을 시각화한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 영상 작업들은 곧, 세상은 논리로 설명되는 선형적인 공간이 아니라, 빛과 어둠이 끊임없이 서로를 잠식하며 만들어내는 모순 그 자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 봄날의 으스스한 체험은 결국 우리를 눈부신 햇살 속이 아닌, 그 햇살이 만드는 그림자 아래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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