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캐릭터 디자인만 보고 귀여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정도를 예상했던 '파라노만'.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생각보다 꽤 크리피했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시체가 그대로 등장하고 팔다리가 잘리는 장면도 있는 등 순간순간 웬만한 공포영화 못지않은 연출도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무섭게 흘러가는 건 아니다. 오싹한 장면 사이사이 엉뚱한 유머가 튀어나오고, 기괴하게 생긴 캐릭터들도 보다 보면 묘하게 귀엽게 느껴진다. 이렇게 호러와 코미디를 오가는 분위기도 재미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마녀사냥과 편견이라는 주제까지 드러나면서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꽤 묵직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노만은 죽은 사람을 보고 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길에서 마주친 유령에게 인사를 건네는 게 노만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정작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런 노만을 이상하게 바라본다.
가족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놀림을 받으며 지내던 어느 날, 노만은 마을에 300년 동안 이어져 온 마녀의 저주를 막아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노만이 좀비를 물리치고 마녀의 저주를 풀어 마을을 구하는 익숙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나 역시 중반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과거의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예상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마녀’와 좀비들에게도 각자의 사연이 있었고, 모든 일의 시작에는 300년 전 벌어진 마녀사냥이 있었다.
과거의 이야기가 밝혀지고 나니 노만이 왜 유령을 볼 수 있는 아이인지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노만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기도 전에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마녀로 몰렸던 아이가 겪었던 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만나면 먼저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이 어느 순간 배척과 폭력으로 변해버리는 모습이 과거와 현재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특히 좀비가 나타나자 마을 사람들이 온갖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좀비가 사람들을 쫓는 익숙한 그림을 예상했는데 어느 순간 반대로 좀비들이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다.
누가 누구를 무서워해야 하는지 완전히 뒤집혀버리는 장면이 우스꽝스럽기도 하면서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유령과 좀비가 잔뜩 등장하는 영화지만, 어쩌면 정작 무서운 건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에 노만이 마녀와 마주하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더 강한 힘으로 상대를 물리치거나 저주를 없애는 대신, 노만은 오랫동안 화가 나 있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자신 역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외톨이가 되어본 노만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닐까 싶다.
'파라노만'은 유령과 좀비가 등장하는 공포 애니메이션에서 시작해, 마녀사냥이라는 과거를 거쳐 결국 자신과 다른 존재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라이카 스튜디오 특유의 스톱모션이다. 캐릭터들은 유난히 큰 귀와 코, 삐죽 솟은 머리처럼 실제 사람의 비율을 조금씩 비틀어놓은 모습인데, 기괴하면서도 묘하게 귀엽다.
반면 피부의 굴곡이나 머리카락, 옷의 질감은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섬세하고, 조금씩 삐뚤어지고 뒤틀린 마을의 풍경 역시 유령과 좀비가 돌아다니는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매끈한 3D 애니메이션과 달리 정말 작은 인형과 세트로 만들어진 세계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영화를 보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제작에는 2년 동안 320여 명의 아트 디자이너가 참여했고, 60명의 퍼펫 제작자가 178개의 인형을 만들었다고 한다. 노만에게만 약 8,800개의 얼굴이 만들어졌고, 이를 조합해 약 150만 가지 표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하니 몇 초 만에 지나가는 간단한 찡그림도 새삼 다르게 보인다. 요즘처럼 이미지가 너무 쉽게 만들어지는 시대에 수많은 사람이 작은 인형과 세트를 직접 움직여 완성한 이 영화의 질감은 더욱 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코렐라인'을 좋아한 관객들이라면 '파라노만' 역시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괴하고 오싹한 분위기 속에 귀여움과 유머가 있고, 그 안에는 생각보다 묵직한 이야기도 숨어 있다. 13년 만에 4K 리마스터링으로 다시 상영되는 '파라노만'은 8월 26일부터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