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세한 분석으로 작품을 다루면서 화가의 사연까지 생생하게 전달하는 스타 도슨트 정우철이 이번에는 '밤'을 주제로 그림 속 이야기를 전한다.
<화가가 사랑한 밤>에 그는 아름다운 밤 풍경을 담은 작품 101점을 엄선했다. 16인의 거장들은 어떤 밤을 그려냈을까, 궁금해하며 고요한 밤에 마치 도슨트를 듣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겨보았다.
밤은 인생에서 절반을 차지한다. 더 나은 절반을.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는 한여름 밤
책장을 넘기다가 처음 보는 낯선 이름의 화가를 만났다. 바로 하랄 솔베르그라는 화가였다. 조금 생소한 이 예술가는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북유럽의 풍경을 캔버스에 그려내며 감정을 담았다.
북유럽, 단어를 듣기만 해도 다채로운 자연의 풍광들이 떠오르는 곳이다. 하랄 솔베르그는 이런 환경을 최대한 활용해 그림의 소재로 사용했다. 드넓은 호수와 하늘로 곧게 뻗은 나무들, 그리고 그 숲속 안에 자리 잡은 아담한 오두막을 그려낸 <어부의 오두막>을 보면 마치 북유럽의 쾌청한 공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내 시선을 오랫동안 머물게 한 그림은 바로 <여름밤>이다.
북유럽 어딘가의 고요한 호숫가, 저 멀리 아직 빛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이제 막 해가 지고 있는 듯하다. 이 그림에서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테라스의 풍경이다. 간단한 안주와 술로 차려진 테이블, 두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운듯한 의자, 평화롭고 아늑한 분위기를 더하는 목조 건물과 꽃 장식까지.
이 작품은 하랄 솔베르그가 자신의 약혼을 기념하며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가 거주했던 노르웨이 오슬로 아파트의 풍경이라니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한 약속을 하는 순간을 그대로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감상하니 작품에 표현된 여름밤이 더더욱 아름답고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어둠을 통과해 색채를 되찾은 밤
클로드 모네와 밤의 조합은 약간은 낯설었다. 인상주의의 대표 거장, 색채의 마술사로 잘 알려진 화가였기 때문에 모네가 그려낸 밤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1868년 겨울은 모네에게 혹독했다. 전통적인 화풍이 성공과도 직결된다는 예술계의 분위기에서 모네는 인정받지 못했다. 끝이 안 보이는 가난의 고통과 아버지의 외면에서 힘들어하던 모네는 <부지발 센강 위의 얼음덩어리>를 그렸다.

얼음이 떠다니는 센강, 뿌연 하늘, 강가에 쌓인 눈들을 보면 한겨울의 차디찬 공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무채색으로만 그려진 이 그림은 잘 알려진 모네의 그림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마치 꽁꽁 얼어붙은 모네의 마음속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그림을 완성한 해에 모네는 절망을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여러 동료들의 도움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868년 이후 모네의 그림들은 다채로운 색깔들로 채워진다. 때로는 따사로운 햇볕 속 자연이, 때로는 태양의 위치에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이 그의 캔버스에 담겼다.
정우철 도슨트는 이를 다시는 무채색으로 세상을 그리지 않겠다는 모네의 다짐이라고 해석했다. 절망을 마치고 그려낸 모네의 그림들은 한밤중처럼 어두운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환한 미래가 곧 펼쳐질 것이라는 희망처럼 느껴진다.
이 외에도 <화가가 사랑한 밤>에서는 고흐, 뭉크, 밀레 등 다양한 거장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림의 화풍이나 시대적 배경 같은 이론적 설명뿐 아니라 화가의 삶과 감정까지 생생하게 그려내는 저자의 설명으로 마치 갤러리에서 실제로 도슨트를 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섬세한 붓질과 선명한 색채가 살아있는 도판 덕분에 작품을 꼼꼼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 화가들이 표현한 밤의 감성을 느끼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