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에디팅〉은 디에디트의 에디터들이 쓴 책이다. 이 책은 좋은 콘텐츠와 돈이 되는 콘텐츠가 다르다는 사실에서 멈추지 않는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대신, 좋은 콘텐츠가 돈이 되도록 연결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리고 그 연결을 "에디터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미술에서는 누가 그 연결을 해왔을까. 이지윤 큐레이터의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를 읽으며 떠올린 질문이다.
이 책은 르네상스부터 오늘날까지, 작품이 만들어지고 거래되고 소장되어 온 과정을 따라간다. 천국에 가기 위해 예배당 벽화를 주문한 상인 가문, 딸의 결혼 선물로 침실 장식화를 맡긴 귀족, 박물관을 국가 전략으로 삼은 영국, 그리고 AI가 작품 가격을 매기기 시작한 지금까지. 저자가 독자에게 건네려는 것은 한 작품 앞에서 "누가, 왜, 무엇을 위해 이것을 만들게 했는가"를 묻는 습관이다. 이 글은 그 질문 가운데 하나, 좋은 작품과 팔리는 작품은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따라가 보려 한다.
작품은 세 번 태어난다
"미술 작품은 세 번 태어난다고 합니다. 맨 처음에는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그가 품은 아이디어를 실현한 작품으로 태어납니다. 두 번째는 작품이 거래되는 미술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품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세 번째는 그 작품이 소장된 미술관이나 컬렉터의 집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습니다."
세 번 중 두 번은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난 뒤에 일어난다. 작품을 만드는 건 작가지만, 그 작품이 얼마의 가치로 남을지는 작가 밖에서 정해진다는 뜻이다.
좋은 작품과 시장을 이어온 사람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루벤스다. 저자는 그를 '최고의 프로듀서'라고 부른다. 루벤스는 7개 국어를 했고, 외교관으로도 활동했다. 그의 스튜디오에는 늘 20명이 넘는 화공이 있었는데, 커다란 천장화도 루벤스가 먼저 작은 그림을 그리고, 화공들이 그걸 나눠서 크게 옮겨 그리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그렇다면, 여러 사람이 함께 그린 그림은 덜 좋은 작품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누가 붓을 들었느냐가 아니라, 작가만의 아이디어가 담겨 있느냐는 것이다. 영화감독이 직접 연기하거나 촬영하지 않아도 영화의 주인인 것과 같다. 루벤스는 좋은 작품을 만들면서, 그 작품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팔 수 있는 방법까지 스스로 만든 작가였다.
작가 말고도 이 연결을 해온 사람들이 있다. 딜러와 컬렉터는 잊힌 화가를 다시 알렸고, 국가는 자기 나라 작가를 키웠다. 꼭 전문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저자는 한 작가를 꾸준히 지지하는 사람이 200명 정도 있으면, 비평가의 관심이 없어도 그 작가는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이 숫자의 근거가 나와 있지 않은 건 아쉽다. 하지만 미술을 평가하는 사람이 비평가나 큐레이터만은 아니라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서, 좋은 작품이란 무엇일까
6부에서 "과연 좋은 작품이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저자의 답은 이렇다. 좋은 작품은 한 시대만 보고 판단할 수 없고, 시간이 지나도 다시 발견된다. 같은 성모 마리아를 그려도 자기만의 방식을 고민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그리고 쉽게 타협하지 않는 작가의 태도가 좋은 작품을 만든다.
저자는 사진 공모전 심사에서 들은 말도 소개한다. 어떤 작품이 3, 4명의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만든 것 같다는 평가였다. 20명과 함께 그린 루벤스는 칭찬하면서, 이 작품은 왜 아쉽다고 했을까. 여러 사람이 참여했느냐가 문제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생각이 작품 전체에 이어져 있느냐가 문제였다.
정리하면 이 책의 생각은 이렇다. 작품의 가격은 시장과 사람들이 정한다. 하지만 작품이 좋은지는 결국 작가의 생각에서 나온다는 것.
타협하지 않는 것과 연결하는 것
〈미라클 에디팅〉은 좋은 콘텐츠를 돈과 연결하는 일이 "타협이 아니라 전략"이라고 했다. 이 책의 저자는 타협하지 않는 태도가 좋은 작품을 만든다고 했다. 두 말은 반대처럼 들린다. 하지만 루벤스를 보면 두 말이 함께 성립한다. 그는 자기 생각은 굽히지 않으면서, 그 작품을 세상과 연결하는 일도 해냈다.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 책은 좋은 작품이 따로 있다고 믿는다. 좋은 작품과 시장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는, 앞으로 미술을 만들고 소개하는 사람들이 풀어야 할 몫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