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심청’은 쉽게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막이 내린 직후, 곱씹던 시간,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몇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박간난은 왜 죽음을 선택하는가. 죽음을 앞두고 선주는 왜 그렇게 변화하는가. 그리고 이 희곡은 왜 심청이 아닌 '선주'를 바라보는가. 이 글은 그 질문을 끝까지 따라가 본 기록이다.

SYNOPSIS
아홉 척의 배로 중국과 교역하며 부를 쌓아온 선주.
그에게는 배의 무사 항해를 위해 해마다 어린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오랜 관습이 있다.
칠순을 맞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선주는 마지막 제물로 소녀 '간난'을 겉보리 스무 가마에 사들인다.
"다른 처녀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나를 제물로 삼은 이유가 뭐요?"
죽어야 할 이유를 묻는 간난과 그녀의 죽음을 설득해야 하는 선주. 출항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두 사람은 서로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고, 마침내 선주는 간난에게 뜻밖의 선택을 제안한다.
이제 간난은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데...
간난은 정말 ‘선택’했는가
박간난은 처음부터 죽음을 받아들인 인물이 아니다. 그의 목표는 바다에 빠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다. 세 아들이 간난을 회유하고 달래는 동안 간난은 잠시 흔들린다. 심청이보다 더한 효녀가 되어 연꽃 위로 떠오르리라는 말, 보물과 시녀가 가득한 사후세계에 대한 말에 귀를 기울이고, 팔자에 없던 왕비 노릇도 해 본다. 보름에 사흘을 더한 날 동안 '마마'라 불리고 빨간 천으로 지은 왕비옷을 입은 것이 전부지만, 간난은 그 꿈에 잠시 기대 본다. 그러면서도 끝내 그 모든 말에 넘어가지는 않는다. 눈이 총명한 사람이다.
그런 간난이 같은 처지의 선주와 대화하며 선주를 용서하고, 아비를 용서하고, 제물이 되기를 스스로 택한다. 타인에게 떠밀리는 죽음에서 자기가 고른 죽음으로 옮겨 간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주체적 선택일까. 간난에게 글을 알려 주는 이는 있어도 도망치는 법을 알려 주는 이는 없었다. 선주가 유일하게 도망길을 일러 주는데, 경리에게는 간난과 도망쳐 부부로 살라 하고 간난에게는 금은보화를 빼 두었으니 말을 타고 떠나라 한다. 간난은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아내로 그저 그렇게 살 수는 있겠지만, 내가 죽을 자리를 고를 수 있는 건 지금뿐이라며 바다에 빠지겠다고 답한다.
간난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아무개의 아내로 사는 삶’과 ‘내가 고른 죽음’이었다. 그 좁은 문 앞에서 고른 것을 자유라고 불러도 될까. 극은 그 질문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넘겨준다.
고르지 못한 사람
선주는 간난이 바다에 빠지는 날 함께 죽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닷새나 남은 날, 자기 그림자가 자신을 부른다며 괴로워하다 먼저 바다에 빠진다. 간난은 죽음을 선택했고 선주는 선택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를 선주가 치르는 대가로 읽었다. 남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며 살아온 사람이 정작 자기 죽음은 고르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야기의 중심이 선주인 만큼 간난의 '선택'이 선주의 몫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칠순을 넘긴 선주의 삶과 간난의 짧은 생이 나란히 놓일 때의 무게감이 마음에 남았다.
선주를 죽음으로 이끄는 존재가 마지막에 자신의 얼굴로 나타나는 점에 대해, 선주 역의 송흥진 배우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다. 선주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바다도, 관습도, 남의 손도 아닌 그 일을 해 온 자기 자신이며, 자신은 그 사람을 연기한다고.
이 답은 '대가'라는 나의 첫 감상을 다시 보게 했다. 대가나 벌에는 그것을 내리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하늘이든 바다든 간난의 원혼이든. 그러나 무대 위에서 선주를 부른 것은 외부의 심판자가 아니라 그 자신의 얼굴이었다. 선주는 누군가에게 처벌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해 온 일과 마주 선 것이다.
그렇다면 선주가 죽음을 고르지 못한 것도, 평생 남의 죽음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겨 온 사람이 자기 죽음 앞에서만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없게 된 결과로 읽힌다.
연극 '심청'이 묻는 것
이렇게 보니 이 희곡이 선주를 조망한 이유도 조금은 짐작이 갔다. 「심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이 연극이 묻는 것은 제물이 된 아이의 효심이 아니라 제물을 바치는 쪽의 삶이다. 누군가를 제물로 삼는 일을 해 온 사람이 끝내 어떻게 자기 자신과 마주 서는가.
그 해석을 거치고도 간난의 죽음이 지닌 무게는 여전히 남는다. 어쩌면 연극은 간난이 고른 죽음이 정말 자유였는지 관객이 스스로 묻게 하고, 그 물음을 해소하지 않은 채로 남겨 두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이 질문은 간난에게도 선주에게도 온전히 답해지지 않는다. 간난은 한정된 선택지 안에서 골랐고, 선주는 끝내 고르지 못했다. 객석의 나는 그 둘 사이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답을 얻기보다 질문을 안고 극장을 나서게 했다는 점이, 이 연극이 내게 남긴 가장 오래가는 것이었다.
고전 '심청전'의 익숙한 효(孝) 서사를 넘어 제물을 사들인 자의 자리에서 인물들의 선택을 다시 묻는 연극 '심청'은 11월 8일까지 여행자극장에서 공연한다. 2016년 초연과 2017년 재연을 거쳐 10년의 시간 속에 세 번째 무대로 찾아온 이유 역시, 죽음 앞에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묻는 이 질문이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우리 곁에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