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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미결(未決)

'아직 결정되지 않음', 혹은 '결말이 나지 않음'

   

한자로 '아닐 미(未)'와 '결단할 결(決)'의 만남이니, 어떤 결말도 허락되지 않은 채 영원히 미뤄진 상태를 의미한다. 누군가의 미결 사건이 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그 문제를 영원히 풀 수 없다는 절망을 안겨주는 동시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원히 노력하게 만들겠다는 집착의 선언이자, 그를 영원히 붙잡아두며 그의 기억 속에 절대 잊히지 않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선명한 의지이다. 사람은 풀지 못한 숙제, 결론짓지 못한 관계, 그리고 영원히 알 수 없는 미스터리를 가장 오래도록 기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 바로 누군가의 미결 사건이 되기 위해 자신의 삶과 살인 사건을 조각한 여자가 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 송서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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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미결 사건이 되기로 결심한 건 아니었다


 

서래의 삶은 굴곡졌다.


서래는 분명 전문성 있는 간병인이지만, 한국에서는 불안정한 간병인으로 살아야 했다. 서래의 인생은 위태로운 잠수 상태와 같았지만, 그녀는 언제나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다. 이 꼿꼿함은 벼랑 끝에 선 삶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방어 기제이자,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세상에 대한 저항의 태도였을 것이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떠한 의도가 담긴 행동을 한다. <헤어질 결심>은 이미 서래의 첫 번째 목적이 달성된 시점에서 진행된다. 자신을 억압하던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 말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 즉 서래의 두 번째 목적이 시작된다. 기도수 살해 용의자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는 것. 그녀는 치밀하게 사건을 자살로 위장한다.


이 과정에서 형사 ‘해준’을 만난다. 해준은 서래가 용의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우아한 태도로 대접해준다. 하지만, 곧 대접의 선을 넘게 된다. 서래를 감시하기 위해 이끌리듯 시작한 잠복 근무는 점차 관찰과 관음의 결로 전복된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해준은 그녀의 모든 사적인 부분을 곁에서 감각하며, 서래를 용의자가 아닌 인간으로 새롭게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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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와 해준의 대화는 흥미롭다. 서래의 ‘서툰 한국어’와 해준의 '쉽고 정확한 언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낯선 소통 방식은 자연스레 그들이 '단일한', '마침내', '미결' 등 문장 안에서의 한 가지 단어를 곱씹게 만든다. 해준이 서래를 관찰하며 곱씹었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그들은 빠져서는 안 되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서래의 목적은 서래의 사랑보다 중요했다. 서래는 해준을 속였고, 해준은 사적인 감정이 끼어든 탓에 서래의 증거인멸을 돕는다. 해준은 자신의 자부심이던 일에 대한 원칙을 ‘붕괴’시킨다. 완전히 무너지고 깨어진 해준을 보자 서래는 자신의 사랑을 비로소 완성한다. 해준이 이미 자신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후에 말이다. 그렇게 서래는 두 번째 목적을 이룬다.

 

 


마침내, 미결 사건이 되어


 

해준과 헤어진 후, 서래는 그와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해 두 번째 남편 임호신과 결혼한다. 하지만 이포로 간 것은 해준이 형사로서 자신을 찾아오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서래가 두 번째 목적을 이루어 자유로워지자, 해준은 그녀에게서 해방되었고, 그녀의 사건은 ‘종결’되었다. 서래에게 있어 '종결된 사건'은 해준의 기억에서 지워지는 사랑의 종결으로 다가온 걸까, 서래는 세 번째 목적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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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해준의 ‘미결 사건’이 되는 것. 해준의 삶에 영원한 미해결의 자국을 남겨 영원히 기억되는 것.


서래는 자신의 두 번째 남편 임호신의 죽음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이 살인은 단순히 어머니의 돈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 아니다. 이는 결정적으로 해준을 다시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지극한 사랑의 최후 통첩이었다. 그녀는 해준의 윤리적 딜레마를 자극하고 그의 형사로서의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외친다. “난 해준 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라고 말이다.


송서래의 마지막 행동, 즉 스스로 갯벌에 빠져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상태로 사라지는 행위는 미결 사건의 정점이다. 서래가 사실 죽은 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점은 분명하다. 그녀는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거물인 자기 자신을 영원히 제거함으로써 사건을 물리적으로도 영원히 종결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해준의 관찰 안에서 비로소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었던 서래는 미결 사건이 되어 해준의 기억 속에 박제되는 존재를 선택한다. 해준은 이제 홀로 남아 그녀의 흔적을 영원히 찾으며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서래는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해준에게 영원히 존재하는 사랑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이것이 송서래가 자신의 삶과 죽음을 바쳐 해준에게 남긴, 영원히 지속될 미결 사건의 존재론적 의미다.


마침내, 서래는 자신의 마지막 목적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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