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 만화 클리셰가 아직도 흥행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이런 작품들을 계속 찾아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키고, 싸우고 울고 웃으면서도 결국 ‘사랑’하기 때문에 그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주인공들에게서 ‘순애’의 본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엔 단순한 사랑 이야기.
지금부터 그런 매력이 가득한, 순정 만화 클리셰로 범벅된 일본 로맨스 영화들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히로인 실격
오랜 소꿉 친구 ‘리타’(야마자키 켄토)를 짝사랑하고 있는 ‘하토리’(키리타니 미레이). 자신은 ‘히로인’, 리타는 사랑의 ‘히어로’이자 운명의 남주로 언젠가는 리타와 연인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하토리. 그러나 어느 날, 리타가 왕따를 당하고 있던 아다치를 도와주게 되면서 아다치와 사귀게 된다. 리타를 아다치에게서 뺏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도중 초훈남 ‘코스케’(사카구치 켄타로)에게 고백을 받게 된다. 리타가 너무 좋은 하토리, 하지만 코스케도 넘나 훈남인 것! 하토리 인생 최대의 고민이 시작된다.
일본 순정 만화 실사 영화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다. 학창 시절 갑작스레 유행했던 영화인데, 특히 사카구치 켄타로의 인기가 교실을 휩쓸던 기억이 난다.
갑자기 대머리로 등장하는 여주인공, 뻔하지만 웃긴 남녀 주인공의 티격태격, 과장되고 유치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연기까지. 이 작품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특히, 이 영화는 순정 만화의 클리셰를 의도적으로 과장한다. 만화 커 같은 연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단순히 웃긴 걸 넘어 '장르의 패러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해당 작품 이후로 일본에는 실사화 작품이 쏟아졌는데, 그럼에도 '히로인 실격'은 순정 만화 실사화 대표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옆자리 괴물군
말썽을 일으켜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하루에게 과제물을 전해주러 간 시즈쿠. 그런 시즈쿠를, 하루는 유일한 친구로 인정한다.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여 성공하겠다는 일념의 시즈쿠는 하루를 알게 되면서 변화한다. 괴물이 아니라 독특한 개성을 가진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세계를 알게 된다.
역시 순정 만화 실사화의 대표작 중 하나. 원작의 에피소드를 띄엄띄엄 이어 붙인 구조라 원작을 꼼꼼히 읽지 않았다면 전개를 따라가기 조금 벅찰 수도 있다. 큰 기대 없이 봤는데, ‘하루’ 역 스다 마사키의 독특한 마스크, 그리고 하루 역과 정말 잘 어울리는 연기가 돋보여 영화에 몰입이 잘됐다. 정말 잘 뽑힌 캐스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차고 차이고
모두가 행복한 사랑을 바라는 ‘아카리’(하마베 미나미)와 한 발 뒤에서 사랑을 기다리는 ‘유나’(후쿠모토 리코). 서로 정반대의 성격이지만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된 둘. 고등학교 첫 학기가 시작되고 ‘아카리’와 ‘유나’에게도 마음을 전하고 싶은 상대가 생겼다. “너도 내 마음과 같을까…?”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로 가는 길 열일곱, 우리들의 성장형 청춘 로맨스.
영화는 아카리, 유나, 리오, 그리고 카즈 네 명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랑을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네 사람의 관계는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결국 자신들의 해피엔딩을 만들어 간다. 사랑 때문에 차이고, 상처받고, 흔들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 그들의 소망이 소망에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되는 과정을 보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영화다.
일주일간 친구
”며칠만이라도, 너의 단 한사람이 되고 싶어” 일주일이면 모든 기억이 리셋 되어 버리는 ‘후지미야’ 모든 친구관계를 단절한 채 자발적 외톨이로 교내 생활을 이어가던 그녀의 앞에 일주일마다 똑 같은 고백을 하는 끈질긴 녀석, ‘하세’가 등장한다. “상관 없어. 월요일이 되면 변함없이 물어 볼게” 굳게 닫힌 ‘후지미야’의 일상에 변화가 생기려던 그때, ‘후지미야’의 오랜 친구 ‘하지메’가 그녀 앞에 나타나고 깨질 듯 아프게 머리를 헤집는 기억들이 되살아 나기 시작하는데… ‘후지미야’의 기억 너머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과연 ‘하세’는 ‘후지미야’와 일주일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실사화 배우 하면 빠질 수 없는 야마자키 켄토가 여기서도 등장한다. 뽀글뽀글한 머리를 한 그의 모습은 원작 ‘하세’와 거의 똑같았다. 흔한 기억상실 클리셰지만, 구성과 전개가 탄탄하고 급격하게 변하지 않는 관계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가족 외 사람의 기억이 일주일마다 사라지는 여주인공. 당연히 친구도, 인간관계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혼자 지내는데, 무표정이던 그녀가 어느 순간 웃을 때 참 짠하면서도 예뻤다. 친절에 반해 버린 남학생 야마자키 켄토는 철벽같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따라다닌다. 그를 본 담임은 그녀의 사정을 알려주며 상처 주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묘안을 낸다. 바로 교환 일기를 쓰는 것! 정말 청춘물의 감성을 제대로 자극하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과 사랑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여주인공은 “매번 나에게 설명해야 할 거야”라고 말한다. 하긴, 함께한 추억을 한쪽만 기억한다면 언젠가 지쳐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말이 달라질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
일본 로맨스 영화는 이런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사랑을 보여준다. 이러한 부분들에 매력이 느껴지면서도, 순정 만화 클리셰의 한계는 분명하다. 인물들이 위기를 겪는 방식은 대부분 단 한 가지, 갑자기 상대에 대한 마음이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감정이 바뀌는 과정에는 작위적인 설정이 들어간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갑작스러운 이사, 사소한 오해 같은 것들 말이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인물들-특히 여주인공을 시기 질투하는 여학생이라거나-는 또 어떤가. 남주인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터무니없는 이간질을 하고, 여주인공에게 못되게 구는 유치한 인물을 보고 있자면 가끔 현타가 오기도 한다.
하지만 인물들의 움직임에는 한 가지 공통된 이유가 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 그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보고 있자면 내가 저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고, 나는 저런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실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배우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덤이다.
복잡함에서 벗어나 단순한 순애를 즐기고 싶다면, 해당 영화들을 가볍게 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