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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이 글은 네이버 웹툰 「집이 없어」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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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작가 와난이 그려낸 청소년의 성장형 드라마인 네이버 웹툰 「집이 없어」가 완결했다. 2018년부터 연재되어 269화라는 대장정을 끝마친 작품은 독자들에게 많은 울림과 눈물을 안겨주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집이 없어」는 주인공인 고해준과 백은영, 그리고 그들과 얽혀진 여러 인물이 서로의 개인사와 갈등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담는다. 잘 짜인 스토리와 공감을 자아내는 인물들의 서사, 지극히 현실적인 에피소드로 알려지기 시작한 작품은 점차 순위가 상승하며 화요일 웹툰의 상위권을 차지한다. 이후 우리 만화 수상(2022), 대한민국 콘텐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2022), 대한민국 어린이 대상 최고의 작가상(초록우산어린이재단), 월드웹툰어워즈 본상(2024)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지며 웰메이드 작품임을 입증한다.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명 ‘학교물’이 대체로 싱그러운 10대들의 로맨스나 폭력성을 띠는 피라미드형 계급 사회로 나뉘는 것에 비해 치유형 성장 스토리가 성공적인 결과를 보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많은 독자가 함께 울고 웃으며, 등장인물에서 나아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던 작품 「집이 없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누군가에게 집이 되어준 구 기숙사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집은 바쁜 일과를 마친 후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사회에서 받아왔던 긴장감을 잠시 내려놓고 사적인 시간을 영위하며 안정감을 부여받는다. 조건 없이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돌아갈 곳이 사라져 사회의 테두리에 위태롭게 걸쳐진 청소년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집이 없어」에서 해준과 은영, 주완은 각자 개인의 사정을 안고 자발적으로 집을 나오게 된다. 이 세 사람이 모이게 된 곳이 바로 단체 주거 시설인 기숙사이다. 독특한 점은 이들이 거주하는 기숙사 자체가 사회에서 동떨어진 장소라는 점에 있다. 기숙사 신청 기한을 놓쳐 억지로 들어가게 된 이 건물은 지금은 기숙사로 사용되지 않는 오래된 독채이다.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벌레는 물론이고 귀신을 비롯한 심령 현상이 종종 나타나며, 지하실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부적이나 저주 물품이 모아져 있다.
 
즉, 학교에서도 일반의 범주에서 벗어난 청소년들을 우연히 일반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난 공간으로 몰아넣은 셈이 되는데, 마이너스와 마이너스의 조합이 마치 곱하기로 플러스가 되듯이 긍정적인 양상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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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나눌 수 있는 공간


 

해준, 은영. 이 두 주인공이 변해가는 과정은 기숙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존재한다. 그들이 성장함에 따라 기숙사 또한 점점 사람이 살아가는 집의 형태를 띤다. 그렇다면 이들이 거주하는 구 기숙사가 어떤 특색을 가졌는지 집중해 볼 필요가 생긴다.


우선, 구 기숙사는 "밥"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집에 대한 주관적인 기억을 떠올릴 때 많은 사람이 연상하는 것은 집 안을 따스하게 머무는 공기와 포근한 이불,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이다. 화재와 안전사고의 위험으로 취사가 불가능한 대부분의 기숙사와는 다르게 이들의 기숙사는 자유롭게 요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야기 초반, 해준은 구 기숙사에서 대부분의 학생이 거주하는 신 기숙사로 이동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은영이 구 기숙사에 남겨지는 것이 걱정되었던 그는 홀로 좋은 선택지를 가지는 것보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인물과 함께하는 것을 택한다. 해준의 마음을 알게 된 은영은 그를 위해 기숙사의 부엌에서 아침밥을 차리기 시작한다. 신 기숙사에서 제공되는 아침밥을 먹기 위해 아침 일찍 떠나는 해준은 은영 덕분에 편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식탁에서 따뜻한 식사를 나누기 시작된 일은 이후 그들이 아무리 심하게 다투더라도 계속 이어지며, 이 관계의 끝에 온기가 존재함을 암시한다. 마주 보고 밥을 먹는 행위를 통해 서로의 유대감을 은연중에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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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보이는 해준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 중 하나는 귀신이다. 해준은 귀신이 보인다. 해준의 엄마는 귀신이 보였고, 해준도 그 피를 이어받는다. 그렇게 귀신은 한부모가정인 해준과 엄마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동시에, 해준의 반항적인 성향을 자극하여 하나뿐인 가족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나비 효과의 트리거로써 작용한다.


해준은 엄마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채 구 기숙사로 오게 된다. 엄마와 둘이 살아가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구 기숙사에서 "미영이 누나"라는 애칭의 귀신을 마주하고 안심하게 된다. 어렸을 때 마냥 무서워하기만 했던 ‘미영이 누나’는 해준이 성장함에 따라 가족 같은 존재가 된다. 혼자가 되어버린 해준에게 미영이 누나는 낯선 공간을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이 되게끔 이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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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귀신도 있다. 몸이 아플 때 많은 귀신을 보며 시달리곤 했던 해준은 기숙사에 들어온 이후 엄마의 모습 또한 보게 된다. 초반에는 애써 못 본 척하며 그 상황을 무마하려 하지만, 귀신의 장난을 참지 못하고 엄마의 형체가 서 있던 창문을 깨부수기 시작하며 점차 증세가 악화한다. 엄마의 흉내를 내는 것이 귀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분노가 차올라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하지만, 그 형상이 엄마인지 귀신인지 그 실체를 헷갈리기 시작한다. 보고 싶었던 엄마를 따라가 잡으려고 애써보기도 하며 온 힘을 다한다.

 

그러나, 이는 심적으로 약해진 해준이 귀신에게 홀려버린 것에 불과했고, 귀신을 쫓아가다 낭떠러지에 떨어질 뻔한 해준은 은영에 의해 생을 부지하게 된다. 가정사와 얽혀져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긴 해준에게 은영은 숨겨왔던 자신의 과거를 공개하며 그를 위로하게 된다. 귀신이라는 매개를 통해 남모를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게 된 두 인물은 더욱 돈독하게 맺어진다.

 

 

 

은영에게 기숙사는


 

기숙사는 가족으로부터의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어릴 적, 가정 폭력을 당했던 은영은 가족을 벗어나고자 중학생일 때부터 쉼터를 전전한다. 사적인 공간이기에 가장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집에서 은영은 기한 없는 폭행을 당한다. 기댈 수 있어야 할 가족에게 불신을 쌓게 된다.

 

따라서 이곳저곳을 배회하다 간신히 들어간 구 기숙사는 난생처음으로 은영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부모님이 전부이던 어린 시절을 벗어나, 옳고 그름을 스스로 사리 분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은영은 비로소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간다.

 

물론 구 기숙사에 들어온 초반에 은영은 그곳을 아지트 삼아 매일 밤 친구들을 불러 놀곤 했다. 내일이 없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동질감을 느끼고 그 자리에 머물기를 자처한다. 그런 은영을 해준은 조금씩 바꿔 나갔다. 가끔은 자신의 어린 모습을 떠올리면서, 가끔은 엄마의 그리운 훈계를 떠올리면서 그가 다시 출발점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은영은 방 안을 가득 채우던 더러운 쓰레기를 자신의 손을 치우고 청소한다. 알바를 통해 번 돈으로 식재료를 사고, 상처로 남았던 연극부 활동을 다시 시작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간다. 그 모든 것의 기저에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기숙사가 위치한다. 부모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는 행위로 본인이 누구인지를 확립해 나간다.


 

 

좋은 하루 보내


 

「집이 없어」에서 집이 없어진 청소년들은 서로에게 집을 지어준다. 자아의 성립과 도덕성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시기에 어른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혼자서 집을 지어낼 수 없다. 쓴소리를 해주며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도 없고, 고충이나 고민을 들어줄 사람도 없다. 나아갈 길을 바로잡아줄 사람이 없으니, 그들은 여전히 집이 없는 채로 떠돌아다니게 된다.


그런 청소년들은 기숙사라는 공유 공간을 통해 유대와 연대를 거듭하며 공동체를 성립한다. 서로가 자신의 어깨를 흔쾌히 빌려주며 허술해 보이는 첫 집을 지어나가게 된다. 집은 3차원상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적인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애에서 수없이 지나갈 많은 시간 중 위치하는 정서적인 안식처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들이 어른이 되고 난 후,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기숙사는 그들에게 "집"으로 기억될 것이다.


마지막 화에서 은영은 기숙사를 떠나가는 해준을 보며 말한다. “좋은 하루 보내” 이 말은 해준이 어렸을 때 집으로부터 외출할 때면 엄마와 나누던 인사였다. 오랜만에 들은 그 인사말에 해준은 너도! 라고 답하며 서로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준다.

 

이들은 어른이 없는 세상에 남겨진 서로를 알아보고 함께 집을 만들었다. 더 이상 사람이 사용하지 않아 낡고 노후했던 건물은 거주할 수 있는 형태의 기숙사로 변하고, 누군가의 집이 되어 주고, 이후 다른 학생들이 숙식을 해결할 공간이 된다. 시간이 지나고 은영마저 졸업해 버리더라도, 그들의 기억 속에는 위태롭던 그 시기를 든든하게 지탱하던 집으로써 자리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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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를 통해 떠나는 방법을 배우다


 

집으로부터 떠나야 하는 순간은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해준은 수능을 마치고 성인이 되자 두 채의 집과 이별을 맞이한다. 2년간 거주해 왔던 구 기숙사와 엄마와 함께 지내왔던 주택을 떠나 보냄으로써 정신적인 독립을 받아들인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엄마와의 이별에서 애써 미뤄왔던 과거를 받아들이고, 이제는 성인이 됨을 직시한다. 동시에 정들었던 구 기숙사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기 위한 발걸음을 옮긴다.


집이 안식처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떠나야 한다. 정해진 공간 안에서 영원하게 머물러 버린다면 그 공간은 더 이상 집이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을 가두기 위해 존재하는 감옥으로 변모해 버린다. '떠나야지만 돌아올 수 있다'는 집이 가지는 유일한 전제일 것이다. 떠나갈 집이 없는 청소년들은 기숙사를 통해 자립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결국 「집이 없어」는 떠나는 방법을 어른 없이 연습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된다.

 

*

 

「집이 없어」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은 자신의 어린 모습을 투영한다. 아직은 어리다는 이유로 종속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의 상처를 되돌아본다. 그러고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토닥인다. 그래도 이만하면 잘 자라주었다고, 그래서 고맙다는 애정 담긴 인사를 작품으로 전해본다.


「집이 없어」가 대중적인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을 향유하는 모두가 체온을 높여줄 온기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차가워진 사회에서 따뜻하게 안아줄 누군가가 내심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월요일 밤마다 연재되는 가상의 세계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공감해 주고 갈등과 해결을 통해 집으로 기억남을 만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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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훈제오리
헙 잘 보던 웹툰이었는데 완결이 났군요..! 그렇다면 정주행하러 가야겠네요. 오늘 글은 정주행 끝나고 다시 봐야겠습니다 :D 하하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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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21:14:3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