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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물수제비처럼, 탱고의 리듬처럼 - 부에노스 아이레스여 안녕

엉망진창인 곳에서도 여전히 사랑할 것을 발견해내는 것

by 김소원 에디터
2026.10.2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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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고에 각별한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에서 우연히 탱고 선율이 들리면 이상하게도 생각을 멈추고 음악에 집중하게 된다. 한 곡 안에서도 다채롭게 변주되는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삶의 희노애락이 모두 한 곡에 담겨 있는 것 같다.


      탱고의 본고장은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여 안녕>은 그 도시의 풍경 위로 탱고 리듬이 깔리며 시작된다. 아르헨티나가 미국을 제치고 경제대국이던 시절에는 수많은 이민자들이 '아르헨티나 드림'을 안고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인 2001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떠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지속된 경제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지쳐가고 치안은 점점 나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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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리오도 이민을 가려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낮에는 구두 가게를 하고 밤에는 탱고 밴드의 반도네온 연주자로 공연을 하며 열심히 살지만, 아르헨티나에 미래가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도시는 자꾸만 훌리오의 발길을 붙든다. 악연으로 만난 여자 마리엘라와의 대화가 어느덧 즐거워지는 걸 느낄 때, 어릴 적 아버지와 찍은 사진을 정리하며 추억에 잠길 때면 반드시 떠나겠다는 굳은 결심도 흔들린다. 무엇보다 그에겐 탱고가 있다. 뉴스를 보며 푸념하다가도 저녁에 반도네온을 들고 탱고 한 곡을 멋들어지게 뽑아낼 때면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훌리오도 관객도 믿고 싶어진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현실은 이 안전지대마저 침범해온다.


      영화에서 큰 분기점이 되는 사건은 실제로 2001년 아르헨티나에서 있었던 '코랄리토'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지속된 경기 침체 속에서 대규모 예금 인출로 인한 자금 유출과 은행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시행한 조치로, 은행 예금의 현금 인출 한도를 제한한 사건이다. 이민 자금으로 쓰기 위한 돈을 모두 달러로 은행에 입금한 훌리오도 큰 피해를 본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은 미리 알고 돈을 빼두었다는 게 밝혀지며 격렬한 시위가 연일 벌어지는 와중에 훌리오의 밴드는 부패한 정치인에게 아내의 생일파티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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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었던 음악은 갑자기 현실의 한복판에 놓인다. 밴드는 이런 공연을 할 수는 없다는 멤버와 돈이 절실한 홀리오 및 다른 멤버들이 대립한 끝에 결국 해당 멤버 없이 공연을 하게 된다. 훌리오의 반도네온 선율을 배경으로 경찰이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장면과 불타는 거리의 모습이 비친다. 공연에 불참한 멤버는 황망한 얼굴로 거리를 걷다가 휘말려 목숨을 잃는다. 그날 밤 밴드는 부패한 권력으로부터 돈을 벌었지만, 동시에 그 권력으로 인해 친구를 잃는다. 아이러니한 비극이다.


      이제는 더 망설일 것도 없어서 배를 타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나는 길. 선장은 이런 희망 없는 나라, 나중에는 떠나길 잘했다 생각할 거라며 농을 건넨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훌리오는 비상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그토록 떠나고 싶어 하던 도시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반도네온을 잡고 탱고를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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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결정은 앞서 훌리오와 마리엘라가 강가에서 물수제비 뜨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물리 법칙상 물 아래로 가라앉는 게 정상인 돌이 어떻게 통통 튀어갈 수 있는지 묻자 마리엘라는 그렇게 믿으면 된다고 다소 허무한 답을 했었다. 훌리오가 돌아가기를 택한 건 문득 그 대화를 떠올렸기 때문이 아닐까? 가라앉는다는 결말이 정해져 있어도 그 전까지 돌은 자신만의 몸짓으로 물 위를 튀어오른다. 훌리오는 모든 걸 등지고 떠나는 대신 그 돌처럼 결국엔 가라앉을지라도 물의 표면과 부딪혀가며 살겠다고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삶의 태도는 합리적인 결정이나 이성적인 판단과는 반대되는 무언가다. 엉망진창인 곳에서도 여전히 사랑할 것을 발견해내는 것, 가망 없어 보이는 사회에서도 신념을 지키며 사는 것, 나 하나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나마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 것처럼. 당장 아르헨티나의 상황이 극적으로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고 친구의 죽음은 여전히 상처로 남겠지만 훌리오는 그 모든 것을 마주하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이 삶을 경외한다는 내용의 'Honrar la vida'인 것이 훌리오가 앞으로 살아갈 모습을 암시하는 듯하다.


      탱고로 시작해 탱고로 끝나는 음악영화이기에 이 글도 탱고에 대한 생각으로 마무리해보려 한다. 탱고는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추는 춤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서로의 심장이 닿는 것이다. 의미를 알고 나니 격정적으로 몰아치다가도 끈적이며 늘어지는 그 리듬이 변화무쌍한 인간의 삶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훌리오를 중심으로 쓰다 보니 비중 있게 다루진 못했지만 이 영화에는 삶의 불확실성과 그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장면이 여럿 나온다. 혼자서 택시 기사 일을 하며 아들을 키우는 게 자랑스럽다며 씩 웃던 마리엘라의 모습, 양로원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던 왕년의 탱고 스타가 훌리오의 밴드에 들어가 다시 한번 박수갈채를 받는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노를 저어 다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가던 훌리오의 모습도 그중 하나다.

       

      물수제비 돌멩이처럼, 그리고 탱고의 리듬처럼, 끝나기 전에는 어디로든 튀어 오를 수 있다. 아직 심장이 뛰고 있으니 가라앉기에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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