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찬 바람이 불고 옷차림이 두꺼워지는 겨울이 머지않아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뼛속까지 스며들어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하는 추위를 무더위보다 더 기피하고, 때문에 겨울이 오는 걸 반기지 않는 편이다. 뜨거워서 몸이 타 버릴 것만 같은 더위로 여름 내내 고생했음에도 말이다. 겨울의 장점을 굳이 찾자면 비슷한 온기를 가진 사람들 옆에 꼭 붙어 있어서 그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체감하게 해 주는 영화를 찾는 데 있다. 영화 <패밀리맨>에는 내가 느끼고 싶어 하는 온기가 넘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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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인간적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남자가 있다. 월스트리트에서 투자 전문 벤처 기업가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잭(니콜라스 케이지 분)에게 넘치는 건 돈과 명예다. 안정적이다 못해 호화롭기까지 한 그의 생활은 남들에게 꿈이자 동경으로 비치고, 잭 본인도 이 생활에 뿌듯함과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잭은 한때 사랑하는 연인 케이트(티아 레오니 분)와 13년 전에 맹세했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다. 부족함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잭에게는 사랑과 낭만이 공백으로 남아 있지만, 그는 그 공백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사람들은 저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추억을 새로이 만들거나 선물을 주고받으며 추위를 견뎌내고자 한다. 반면 비싼 코트를 입고 눈 내리는 거리를 거니는 잭의 옆에는 아무도 없다. 이런 잭이 안타까웠던 걸까. 우연히 식료품 가게에 들린 잭은 총을 든 강도 캐쉬(돈 치들 분)와 마주하고, 기업가다운 설득으로 위기에서 모면한다. 잭은 가게를 떠나는 캐쉬를 불러 세우며 강도질을 관두고 훨씬 더 나은 일을 해 보라고 조언한다. 이 조언은 캐쉬에게 일종의 ‘구제’로 받아들여진다. 잭의 말을 가볍게 듣는 것 같았던 캐쉬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긴다. “당신이 선택했다는 걸 잊지 마요. 당신이 자초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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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찝찝하지만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길 만한 이 사건은 잭의 매끄러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문자 그대로 정말 송두리째. 마법에라도 걸렸는지 다음날 잭은 펜트 하우스가 아닌 조촐한 주택에서 눈을 뜬다. 게다가 혼자도 아니다. 한때 연인이었던 케이트가 아내로 있고 슬하에는 두 명의 아이까지 잭을 가족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이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잭은 자신의 성공적(이라고 믿은)인 인생을 대신 살고 있는 캐쉬를 다시 만난다. 그는 말한다. “이건 찰나의 경험”이라고. 명확한 답을 듣고 싶은 잭에게 캐쉬는 시간은 충분하니 스스로 알아내라는 모호한 말만 늘어놓고, 어쩔 수 없이 잭은 다시 케이트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초라한 환경에 놓인 잭은 한숨이 나온다.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동네에서 개최한 파티는 잭의 시선에서 촌스럽기 그지없고, 육아를 해 본 적 없기에 기저귀 가는 것도 버거워한다. 바뀐 삶에서 근무하는 타이어 가게 일은 서툴고, 이 와중에 벌이마저 시원찮아 이전에는 쉽게 살 수 있었던 비싼 옷은 그저 입어만 봐야하는 처지에 놓인다. 풍족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잭은 혼란스럽기만 하고, 때마침 찾아온 결혼 기념일에 케이트에게 자신의 심정을 고백한다. 잭의 고백을 가만히 듣고 있던 케이트는 그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짚어준다.


 

잭: (…) 나는 모든 일에 확신이 있던 사람이었어. 의심도 후회도 없었지. 

케이트: 지금은?

잭: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겠어.

케이트: 나도 그래.

잭: 당신도 확신이 없다고?

케이트: 나라고 내 꼴이 왜 이런 지 생각 안 해 봤을 것 같아? 내 사무실은 쓰레기장이야. 전화도 내가 다 받는데 내 월급 알지?

잭: 당신 월급은 월급이라고 할 수도 없어.

케이트: 모든 게 술술 풀리는 삶이 상상이나 돼? 뭐든 말만 하면 해결되는 삶 말이야. 

잭: 최고의 삶이지

케이트: 나도 그런 생각해. 가끔은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어. 

잭: 그래?

케이트: 하지만 그 인생에는 가장 소중한 게 빠져 있어. 당신과 아이들 말이야.

잭: 소중하지.

케이트: 당신은 소중한 게 뭐야?

 

 

넓은 평수의 집과 써도 써도 넘치는 돈으로 중심가에서 떵떵거리고 사는 삶. 잭은 그 삶을 “완벽하고 멋진 인생”이라 여겨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손에 쥐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 하지만 케이트는 말한다. “이미 모두 우리를 부러워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를 다시 찾게끔 해 주는 케이트의 말을 듣고 잭은 조금씩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리고 13년 전 케이트와 했던 약속을, 바뀐 삶의 자신이 지켰기에 이 삶이 가능했음을 깨닫는다. 돈이나 명예가 아닌 인간적인 사랑을 택해서 이루어진 삶에는 추억이 깃든 집과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있고, 흰머리가 될 때까지 서로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잭과 케이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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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 잭은 바뀐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마음먹는다. 이제 바뀐 인생은 찰나의 경험이 아니라 진짜 삶이 된다. 그는 아이들을 품에 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충만함과 자신을 신뢰하는 아내의 눈빛에서 오는 든든함으로 지어진 삶을 “완벽하고 멋진 인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뉴욕 중심가를 누비며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비어 있던 이전의 삶에는 부재했던 온기가 채워지게 된 것이다. 억만금을 주어도 갖지 못할, 온기로 빼곡하게 가득한 삶의 중요성을 알아버린 잭은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버지가 된다.

 

원래의 현실로 복귀한 잭은 찰나로 경험했던 바뀐 삶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기존의 삶을 바꿀 만한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다. 되돌아간 타임라인에서는 아직 케이트와 했던 약속이 유효했던 것. 이전의 잭이었다면 약속 자체를 까맣게 잊고 살았을 테지만 가족이라는 존재감이 두텁게 자리 잡은 현재, 그는 바뀐 삶을 실현하고자 냅다 케이트가 있는 곳으로 뛰어간다. 영화는 잭과 케이트가 식사 자리를 가지며 대화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리고 두 사람의 미래를 단정 짓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앞날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어쩌면 <패밀리맨>의 서사가 다소 상투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진부한 서사는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바람이 깃들어 있기에 아직까지 유효하다. 현재의 삶에 부재하는 가치를 얻을 기회가 주어진다는 마법 같은 이야기. 종종 잊어버리기 쉬운 사랑의 힘을 발산하는 이야기. 잭과 같은 기회가 내게도 주어진다면 나는 단박에 대답할 것이다. 기꺼이 그 흐름에 탑승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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