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두 죄인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살아남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산다. 작게는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부터, 크게는 생명을 해치는 것까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햄릿> 대사들을 인용하자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는 남을 먼저 먹는지 혹은 그에게 먹히는지에 따라 결판나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장군 맥베스는 마녀들에게 왕이 될 거란 예언을 듣는다. 마녀들의 예언과 아내의 부추김에 떠밀린 그는 앞날에 방해가 되는 이들을 한 명씩 ‘잡아먹는다’. 손에 피를 묻히고 쓴 왕관과 죄의 무게는 숨통을 짓누르고, 맥베스는 파멸에 이르며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연극 <칼로막베스>는 <맥베스>에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더하고, 무협과 액션, 슬랩스틱 코미디와 언어유희까지 더했다. 현대적이고, 도발적이며, 폭력적이지만 고뇌와 철학도 가미한 <칼로막베스>는 고선웅 연출과 극공작소 마방진이 창단 20주년을 맞아 올린 작품이다. <칼로막베스>는 2010년 단 3일간의 초연으로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2026년 2월 27일에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16년 만에 관객을 만난 작품은 3월 15일에 막을 내리며, 4월 부산과 성남에서도 공연된다.
<칼로막베스>는 ‘칼로 상대를 막 베어버린다’는 뜻의 언어유희와 중의적 의미가 담긴 제목이다. 맹인술사의 예언에 흔들리고, 아내의 야망에 휘말린 막베스는 피비린내 나는 칼부림과 액션으로 지옥의 한가운데를 돌파한다. 막베스의 지옥엔 악몽처럼 머릿속을 좀먹으며 잠들지 못하게 만드는 스스로의 야망, 즉 자유의지도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칼로막베스>는 마녀의 예언과 아내의 욕망뿐만 아니라 작품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새로 설정했다.
작품 배경은 먼 미래, 강력범과 무정부주의자들이 뒤섞인 무법지대 수용소 ‘세렝게티 베이’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범죄자들이 쏟아져 나오자, 경찰 정부는 범죄자들을 세렝게티 베이에 몰아넣었다. 그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죽이게 설계한 것이다.
게임 플레이어가 자동 플레이 모드를 켜듯, 악한 신이 인간들을 극한 상황에 던져놓고 관망하듯 경찰 정부는 범죄자들을 방치한다. 칼 한 자루와 죄수 번호, 리바이스보다 오십 배 질긴 죄수복을 받은 세렝게티 베이의 인물들은 왕이 아닌 보스 자리를 두고 목숨을 건다.
원작을 거의 그대로 따른 작품은 결말에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엔딩에선 막베스가 살해한 희생자이자 친구였던 방커 아들 플리언스가 나타나 생존자들에게 총기를 난사한다. 원작에서 던컨 왕 아들 말콤이 왕위에 오르며 새로운 질서가 찾아오는 것과 달리, 더 큰 혼란과 악(惡)이 도래하는 마지막 장면은 섬뜩한 현실이었다. 막베스로 대표되는 악의 연대기에 마침표가 찍히는 게 아닌, 새로운 디스토피아의 예고편과도 같았다.
<칼로막베스>의 결말은 시즌제 장르물 드라마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엔딩을 연상시킨다. 한 빌런을 해치우고 시즌이 마무리돼도, 다음 시즌엔 더 강한 빌런이 등장한다. 드라마가 완전히 종료될 때까지 빌런은 모습과 이름만 바꿔가며 끝없이 나타난다. 이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악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의 차가운 이치를 반영한 결말은, 인류 출현 후 끊긴 적 없는 악의 고리가 더 단단해질 것을 암시하며 섬뜩한 잔향을 남겼다.
연극 <칼로막베스>는 원작의 레이디 맥베스를 모두 남성 배우들로 캐스팅해 화제가 됐다. ‘막베스 처’는 소리꾼 김준수와 극공작소 마방진의 베테랑 배우 원경식이 연기한다.
국립창극단 스타였던 김준수는 퇴단 후 첫 작품이자 첫 연극으로 <칼로막베스>에 도전했다. <리어>, <베니스의 상인들>, <심청> 등의 창극들에서 압도적인 실력과 존재감을 뽐냈던 그는 <서편제> 등의 뮤지컬 무대에선 창극과는 다른 결의 노래와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창극 <살로메>, <패왕별희>에서도 여성을 연기했던 김준수의 막베스 처는 강렬하고 과감하며, 도발적이었다. 창극, 뮤지컬과는 다른 에너지로 무대를 압도한 그의 막베스 처는 창으로 대사를 구사하기도 하며, 능청스러운 애드립으로 연극 무대를 쥐락펴락했다. 몽유병에 걸린 막베스 처가 죄책감에 시달리며 미쳐가는 독백 연기는 작품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스스로를 ‘팜므파탈’이라 하는 대사가 주어졌지만, 김준수의 막베스 처는 단순히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이 아닌 야망 가득한 인간, 주도면밀한 전략가이자 욕망의 화신이었다.
작품은 극공작소 마방진과 고선웅 연출 특유의 언어유희와 위트, 하이 텐션으로 점철됐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과 많은 대사에도 불구하고 경쾌하게 질주하던 극은 막베스 처의 죽음이 알려지는 장면부터 분위기가 바뀐다.
공사 중인 건물과 같은 철골 구조의 무대엔, 후반부터 거대한 장막이 드리우며 그림자가 비친다. 칼 한 자루를 든 막베스는 달려드는 이들을 기계적으로 막고, 때리고, 찌르고, 잡아먹는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롱테이크(long take) 기법으로 촬영된 ‘장도리 액션씬’을 연상시키는 해당 장면에선 강한 빛과 그림자가 함께 쏟아진다. 이승을 떠나는 막베스 처는 노승을 따르고, 칼을 휘두르는 막베스의 뒤론 불교의 ‘반야심경’이 배경음으로 흐른다.
‘가자, 가자. 넘어서 가자. 완전히 넘어가 영원한 깨달음으로.’
막베스 처의 마지막인 몽유와 더불어 극의 클라이맥스인 막베스 롱테이크 액션씬에 흐르는 반야심경 마지막 구절의 뜻이다. 원문 구절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다.
막베스 부부가 완전히 넘어가는 곳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다. 미쳐버린 채 독백을 쏟아내던 막베스 처는 말없이 노승을 따르며 저승으로 가고, 생전 세렝게티 베이를 누비며 칼을 휘두르던 막베스는 공중에 매달린 채 육체가 전시된다. 끊임없이 움직이던 욕망은 경계를 넘어가며 멈춰버린 허무가 된 것이다.
막베스가 얻을 ‘영원한 깨달음’은 무엇일까. 손에 묻힌 피는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으며, 권력은 덧없고, 욕망만을 위해 달리는 인생은 허무할 정도로 짧다는 것이다. 맹인술사의 예언을 받을 다음 대상은, 사람이 아닌 누구나 품고 사는 ‘나약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