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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새로운 챕터: 이방인의 시선 얻기

02. 혼자 살기 part 4

by 정현승 에디터
2026.10.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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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 지 50일이 넘었다. 말이 50일이지 500일은 지난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땐 손에 꼭 쥐고 살던 것들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빈자리는 새롭고 낯선 것들이 채운다. 여전히 잘 알아듣지 못하겠는 말과, 나는 공유하지 못하는 사회의 습관 같은 게 빈 자리를 채우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것은 20년 남짓 유지해 온 나만의 면역체계와 부딪히는 일만 남았다. 10월엔 이곳에 마음을 붙이는 것만 해도 애를 많이 썼다.


      생각해 보면 늘 어딘가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코로나로 입학이 미뤄졌던 고등학교에서의 첫 수업, 바람 빠진 풍선처럼 굴었던 신입생 환영회, 긴장을 잔뜩 했던 연합동아리 첫 만남도. 쉬운 건 하나도 없었고 모두가 어렵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꼭 그렇게 애먹었던 것들을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좋아하게 되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함과 동시에 막막한 서울 생활을 함께 할 가족 같은 친구들을 얻었다. 신입생 환영회가 아닌 새내기 첫 팀 프로젝트에서 대학 생활 내내를 함께 할 친구를 사귀었다. 마음을 쉽게 먹는 데에만 6개월을 넘게 썼던 동아리는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할 만큼 중요한 경험이자 일부가 되었다.


      그러니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낯선 땅에서 하루아침에 적응할 거라는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간과한 사실은, 나는 상상에 강한 사람이지 대비에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방인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방인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건 아주 낯선 경험일 것이라고 ‘상상’을 해왔다는 거다. 도롱! 또 새로운 챕터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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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살 땐 지방에서 상경한 내가 비주류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오던 사람들, 마음만 먹으면 팔 뻗는 곳에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그렇지 않은 나는 비주류일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그랬다. 정작 내가 가지고 있던 게 무엇인지는 몰랐던 것 같다.


      태어나 처음으로 유럽에서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 유럽이라는 공동체가 어떤 연결고리를 공유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껴진다. 물론 정확한 지식이나 이해도는 떨어지지만, 아시아의 단일 민족 국가에서 나고 자란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큰 노력 없이도 의사소통의 벽을 허물고, 비슷한 생김새 사이에서도 다름을 찾는 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내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이들도 각자 다른 점이 존재하고, 서로의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나와봐서야 몸소 이해하게 됐다. 내가 모르는 만큼 그들도 모르는 게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동양인이 나 혼자뿐인 학교 수업도, 떠듬떠듬 말하는 언어로 이어지는 대화도 이전만큼 두렵지 않아졌다.


      그러니 해외로 나와보는 것이 얼마나 ‘다른’ 경험이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나보다 싶다. 내게는 그저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문화’로 뭉뚱그려 존재하던 것들이 각각의 다른 존재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되니까. 어쩌면 서울에서의 내가 비주류라고 떠들던 날들에도 깨닫지 못했던, 내가 가진 단일성과 타인이 가진 다양성의 성질을 깨닫게 된다.


      이곳에서의 삶은 꽤 재미있다. 여행을 다니기 위해 몰아넣은 학교 시간표에 따라 알아듣지 못하는 수업을 듣는다. 그리고 남은 일주일의 5일을 새로운 경험을 하는 데에 쓴다. 최근 프랑스는 연이은 시위를 겪고 있다.  지금 지내고 있는 파리는 물론이고, 프랑스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학교 환경 개선을 위한 학생 시위와 함께 각종 계층의 시위가 더해져 규모가 커졌다. 그 정도가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전파를 탄 덕에 나의 안녕을 걱정해 주는 감사한 연락을 많이 받았다.


      시위 진압의 폭력성과 더불어 수많은 약탈이 진행되는 걸 보면 스스로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계획해 두었던 프랑스 소도시 여행을 모조리 취소했다. 근교의 관광지를 다녀오는 길에는 역에서 시위대의 몸을 수색하고 있는 경찰을 목격하기도 했다. 교환학생 생활에 지장이 가지 않겠느냐고 걱정의 목소리가 있지만 그것마저 프랑스답다고 생각한다. 그 무엇도 예측하거나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매일이 새로운 영감이다. 난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오는 습성을 아직도 버리지 못해서 매일의 기분이 언덕처럼 오르내리곤 하지만, 새로운 환경과 공기는 내게 새로운 영감이 되어준다. 이곳의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지, 무엇을 외치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내가 있는 자리와 ‘우리’가 있는 자리를 고민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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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늘 정해진 길을 잘 지켜서 걷는 어린아이였다. 크게 속 썩일 일 없이 밥을 많이 먹으며 컸고, 공부가 세상 전부는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자고 스스로 마음먹었다. 서울의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고, 남들이 하는 멋진 일은 뭐든지 하고 싶었다. 고리타분한 성격은 아니지만 정도를 걸어왔다고 자부한다. 그런 내게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모양으로 굴러들어 온 프랑스 생활이, 나는 꽤 두렵지만 즐거운 것 같다. 더 이상 낯선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게 스트레스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내일의 목표는 오늘보다 겁이 없어지는 것. 누군가는 무책임할 정도로 무모한 일을 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하면 조금 이상해 보일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누구인지를 이 낯설고 거친 땅에 나를 던져 보임으로써 알아보려고 한다. 마음을 거창하게 먹으니 점점 무거워지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뇐다. 도롱, 도롱, 도롱… 새로운 챕터가 마구마구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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