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의지를 관철하다 - 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서/문학]

나는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by 정예진 에디터
2026.10.28 12:09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나란 놈은 심술궂은 인간도 아닐 뿐더러 심지어 악에 받친 인간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저 괜스레 참새들이나 놀리는 주제에 그걸 자기 위안거리로 삼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시시각각, 심지어 울화통이 터져 미칠 것 같은 순간에도 

      속으로 수치스럽게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도무지 의식이 발달한 인간이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존경할 수 있겠소?”

       

       

      131.jpg


      수치라는 감정은 사람을 절대적으로 ‘타자’로 만드는 것 같다. 이를 익히 알고 근면·성실히 성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도스토옙스키가 그토록 열망하던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있겠지만, 보통은 그 성찰이라는 고차원적인 행위가 수치라는 중간 정도의 수준에서 쉽사리 종결되고 만다.


      중세에서는 배설이 암묵적인 금기어가 되었다고 한다. 특정 무언가를 아름답게 표상하여, 세상에 드러내는 신화는 생사를 오가는 시민들의 감성을 자극해야 하는 동기를 가장 1순위로 꼽는다. 모멸감 또한 하나의 ‘배설’이지 않을까? 내밀한 열쇠로 철저하게 침잠하고 그 열쇠의 행방 또한 잊어버려 무의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열등의식’일 것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독자의 가슴 속 아픈 단면을 날카롭게 찌른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부정으로 점철되어 있던 그 심장 깊숙한 곳을 해부하여 눈앞에 직접 들이민다. ‘어서 확인하시오, 당신의 무의식을. 아주 볼품없지만 기이하게 빛나는 원석 같지 않나요?’


      마음 한구석이 텁텁하게 남았다. 역시 심장 내부의 한 단면을 건드린 대가는 아주 거대한 모양이다. 완독이라는 것은 내게 있어 아주 깊은 개운한 움직임 중 하나였는데, 압박감이 묵직하게 가슴 한편을 짓눌러 아주 작은 공간에 자리 잡은 기분이다. 열등의식을 마주한다는 것은 극도로 불쾌감을 느끼게 하고 자기 자신을 세상에서 철저히 고립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 누가, 아주 찰나의 삶 저편에 자리한 수치라는 정서를 직면할 수 있겠는가? 존재를 위협하는 날것의 감각일 텐데, 모든 후폭풍을 감당하는 것은 죽음을 앞둔 현자나 가능할지 모른다. 마음을 헤집는다는 것은 자연스레 우울감에 빠지게 한다.


      수치라는 불쾌감의 근원에 얼굴을 맞대기 위해서는 아주 방대한 양의 대담함을 끌어안고 있어야 한다. 그 대담함이 또 다른 객기로 변형될 수 있지만, 삶에는 때때로 혈기를 앞세운 충동이 필요한 법. 도스토옙스키를 통해 얽히고설키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객기의 현장으로 한걸음 내딛는다. 결국은 ‘나’를 알게 하고, ‘너’를 알게 하고, ‘우리’를 알게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감히 지울 수 없는 ‘욕망’에 관하여 ‘쇼펜하우어’의 ‘권태’가 뇌리에서 번뜩였다. 낙원이라는 가장 달콤한 단어를, 입에서 수없이 굴려보고 마침내 다다를 환상적인 결말을 깊이 염원한다. 단 한 순간에도 낙원을 거닐어본 적 없음에도 낙원이 주는 달콤한 현실적 감각은 괜스레 마음을 들뜨게 한다.


      막상 낙원이 실재하는 요소를 전부 갖춰 영롱한 환경이 사람의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면, 사람은 또 다른 요구 조건을 개조하여 그곳을 피로 물든 전쟁터로 변모시킨다. 자신만의 철칙이 구현된 새로운 ‘낙원’을 개척하려 한다.


      인간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이성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나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기를 좋아했다. 심지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어도 욕망을 따르기를 우선시했다.


      “실상 인간이 안락 하나만을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고통도 딱 그만큼 사랑하는 건 아닐까?”


      파괴와 고통, 혼돈이라는 온갖 부정적 감정을 도사리게 한다고 해도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절대적으로 독점한다. 욕망을 ‘선’의 방향으로 개의치 않게 개량하려 하는 선량한 욕망을 주장하는 현자는 인간 질서에 불복의 의사를 밝힌다. 아마 임종 직전에 과거 자신을 향한 조소가 봇물 터지듯 솟구칠 것이다. 인간의 뚜렷한 볼썽사나운 성질을 외부로 돌릴 수는 없다.


      흔히 믿는 ‘선’을 빼곡하게 갖춘 이성의 호령으로 욕망을 쉽게 재단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무지몽매한 일인지,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다. 욕망을 욕망 자체로 존중한다. 인간이라면 도통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피조물이라는 것을,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것만이 인간에게 결코 이로울 수는 없다.


      『죄와 벌』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위업을 이루기까지 도스토옙스키에게는 유구한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의 소설적 진화에서 일종의 ‘변태’ 과정을 포착하기 위해서 희미한 여운이 감도는 달고도 쓴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음미해 보자.

       

       

       

      KakaoTalk_20260725_131411650.jpg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정예진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Opinion] '60억 분의 1'의 확률 - 넷플릭스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드라마/예능]
      2. 02 [Opinion] 눈 부신 태양만이 내리쬐는 곳 [도서/문학]
      3. 03 [PRESS]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밤 - 유령들 [도서]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