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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박경리 '토지' 답사일지 2

통영과 거제와 아모르파티

by 서상덕 에디터
2026.10.2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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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리 씨 '토지'를 읽노라니 그토록 추억하던 사람 내음 물씬 풍기온다. 조금 울컥한다. 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정서랄까. 고향이 대구이니 내 찾던 내음도 대구 사람 냄새이려니 하다가, 문득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을 경상도 정서라고 일축할 수만도 없겠는 게, 할아버지 고향은 충남 예산이렷다. 그럼 내 지금 고대함도, 그 시원일 내 정서의 몸체도 말로써 증명하는 일은 요원해지는 일이겠다. 다만 이 순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란 말이다, 입의 말, 한 사람을 온전히 담아내는 그들만의 구어 口語. 내 그리움은 언어이다. 


      - [에세이] 박경리 '토지' 답사일지 1 中

       

          

          

      II. 두 번째 답사 : 261008(목) ~ 10(토)



      8월 중순에 홀로 악양 평사리를 다녀와 사진 몇 장이나마 독서 모임 친구들에게 나누었거늘, 불과 두 달이 되지 않아 또다시 평사리를 다녀오게 되었다. 그들로서는 일전 내 답사에 흥미가 생긴 한편으로, 여행이란 모름지기 하나라도 더 끼여가는 것이 더 신명 나는 탓인가 한다. 그러나 어울리고픈 마음에 한편, 평사리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가운데 다시 찾는 것이 무엇 의미나마 있으려나 망설이는 찰나, 이번 여행의 주동자가 한마디 거들었다. 토지를 읽어나감에 있어서라면 모름지기 악양 평야에 누렇게 익은 벼들을 두 눈에 담아두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 말을 빙자해 얼른 여행에 합류하였다. 그 속도감으로 미뤄보건대 등 떠밀어주기를 기다리던 것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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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 앞에 휴가를 붙여, 일행보다 하루 일찍 내려오기로 한다. 더러 혼자 여행해 왔고, 여행의 7할이 작문이었으니, 일행들과 합류하기 전에 미리 실컷 써둘 심산이다. 서울역 8시 발 S-TRAIN 열차에 올라, 예매해 둔 좌석을 지나쳐 곧잘 카페 칸으로 넘어갔다. S-TRAIN의 카페 칸에는 차창을 바라보는 좌식 자리가 있어, 이 자리를 얼른 차지할 심산이었다. 비유하자면 보통의 기차 좌석이 정면을 바라보는 것에 비해, 좌식 자리는 지하철과 같이 측면 차창을 마주한다. 두터운 가방 위에 노트북을 얹어두고, 자리 옆의 충전기에 연결하였다. 4시간 반가량 미뤄둔 글을 쓰다가,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 하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때 아마 회사 일본 연수에 관한 늦은 일기를 썼을 것이다. 


      기차는 구례구역에 멈춘다. 시간은 12시 30분, 구례 버스터미널이 있는 구례읍과 얼마나 멀겠는가 했는데, 걸어갈 거리는 못 되었다. 후에 듣기론 구례구역은 구례 관할이 아니라 순천 관할이라 하더라. 역 전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히 오지 않았고, 미리 짐작한 대로 도착예정시간은 비어 있었다. 30분가량을 기다려 버스를 탄 뒤 구례 터미널에 내렸고, 곧잘 화개로 넘어가는 차편부터 알아보았다. 버스 정류장 전광판은 고사하고 지도 앱에 도착 시간도 뜨지 않는 이런 지역에서는, 거점 터미널의 시간표를 잘 숙지해야 함을 지난 여행 때 예습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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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개행 버스가 50분 후에 있어, 얼른 민생고부터 해결하였다. 아슬아슬히 시간을 맞추어 버스를 타 화개 터미널에 내린다. 1달 반 만이다. 가을에 접어든 일기는 여간은 시원도 하였으나, 기대했던 것보다는 매서운 햇볕 탓에 입고 온 외투를 가방에 밀어 넣었다. 지난 여행 때처럼 한 여름은 아닐지라도, 족히 늦여름이라 불릴 만한 날씨였다. 화개 터미널에서는 악양면으로 가는 버스와 돌아오는 버스 편을 모조리 확인해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악양에는 거점 터미널이 없는 까닭이다. 더구나 여기는 택시비도 우라지게 비싸서 절대 사양이다. 


      버스는 어김없이 또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배차가 1~2시간 간격이라 그런지, 거점 거점마다 족히 한 시간씩은 기다리기 일쑤이다. 바로 옆의 카페에 자리해 또 노트북을 켜서, 지난번 군산 여행에 대한 일지를 적었다. 일기라기엔 너무 무거운 이것은 일지라 부름에 부족함이 없을 터이다. 비단 지금 보시는 이 일지도 마찬가지이다. 카페는 통창 유리를 모조리 밀어젖혀 열어두었고, 그 바로 앞에서 섬진강이 조그맣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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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터미널이 바로 보이는 카페이거늘, 이녁의 버스들은 예고 없이 들이쳐 기다림 없이 바삐 떠나가므로, 시간이 다가올 즈음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다간 예정 시간을 10분을 남기고 한 버스가 들어서길래, 부리나케 짐을 정리해 뛰쳐나갔는데 버스는 코 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대합실에 들어서 저 버스가 악양 가는 버스이냐 묻거늘 아니라고 답하시다. 이리 간 조릴 바에 아주 앉아 있기로 하고, 내 버스는 예정 시간으로부터 10분을 더 지나 터미널에 들어섰다. 


      악양면은 이미 한 바퀴 구경한 전례가 있으므로 구석구석 쏘다닐 필요가 없어 좋았다. 미리 보아둔 카페가 있어 곧잘 질러 올랐는데, 아직 연휴 시작 전이라 일대는 조용했다. 최참판댁 일대로는 으레 어느 관광지나 마찬가지로 좌판과 매점이 빙 둘러 깔려있는데, 행객은 물론이요 장사하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매점 행렬의 막바지, 참판댁으로 들어서기 직전에 자리 잡은 ‘카페 서희플레이스’는, 앉아서 볼 수 있는 곳 중에는 악양 평원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 미리 눈여겨본 곳.


      과연, 싯누런 논이 멀찍이서 한눈에 들어왔다. 손님은 없었고, 팥빙수는 매진이라 아쉬웠지만 대신하여 수정과를 팔아주어 좋았다. 그리고 기분이 한껏 들뜨는 때 쓰는 글이란 거침없는 말처럼 쭉쭉 뻗어나가니, 이보다 행복한 일은 일상의 근저에서 찾기 어렵다. 이토록 멀리 나아와 쓰는 글이라니, 왜 집에서는 이리되지 않는 노릇인지를 새삼스러워한다. 거기 자리를 깔고 군산 여행일지와 최근 일기와 1달 반 전의 하동 여행일지를 얼추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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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양에서 화개 넘어오는 막차는 18시 40분쯤 일찍 끊긴다. 마침 카페도 18시에 마치니 조금 일찍 내려가 정류장에 가 앉았다. 해는 아주 져 사위는 완전히 캄캄했다. 정류장에 LED 전광판만이 새파랗게 빛났고, 주위에는 인적은커녕 차량조차 지나지 않았다. 베개처럼 두꺼운 배낭을 베고 들입다 드러누우니, 곧 적막한 귓전으로 귀뚜라미 소리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한 번 귓가가 소리를 붙잡으니, 이미 그 주변 사위로 귀뚜라미 소리가 진동하고 있었음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버스는 20분이나 남았으므로 조금 눈 감고 퍼질러 쉬어보다간, 5분을 남긴 즈음 전광판을 감시했다. 이 지역 버스 정보에 대한 불신 때문이기도 하고, 사위가 캄캄한 데다가 정류장이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어, 기사님이 그냥 지나쳐버릴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분명 5분 남았다던 버스는 갑자기 야바위라도 하려는 듯 1분 남겼다는 다급한 소식을 던지자, 곧잘 가방을 메고 도로가로 나섰다. 멀리 언덕배기 꼭대기로부터 눈 부신 빛을 뿜는 무언가가 나타났고, 엄청난 속도와 굉음을 내며 쇄도하고 있었다. 크게 손을 흔들어 잡아 세웠다. 버스에 발을 올리니 기사님은 귀엽다는 기색을 감추지 아니했다. 누가 봐도 여행객 행색이었으므로 당당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화개 정류장에 다시 돌아온 즈음이 19시였으나, 식당은 거의 다 닫혀있었다. 이미 매장 불을 꺼두었으나, 큰 테레비에 뉴스가 틀리인 여느 국밥집 문을 두드려, 장사 안 하시느냐 묻는다. 사장님은 약간 망설이시더니 들어오라 권하신다. 이래저래 공치사를 하고는 국밥 하나를 시켰다. 주방의 어머님은 막 정리를 마치시고 나오시려는 눈치였다. 송구스러움을 빌미로 해서 술을 시키기로 한다, 으레 밥장사는 술로 남기는 것이라 귀동냥을 솔찮이 해둔 까닭이다. 막걸리가 비싸 봐야 3천 원일 것인데, 인근 주조에서 만든 만 원짜리 탁주가 있길래 그거로 시켰다. 도수가 강해서 취기가 금방 들이찼다. 


      식사를 마치고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전화해 픽업을 받았다. 여전히 나이스한 소프라노 톤으로 맞이하시나, 이녁을 기억하지는 못하시는 눈치이다. 그러나 몇 가지 일화를 꺼내두니, 톡톡히 기억하진 못하신들 예처럼 쉬이 흥미로워하신다. 함께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꺼내 작업께나 하려 했거늘 사장님은 이리저리 말을 걸어오셨고, 노트북을 덮고 아주 만담을 개시했다. 그러던 중 도미토리의 다른 투숙객 하나가 합류했고 전과 칼국수와 술 따위를 부리어 권하길래 잘 얻어먹었다. 그렇게 셋이서 술판을 벌이던 중에, 독서 모임 동료 하나가 늦게 합류한다. 그는 스무 살 대학생으로,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서울서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그때 시간이 22시 40분이었다.


      독서 모임에서 소위 ‘유망한 젊은이’라며 즐겨 놀리던 소년이다. 이 치는 여행에 앞서 이번이 여행다운 첫 여행이라 고백했기에, 제대로 놀려주어야지 하고 벼루었다. 하여 낯선 숙소에 오자마자 그가 본 첫 광경은, 지인이 낯선 사람들끼리 술잔을 부딪치는 광경이었고 나는 속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딱히 낯을 가리지 않는 ‘현준이’는 곧잘 자리에 어울려 들었고, 새벽 1시가량 진탕 해후를 푼 다음 같은 도미토리로 잠을 청하러 들어갔다. 첫째 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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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튿날, 노트북을 챙겨 로비로 나갔다. 이 숙소 ’후니게스트하우스’는 화개-악양 일대의 유일한 게스트하우스로, 실상 이 숙소를 제하고선 전부 펜션이나 감성 숙소로써 숙박 대가 제법 매섭다. 그러나 가격 못지않게 이 숙소를 사랑하게 된 까닭은 이튿날 아침 로비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경치 탓인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벽 물안개가 진득이 피어올랐다. 


      현준은 2층 침대가 처음이노라 스스로 2층을 자처했는데, 침대에 앉아서 차창 밖의 섬진강을 바라보았다. 로비와 숙소가 같은 층이고 차창이 같은 방향으로 나 있어서, 우리가 바라본 것이 같은 풍경이었음을 헤아린다. 그는 지금 구상하는 글이 있는데, 주제 의식과 배치 구조에 골머리를 쓰고 있다. 이에 괜스레 쓸데없는 말추렴은 삼갔다. 둘 다 그런 말추렴이란, 그저 장식 소품같이 고요한 아침 방의 분위기를 잠깐 울리는 데 쓰이곤 곧 스러져버릴, 귀찮은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해 각자의 아침에 깊이 침잠했다. 모니터에 눈을 떼 차창 밖을 보니, 물안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날씨는 화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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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동료들은 그날 새벽 차를 타고 서울에서, 목포에서 출발해 하동으로 건너오고 있었다. 하루 일찍 출발한 덕에 우리는 여유로이 아침을 누비곤 화개를 거쳐 악양으로 건너갔고, 참판댁 입구에서 만났다. 그리고 이미 두 번이나 지나쳤던 참판댁 가는 길에 앞장섰다. 태양이 뒷목에 따가웠다. 퍽 무더운 하루가 될 참이었다. 


      일행은 다섯, 머슴 셋에 각씨네가 둘인 구성이다. 나이대로는 퍽 다양한데, 스물, 스물넷, 스물여덟이 하나씩에 서른 셋되는 모임장, 그리고 부모임장인 내가 연장자이다. 우린 곧잘 주막으로 갔다. 달포 전 홀로, 처마 밑에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며 막걸리를 들이킨 그곳이다. 그때 이미지가 짧게 겹치곤 곧잘 기억 저편으로 물러간다. 날이 화창하였고 머릿수가 꽤 되어 주막 한 가운데 평상에 자리를 잡았다. 모임장은 이미 하 범상해진 그의 속사정을 핑계로 대낮에 막걸리를 시켰고, 나도 권하는 술 마다하지 않으므로 병나발을 반으로 덜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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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카메라를 한쪽 어깨에 둘러메고 있어, 오는 길 내내 사방을 연신 찍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제1회 박경리 토지 현장답사’라 적힌 플래카드를, 다른 하나는 이번 답사에 일정상 참여하지 못한 ‘토지 독서모임’ 주관자의 사진 둘레에 꽃 모양으로 장식한 익살스런 사진을 꺼내어 평상 위에 펼치었다.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주는구나, 하며 마음 푸근히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참판댁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참판댁의 입구 바로 앞엔 역대 이 세트장을 거쳐 간 드라마들이 보인다. 개중 <미스터 션샤인>이 눈에 띈다. 그러자 일행이 갑자기 외마디 탄성을 내지르더니, 어쩌면 <미스터 션샤인>이 토지 일부분을 오마주한 것일지도 모르겠노라 답했다. 강포수, 함안댁 등, 인제 와 생각해 보니 토지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으로 미뤄보아 그럴지도 모르겠노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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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판댁 입구의 최치수 동상에서 일행들이 사진 찍는 것을 기다리면서, 군데군데 악양 평야가 보이는 때마다 누렇게 익은 들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보이는 들판이 온통 잘 익은 논이라, 천지의 3할이 온통 샛노랗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지게 익어가는 기분, 저것이 재산이자 생계이자 삶의 전부였던 옛 인의 눈에는 하물며 그 어땠을는지, 헤아리려 한들 잘 헤아려지지 않는다. 하필 읽고 있는 3권 끄트머리는 호열자가 돈 바로 이듬해 흉년까지 겹치어 인물들이 무더기로 죽어나는 파트였다. 그랬기에 이 풍작, 더 이상 아무도 치어다보지 않고 그 옛날과 같이 귀히 여기지 않는 풍작의 들판 위에 이런저런 잡념을 떨치었다. 


      참판댁 내부의 다른 곳은 무난히 지나쳤으나 별당 아씨 별채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별채에는 정자가 접붙어 있는데, 그 바로 앞의 연못과 연못 가운데 자리한 커다란 버드나무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더위를 식혔다. 햇볕이 정자에 미치지 못해, 절묘한 응달을 이루고 있었다. 버드나무 햇발을 등지고 앉아 있으니 여우들이 느닷없이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었다. 후일 프로필 사진에 올리니, 짜세는 흑막 같이 나왔으나 면상이 정녕 흑막 같다기보다는 어딘가 구시한 면이 있노라며, 모 지인께서 ‘흙막’같다고 놀려댄다. 그 말추렴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탁월한 익살이라 여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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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판댁 일대를 벗어나, 바로 접붙은 산 중턱에 있는 한산사로 발걸음을 돌리었다. 꽤 올라가야 하는 길이니만큼 이 일대가 광활하게 구경할만한 지대였다. 한편 이 길은 스카이워크로 이어져서 차들이 더러 오가는데, 가는 길 보행자는 우리뿐이었고 우리는 자주 차를 위해 길을 비켜주어야 했다. 차 안에 탄 사람들이 왕왕 이쪽을 치어다보았다.


      꽤 기묘한 마주침이라고 생각했다. 안락한 풍요로움이야 썬글라스를 낀 채 조수석에 탄 여느 마나님께 더 가까이 있었겠으나, 가는 길 걸음걸음 놓인 즐거움은 이녁에 더욱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느리게 가는 만큼 땅 위에 흩뿌린 즐거움 하나하나를 모조리 주워대는 듯한 느낌. 


      가는 길 군데군데엔 온통 밤송이가 놓여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어 눈길에조차 걸리지 않았던 그 밤송이를, 일행들은 하나하나 보물처럼 여기며 발로 열심히 까대었다. 대부분 다람쥐가 채간 빈 속이었으나, 십수 개 중 하나에는 알밤이 까뜩 달려 있어, 그들은 천진난만히 여기었다. 주머니에 쏙 넣어놓고는 흡족해하는 뒷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담배를 피고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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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스트하우스 주인하며 인근 주민들과 담소할 때마다 들은 그 이름이 한산사라 대수롭지 않게 향했으나, 가는 길 고바위가 제법 매서웠다. 중반이 넘어가자 일행들이 눈에 띄게 지쳐 보였다만, 언젠가 듣기론 중간에 멈추면 나중이 더 힘든 법이고 선두에 선 사람은 계속해서 박차를 가해야 결과적으론 더 좋다는 말이 기억 어딘가에 매달려 있어, 무시로 걸음을 내리뻗었다. 그럼에도 다들 여행 짐을 둘러멘 터라 내심 마음이 쓰이던데, 대신 들어주려 해본들 완고하다. 퍽 지치어 풀린 눈에 매달린 결의는 인상 깊다. 나는 그러한 완고함을 사랑한다. 


      한산사는 고바위의 끄트머리에 달린 절로, 사찰 자체는 그다지 볼 것이 없으나 그 앞에 나무데크로 빼둔 전망대가 일품이었다. 시계에 가림이 없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논두렁이 그 너비만큼 가슴에 왈칵 들이쳐 안기는 느낌. 멀리 반대편 능선에서 버스가 움직이고 있었다. 곧 악양면 깊은 곳을 기점으로 화개를 향해 돌아 나올 그 버스는, 얼마나 멀리 있었던지 개미처럼 작고 느리게 움직였다. 아득히 멀리서 느릿하게 흔들리는 정경이 꽤 정답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아마 어린 때 스치듯 구경하곤 감탄했던, 작은 마을 모형의 움직임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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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카이워크는 거기서 꽤 가까웠고, 다리쉼을 충분히 한 다음 산을 거꾸로 내려왔다. 우린 이제 화개 방면의 반대편인 하동으로 향하기로 한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형제송 앞에서 버스가 지나치는 것을 보내주었다. 정류장에 앉은 우리는 잠깐 말이 없었고, 기다린 버스에 올라 각자 차창 밖을 바라보았으며, 하동 터미널에서 내렸다. 이번 여행의 주동자께서는 통영 출신이신데, 이녁 아버님께서 친히 차를 몰고 통영에서 하동까지 마중을 오시었다. 손님 대접으로 퉁치어 넘기기엔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편도 2시간 거리를? 


      본디 첫째 날 하동 일대를 돌고 통영으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는데, 때마침 진주 유등축제가 있는 기간이라 우리는, 아니 존귀한 따님께서는 차에 타시어 보무도 당당히 진주행을 주문하시다. 아버님은 능히 그러마 하시며 진주로 액셀을 밟으시었다. 막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으나, 뵌 지 5분여 만에 아버님의 따님에 대한 마음을 능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예쁜 딸을 보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요” 당신께서 말씀하시는데, 그 얼굴이 어찌나 활짝 피었던지 저토록 하냥 없는 사랑에 속으로 감탄한다. 내 속으로 느끼는 바를 겉으로 죄다 꺼내어 내거는 타입은 아니인지라, 더구나 그때 내 감상이란 말로써 표해져선 안 되는 것이므로 아닌 척 보았다. 재지도 따지지도 가늠하지도 않고 온전한, 사랑의 본 얼굴을 구경하는 것이 간만인지라 대신 뭉클했다. 바다 같은 사랑이었다. 


      이 글을 읽으실 당사자께서는 몹시 민망해하겠지만, 으레 딸들이란 아비의 가림 없는 사랑을 부끄러워하기 다반사이고, 그에 반해 여느 아버지는 그러한 딸의 투정과 밀쳐냄까지도 가림없이 품는 방식으로 사랑하시므로. 정녕 바다 같은 사랑이라 속으로 감탄했다. 아마 우리 통영 영애께서는 이 글을 보고는 내 팔 한쪽을 힘주어 때리실 것이다. 


      나이대도 한창 어린 우리 일행들을 능히 하대하시는 편이 오히려 마음 편켔건마는, 외려 꼼꼼히 존대하시는 그 마음 마음에 귀하신 따님이 걸리어 있음을 감지한다. ‘우리 딸 손님이니까, 우리 딸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하고, 깊은 눈길 속에 말없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게 아니고선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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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한 진주는 유등축제 기간이라 차량이 많을 줄로 알았거늘, 정작 행사지 직 근접지가 아니고선 차량 통행이 한산하였다. 그러나 유력한 맛집 2곳은 웨이팅이 길어 추가 손님을 받지 않겠다 하는 바람에, 되는대로 들어선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었다. 밥숟갈을 놓고 식사를 마치었나 서로 눈길로 훑는 즈음 바깥에선 커다란 폭발음이 아스라이 들려온다. 불꽃놀이 소리이다. 식당 문을 열자마자 그 폭발음은 바로 지척에 다가와 일행들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했다. 불꽃놀이를 이정으로 삼아 축제 장소를 향하는 동안 점점 인파가 불어났고, 진주성 앞에는 유등축제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불꽃은 아직 그 절정을 다 보이지 않았고, 때가 적절하였노라며 우리는 다시 한껏 들뜨다. 


      공중에 붕 뜬 마음은, 눈앞에 흐드러지는 불꽃의 모양 덕분이기도 하겠으나 이 모든 것이 전혀 예기치 않은 것들인 탓이다. 이번이 첫 여행이라던 현준은 어수선한 소음을 뚫고 귓속으로 물어오다. ‘형님, 여행이 원래 이렇게 즐거운 일인가요.’ 이에 나는 늘처럼 짓궂게, ‘네 첫 여행이 기준을 너무 높여 두어 장차 큰일이다’ 반어로 화답했다. 그러나 그건 명백히 반어이다, 그때 우리는 눈을 마주치며 더없이 정다이 웃고 있었고, 그만큼 이번 여행이 몹시 즐거운 것이 되어 기쁘다는 것을 역설로써 오롯이 표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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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파가 와글다글하여 까마득한 한편 흥겹다. 축제를 축제로 만드는 것은 인파라고 생각한다. 어깨를 상시 반으로 접은들 마구 와서 부딪히는 정도로 축제의 열기가 뜨거웠고,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무리는 우리 뒤통수에 내놓고 볼멘소리를 일삼고 있었다. 아마 진주 토박이로서, 축제 때만 반짝 오가는 뜨내기 손님들을 향해 기묘한 주인의식을 내지르는 심산이었을 터다. 그러나 어깨에 부딪는 인파란 맨 먼저 불쾌한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 분명하지만, 불쾌에 말미암아 인파를 반으로 줄여버린다 한들, 더불어 사라지는 것은 축제의 기분이 될 것이다. 


      인파가 인파인지라 도개교라 해야 할지, 강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 퍽 오래 기다렸다. 아예 예매해야 하는 것으로 보아 이게 메인 이벤트인 것 같다. 누군가는 새치기를 하고, 우리도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새치기한다. 통제관리가 애매해서 줄이 꼬여버린 탓, 바로 뒤통수를 정조준하여 뇌까리는 적의와 불만을 부러 무시하며, 인파의 소음 쪽으로 마음의 고개를 돌리인다. 도개교는 강수면과 높이차가 크지 않아, 강의 한 복판에서 강 위에 띄워둔 유등을 구경할 수 있어 좋기도 했겠지만 인파에 밀리어 가느라 구경이 온전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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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반대편 강변에는 푸드트럭과 공연을 위한 가설무대가 강을 따라 길게 늘여서 있었고, 강 쪽을 향해 피어진 무대는 보행로에서 잘 보이지 않아 멀리 울려 퍼지는 무대 소음만으로 대신 가슴 설레었다. 그 바른편에는 일본 신사 길을 수놓은 붉은 토리를 연상시키는 듯 붉은 연등을 터널처럼 이어두었는데, 거기 사람의 이름과 소원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일행들은 거기서 자기 이름을 찾느라 내달렸다. 한편 그 연등 통로 군데군데 라디오 스피커가 있어서, 나는 해맑은 치들로부터 신경을 거두어 잠자코 축제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라디오 진행자는 특유의 나긋하면서도 울림 있는 목소리의 다정함으로 접수된 사연들을 꼼꼼히 읽어주고 있었다. 머리 위에 매달린 연등에도, 라디오의 사연 속에도 누군가 자신의 소원을, 가족의 안녕을, 연인에의 사랑을 담아 축복하고 있었다. 문득 내 상상의 풍경 속으로는, 무수한 사람들의 소원을 매달은 천등이 강을 가득 메운 채 검은 밤하늘 위로 날아오르고, 모두 사랑하는 이의 손을 꼭 잡은 채 그 천등을,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쓸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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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등 축제 일대를 다 돌고, 진주성까지 들른 다음 차로 돌아와, 통영으로 향했다. 아버님은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밤길을 묵묵히 운전하시었다. 댁에 도착하니 어머님께서 이미 치킨이나 먹을거리를 갖추어둔 채 마중하시었다. 다시 한번 황송한 대접이었다. 어머님은 호방하시었고, 아버님은 꼼꼼하고 섬세하신 분으로 보였다. 마침 아버님께서도 토지를 3회독 할 정도의 애독가이시라, 대화 주제가 끊길 일이 없어 다행이었다. 본시 대화가 끊기는 것을 불편해하는 성격인지라. 


      식사가 끝나고 내외분께서는 자리를 피해주시었다. 통영에 또 다른 거처가 있어, 이 숙소를 손님에게 통째로 내어주시겠다는 말씀. 본디 아버님 거처인 이 아파트를 덕분에 편히 누비었다. 그때 부로 나는 따님을 통영 애기씨라 부르기로 작정했다. 참고로 작금 우리에게 애기씨는 토지의 ‘서희 애기씨’를 연상케 하는 고로 즐거운 익살의 시도인 셈이다. 둘째 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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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에 거실로 나가보니, 일행 3명이 탁자에 나란히 앉아 잠자코 토지를 읽고 있었다. 생경한 풍경이다. 주로 여행을 혼자 다니는 것도 이유이겠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행이 애초 드물뿐더러, 개중 아침나절부터 책을 읽을 줄 아는 이들이란 몹시 생소하다. 눈에 잠을 반쯤 매달고서 동그마니 책들 읽는 모습이 퍽 어여쁘고 아리땁다. 허나 알고 보니 이 치들은 책을 아직 다 읽지 못해 벼락치기를 하는 사정이렷다. 바로 다음 날 서울에서 토지 독서 모임이 있었는데, 속으로 실소를 하며 어여쁘다는 말은 취소라고 생각했다. 


      아침 루틴에 커피가 포함돼있어 근처 편의점에서 커피나 한잔하려 했는데, 일행들이 죄다 따라 나와 졸지에 카페를 가기로 했다. 도보 5분 거리에 바닷가가 있고, 바다를 따라 카페가 늘어져 있더라나. 바다 권력이 대단하구나, 하고 일동 감탄한다. 느지막이 산책을 한 다음, 씻고 집을 나서 버스를 탄다. 어머님 아버님께서는 통영 맛집에서 이미 웨이팅을 하신단다. 황송한 대접의 연속. 멍게비빔밥에 시락국을 내어주는 집인데, 웬걸 밀치 회에 전복 회에 산낙지가 깔리어 있었다. 인근 시장에서 횟감을 사와 손질을 부탁했더란다. 단골 서비스이구나 생각하는데, 가게 사장님께서 우리 애기씨를 보며 친근히 인사를 건넨다. 오오- 이것은 향토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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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를 마치곤 버스로 이동하려는데 아버님께선 한사코 안 된다며 차로 데려다주시었다. 이로써 3일 차 여행의 일행은 다섯에서 여섯으로 늘어났다. 통영대교를 지나, 박경리 기념관과 빈소에 가장 먼저 향했다. 통영대교를 건너서부터 가는 길 군데군데 바다와 섬이 보인다. 참 아름다운 도시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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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님께서는 참으로 다독가이시며 통영에 애착 많으신 분이신데, 운전하시는 와중에도 군데군데 가리켜 통영의 향토 역사를 설해주시었다. 뿐더러 일찍이 뭇 문인들이 통영에 대해 찬한 것을 자랑스레 말씀해 주시었다. 고장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마치, 바람을 타고 오는 향기처럼 물씬 풍겨온다. 생경하였다. 다다른 기념관에서도 마찬가지, 박경리 선생의 통영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북 출신 시인이자 내 가장 애호하는 백석 시인마저 통영을 찬하였다 하니, 이 고장에는 문인의 마음을 흔드는 무엇인가가 있는 듯싶다. 고향이라, 고향이라… 고장 사람들의 말과 정서를 그리워하긴 하나, 추후 고향 땅을 그리워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 마음이 몹시 낯설게 다가왔다. 나는 이들처럼 고장을 자랑스레 여길 수 있을 것이며, 기쁘게 설명해 볼 무엇이나마 있으려나, 아닐 성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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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관을 나서서부터는 반시계 방향으로 섬을 한 바퀴 빙 돌았고, 전망대를 거쳐 케이블카까지 이동했다. 케이블카는 미륵산 정상부를 향해 꽤 길고 높이 오르는데, 경로 중간쯤부터 통영 일대가 눈에 선히 들어온다. 감탄을 부르는 일행의 한편으로, 아버님은 담담하시다.


      으레 토박이시거니와, 따님의 다른 친구들이 내려올 때도, 직장의 동료들이 찾을 때도 몸소 안내하시며 수십 번도 넘게 다녀간 길인 까닭이다. 그제야 이 황송한 대접의 까닭에 따님 말고도, 고장에 대한 커다란 애착과 자부심이 있었음을 비로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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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블카 종착점으로부터 미륵산 꼭대기는 그리 멀지 않은데, 무더운 날씨에 계단을 타고 오르는 바람에 땀에 푹 젖었다. 다들 묵묵히 계단을 걸어 오르는데 앞쪽으로부터 느닷없이 맹랑한 목소리가 뒤쪽으로 날아든다. 아재식 썰렁 개그였는데 계단 군데군데 붙여져 있는 문구를, 명랑하신 우리 애기씨 따라 읽으시는 그 목소리가 천진난만도 하시었다. 덕분에 다들 웃으며 정상에 오른다. 


      중턱에 데크가 넓게 자리 잡고 있어, 통영 시내 쪽 일대가 시원하게 보인다. 통영 해안선은 한려수도라고 불리니만큼 섬들이 많고 그것이 공원처럼 아름다이 수놓여 있는데, 이곳 중턱에서는 한려수도보다는 통영 일대가 잘 보이는 셈이다. 애기씨는 멀리 통영대교를 가리켜 신을 내다가는, 반대편의 붉은 대교를 가리키신다. 신 거제대교의 통영 쪽에 애기씨의 모교가 있고, 그녀는 이 멀리에서도 당시 거닐던 길과 동무와 추억들을 그린다. 응당 고교 건물조차 보이지 않는 딴은, 내 그 광경을 따라 그리기는 무리였다. 한편 그 너머가 거제라니, 뜬금없이 리센느가 상기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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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작 미륵산 정상비가 있는 곳에는 날개미 떼가 기승을 부리어 오래 있지 못했다. 본시 날벌레들은 떨치어내련들 채 떨치어지지 않는 것이므로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 생각했거늘, 이놈의 미물들은 들러붙는 것으로 만족치 않고 잘근잘근 깨무는 재주가 있었다. 제 집을 침노한 인간들에게 거센 항쟁을 하려는 듯 기세가 제법 매서웠고, 덕분에 정상 인근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 길로 내려와 서점을 들르고 밥을 먹고 짐을 챙겨서 터미널로 왔다. 아버님은 그 내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었다. 받은 환대를 꼭같은 무게로 보답할 수는 없는 법이며, 그렇게 곧대로 되돌리려는 마음은 부담의 표현일 뿐이라 생각한다. 미안함보다는 고맙다는 표현이 썩 마음에 들며, 그게 바로 받은 대접에 대한 맞갖은 화답이라 생각한다. 대신에 서울에 돌아가 애기씨께 극진히 대접하겠노라 거듭 다짐함으로써, 여전히 남아 있는 마음의 짐을 조금 덜었다. 


      통영 터미널에서 각자 다른 버스를 올랐다. 우리는 내일 다시 모일 것이다. 아침 일찍 토지 벼락치기를 하던 일행들은 아마 다른 버스에서 계속해서 책을 읽고 있을 것이다. 밤차는 전등을 모조리 꺼두었고, 노트북을 꺼내 작업이나마 하려 하다간 졸려서 그대로 잠에 들었다. 터미널에 떨어진 것이 22시 40분. 집에 돌아와 빨래를 돌리고, 다른 에세이를 조금 쓰다간 늦게 잤다. 그렇게 개인적으로는 제2회, 공식적으로는 제1회 박경리 토지 현장 답사를 마친 이튿날 우리는 종각에서 모여 토지 독서 모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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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에 앞서,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를 먼저 늘어뜨려야겠다. 


      사람을 파악하는 습성이 내게 있어 주변을 스치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말과 표정과 호흡 안에서 많은 것을 유추하곤 한다. 한 사람이 행하는 말의 진위여부는 그 사람이 여태껏 진술한 바의 일체를 통해 유기적으로 인식된다. 즉, 누군가의 진술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진술한 모든 것의 종합이자 그 연속선상에서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진술 하나만을 두고 얼마나 열심히 공들여 모순 없게 한들, 다른 모든 진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니라면 의미를 잃는다. 애쓰는 것들은 분명히 한 번쯤 어긋나게 되어 있으므로. 


      유사한 상황을 대하여, 어제와 오늘의 진술이 불일치하거나 결 어긋남이 관찰되는 경우 그 진술은 논리적으로 거짓인 셈이다.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즉 남을 속이고 기망하려는 악의 따위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말이다. 그러므로 나무랄 것도 나무라질 것도 아닌 이것이나, 그걸 마주하는 일은 어려운 일인 듯하다. 능히 마주하지 못하는 자기모순, 즉 불일치로부터 나는 사람의 마음속에 수없이 존재할 어떤 ‘꼬임’, 수많은 엉킨 실타래 중 어느 한 가지를 포착한다. 마음에 티끌 하나 없는 존재는 있을 수 없기에 이는 자명하다. 그리고 표현에 정확함을 기하자면, 맨 먼저 나의 실타래를 스스로 풀어 헤치다 보니 넘의 실타래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해야 오해가 없을 것이다. 


      진술의 불일치는 마음의 불일치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 불일치가 자아내는 불협화음의 순간에 있어, 한 사람이 채 숨기지 못해 드러나는 것을 통해 그 안에 함의된 바를 포착하는 일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러나 드러나야 할 때 드러나지 않아 공백이 된 채 비어 있는 것, ‘부재’를 연상하고 그 까닭의 실마리를 갈음하는 것은 그보다는 좀 더 어려운 일인 듯하다. 드러남과 드러나지 않은 것들의 함의라고 해두자. 


      이렇듯 한 사람을 헤아리는 것은 그 사람이 여태껏 언어와 비언어로 진술한 모든 것을 종합해 하나의 세계로서 이해하는 것이고, 그 사이에서 하나의 패턴을 읽어내는 요사스런 재주가 내게 있어 그로써 사람을 가늠한다. 그다지 좋은 취미는 아닌듯하나, 이 재주를 좋아하는 사람도 더러 있더랬다.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릴 때, 즉 ‘알아봄’의 순간에서 그러하다. 밑밥을 열심히 까느라 뜬금없고 지루한 이야기가 늘어졌는데, 이는 사실 다음 이야기를 위한 완충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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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이 파악한 통영 애기씨는 어긋남이 적은 인물이었다. 즉 이 말을 꺼내기 위한 장황한 밑밥이었던 셈. 진술이 일치하고, 불일치에 대해 지적하면 곧잘 수용하거나, 능히 보충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담백하다. 달리 숨기어 감출 것이 없고 딱히 불안해하는 것이 없으며, 기꺼운 것에 있어서도, 거리끼는 것에 있어서도 머뭇거림이 없는 사람은 진솔하다. 나아가,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스스로 너그러이 용인해 줄 수 있는 사람, 정확히는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화합해 스스로 정다운 사람은 당당하기까지 하다. 


      나는 그녀를 궁금해했다. 왜냐면 우리는 각기 다른 삶의 내력을 따라, 닮은 듯한 진솔함을 향유하고 있었으므로. 겉으로 보았을 때 그녀와 나의 차이가 현격하므로 당사자로서도 영문을 모를 소리이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나의 내력을 기억하고, 내 진솔함이란 스스로 수없이 풀어헤친 실타래의 결과라고 한다면, 그녀의 것을 속으로 궁금해하였다. 너는 무엇으로 인해 그토록 진솔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나. 이 이상은 말로써 논증해 보이긴 어렵겠고, 다만 홀로 궁금해하던 것의 실마리를 이번 여행에서 벌충한 것 같다. 그녀의 진솔함은 사랑받은 사람의 흔적이자 그 자랑인 것 같았다. 


      여행 내내 그녀가 무척이나 사랑받고 자랐음을 보았다. 그리고 여행의 가운데에서 사랑받는 자 특유의 진솔함과 담백함을, 그 인과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뒤에서 보노라면 그녀의 걸음걸이 하며, 말과 표정,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 애호해 추구하는 것과 두려워 기피하는 것, 그 모든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 망설임이 없다. 그 이면으로부터 받아온 사랑의 흔적을 유추한다. 그녀가 자각하고 있을 줄은 모르겠지만, 당당히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만큼 부유한 마음이 없을 것이므로, 이는 순수한 동경. 여전히 거기 존재하는 망설임이란 아마, 낯선 서울로 상경한 이후 뒤늦게 겪는 성장통인즉 후천적인 것일 터, 이 의문이 장차 너의 나에 대한 동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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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 리센느를 좋아하게 됐는데, 개중 아마 평론가 라이너 씨가 리뷰한 원이의 뿌리 찾기 거제 편 영상에서였지 싶다. ‘사람이 자랑할 수 있는 것 중에, 자신이 사랑받은 것을 자랑하는 것만큼 근사한 자랑을 아직 본 적이 없다’라는 문구가 여행의 중간쯤 뇌리를 스친다. 문구를 접한 당시에는 근사하게 느껴졌을 뿐 여전히 멀리서 떠도는 어떤 감상이, 비로소 마음에 닿았다. 


      애기씨는 스스로 아무런 자랑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통영의 바닷가와 여느 횟집의 일화와, 그녀가 자랑스레 말하던 고향 통영과 초중고를 함께한 친구들, 상경해 여전히 같은 집에 살아가는 친구들의 일화로부터 그녀가 받아온 사랑을 대신하여 헤아렸다. 그녀는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았지만 거리낌없는 진솔함으로부터, 그리고 그녀가 고장에 대해 품어온 애착과 고장이 그녀에게 되돌려주는 추억으로부터, 그녀의 사랑과 자랑을 나는 대신하여 생각했다. 

       

      리센느의 원이 씨는 뿌리찾기 거제편 막바지에 '아모르파티'에 대해 언급한다. '운명애'의 라틴어 표기인 이 경구쯤이야 모두에게 익숙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니체는 운명애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다시 태어나도 이 삶을 똑같이 살겠는가?" 이에 망설임 없이 그렇노라고 말할 수 있는 태도와 마음이 곧 운명애임을 가리키고자 함이다. 


      해당 영상 속 PD는 이 운명애 개념을 고향에의 애착과 결부시킨다. "다시 태어나도 이 지방 변두리, 네 고향 거제에 태어나기를 희망하는가? 거기서 이 삶을 똑같이 살겠는가?" 이에 원이는 "그렇다"고 답한다. 마지막의 이 담담한 답변을 위해 총 3편, 1시간에 달하는 영상 서사가 미리 전제되었기에 나지막한 읊조림은 곧잘 마음 깊이 다다를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이천만 서울 시민 가운데 떠나온 고향을 마음속에 지닌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안원잘부의 PD니무'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번 통영 여행도 내게 마찬가지였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고향을 깊이 애착하는 것을 넘어, 그곳에서 나고 자란 자신의 전 생애를 긍정하고 또 긍정받는 모습은 나지막한 동경과 탄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언어와 정서를 사랑할지언정 내 고향을 이처럼 사랑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돌아갈 곳이라- 거제 소녀 원이에겐 '모래성분식'과 '덕연씨'가 계시고, 통영 애기씨에게는 시락국집 사장님과 다정한 양친이 계시어, 이 두 여인에게 고향은 돌아갈 곳, 서둘러 돌아가 안기일 곳, 즉 귀향할 곳이라면... 우리가 애착하는 고향이란 그저 공간이 아니라, 반기어 환영하는 이들이 거기 기다리며 존재하는 곳으로써 형상화 된다. 


      마치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은 '오딧세이'에서 오딧세우스가 10년의 풍파를 거치어 기어이 돌아가려는 것처럼, 귀향서사의 완성은 '기다리는 이' 들의 환영과 재회의 환희를 통해 완성된다. 늙은 개 아르고스를 비롯해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 늙은 시종 에우리클레이아, 그리고 페넬로페가 존재했기 때문에 오뒷세우스의 귀향은 마침내 의미를 획득하고, 거꾸로 말해 기다려 반겨주는 그들이 없었더라면 그의 귀향은 서사가 아닌 해프닝이 되었을 것이다. 마치 전 그리스를 호령한 '아가멤논'의 최후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로 인해 귀향과 동시에 죽임을 당한다. 지중해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그였다 한들,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자의 말로는 쓸쓸하다.

       

       

      * 통영은 내 문학의 전부예요. 나고 자랐던 통영이나 학교를 다녔던 진주에서 나의 문학이 출발한 거죠.

      * 고향이 그립지 않은 사람은 없다. 고향은 삶의 기초다. 특히 문학하는 사람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밑천이다.

       

      - 박경리 씨 인터뷰 中

       

       

      통영의 박경리 기념관에는 박경리 씨의 통영에 대한 애착이 구석구석 서리어 있었다. 선생의 생애를 간략히 톺아보면 실로 갖은 풍파에 얼룩진 삶이었는데, 6.25 전쟁 이후 '부역 혐의자'라는 모함 탓에 고향 통영을 떠나 오래동안 돌아오지 못하였다고 전한다. "살아서는 다시 고향 땅을 밟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증이 강하였음에도, 고향 사람들의 진심 어린 참회와 환대를 빌어 결국 말년에 선생께서는 다시 통영으로 귀향한다. 


      여전히, 나는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고향을 애착하게 하는지 다 알지 못한다. 증오로도 끊어내지 못하는 사랑, 즉 애증은 오히려 사랑을 더욱 강조하는 마음이므로, 기념관에 우두커니 서 오래도록 선생의 고향애와 그 이면의 마음을 궁금해 했다. 허나 아직은 이렇다 할 가설조차 떠오르지 않으므로, 답사일지는 이만 불완하게 마무리하겠다. 생각이 많아지는 구절, 여러모로 토지 답사 같은 통영 여행이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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