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독립한 해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은 제대로 된 독립도 아니었고, 1인방 거주자 여섯 명이 거실을 공유하는 구조의 복작복작한 새내기 기숙사였지만 방문을 닫고 혼자 남으면 얼마나 외로웠는지 모른다. 낮에야 정신없게 지냈지만 잠에 들기 위해 눕기만 하면 눈물이 났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니 앞으로의 인생에 난처한 마음까지 들었다. 처음 겪는 감정이었다.
다음 해, 기숙사에 대차게 떨어지곤 급하게 학교 앞 자취방을 구했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코딱지만 한 집’을 실사화시켜 둔 것만 같은 집. 학교 정문에서 뛰면 1분 만에 도착도 가능한 거리였고, 대학 앞이라는 특성 덕에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지만. 대학 앞이 으레 그렇듯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나갔고, 매달 새로운 공사가 시작됐다. 회색 도시 같은 공간은 ‘집’이 되어주진 못했다.
그다음엔 동네를 옮겼다. 상경한 입장에선 학교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제3의 동네에 뿌리 내리게 되었다. 그곳에서 학교를 한 학기 다니다 휴학했고, 누군가와 영영 이별을 했고, 난생처음 내가 쓴 글로 돈을 벌었다. 아침과 저녁엔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 얼굴을 한 직장인들이 많지만, 낮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니는 신기한 동네. 나는 그곳에 위치한 세 번째 자취방을 떠나며 이런 일기를 썼다.
2026.07.23.thu
별거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서 내 편이 되어주었던 나의 요새. 이 동네에 다시 돌아오리라 다짐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이 공간이 그리운 날도 분명히 있을 테다. 아~ 언젠가 과거의 내가 두려워했고 멋지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고, 막 앞날은 하나도 모르겠어도 내가 지금 무언가를 좋아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아는 나. 그리고, 다시 정상궤도를 찾지 못할 것 같아 괴로워하던, 분명 세상의 절망에 일조하고 있다고 느꼈던 것도 나. 그 문제를 여전히 0%로 만들지 못한 채 괴로움을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것도 전부 나. 그런 나를 전부 받아주었던 공간을 난 잠시 떠난다. 난 또 꿈을 이뤄보려고 해. 잔뜩 괴롭고 무서워진대도 이 집을 나서며 퀘스트 완료 ‘도롱!’ 했던 순간을 잊지는 말자고. 계단을 0.5개씩 오르고 있다.
어둠의 터널을 지날 때도, 봄에서 여름이 가는 진한 계절의 향기가 느껴지는 게 그렇게 좋았을 때도 내 곁을 지켜주었던 집. 나는 그 집에서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했다. 네 번째 이사, 첫 번째 해외 생활.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내가 모르는 생활 습관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떠날 준비를 마치고 14시간을 날아왔다.
프랑스에서의 교환학생을 다짐하게 된 건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우게 된 이후였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 생활에 대한 선망과 동경 사이 어드메의 감정을 갖고 있었기도 했다.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마저 두려운 비자 과정을 마치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작별 인사도 오래 했다. 앞으로 다가올 날을 아무것도 알 수 없어 인천에서 파리로 날아가는 14시간짜리 비행이 길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파리에서 살게 된 기숙사에선 화장실과 냉장고가 딸린 방 한 칸과 공용으로 사용하는 주방 및 부대시설을 사용한다. 3년 전과 비슷하게 불편한 기숙사 침대에서, 그때와 비슷한 처지-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낯선 곳이 덜 두렵고, 잃은 것보단 갖게 된 것에 마음을 준다. 지난 3년간의 시간을 통과하며 내게 남은 것들이다.
사람들이 왜 교환학생을 떠나게 되었냐고, 왜 해외 생활을 하고 싶었느냐고 물으면 그럴 싸한 말로 얼버무릴 때가 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대학에서 하고 있는 공부에 지금 이 시간이 꼭 필요한 게 아니다. 한국의 인문대에서 공부했던 내가 파리의 비지니스 스쿨에 잘 적응할 리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걸 그럴싸한 결과물로 보여주지 못한대도 타국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0.5개의 계단을 하나 더 선물해 줄 거라고 믿고 떠나왔다. 그 마음 하나로 시작된, 그야말로 <혼자 살기 part 4>다.
여행으로 이곳을 찾았을 땐 사진을 찍어대기 바빴던 예쁜 건물들도 차츰 눈에 익어간다. ‘나는 파리지엔느다’를 떠올려가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땐 괜히 시크한 척을 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모르는 사람이 가득한 학교에서 개강을 맞기도 했다. 매일 귀가하며 프랑스 마트를 들여다보는 작은 습관도 생겼다.
제멋대로인 이곳 사람들의 정서를 본떠 ‘*싸데뻥(ça dépend)’의 나라라는 별명이 있는 프랑스에서 한 달 남짓 생활하니 항상 전전긍긍하며 들고 있던 것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무엇이든 중요한 건 나의 템포를 잃지 않는 것. 재즈와 센강이 흐르는 파리에서 시작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한강이 흐르는 서울에 도착해도 그 마음만큼은 지켜내고 싶다.
*‘그때그때 다르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매달 이렇게 기록하다 보면 12개월을 꼬박 채우지 못하고 이곳을 또 떠나야 할 시간이 올 것이다. 그때는 또 이곳이 어떤 곳만큼이나 소중한 존재가 되어있기를. 대화 한 번 나누기 서툰 프랑스어도, 집 앞 슈퍼의 다정한 직원 선생님도, 이곳에서 사귄 친구들의 존재도 모두 빠짐없이 떠오르기를. 그때의 나에게 행운을 빌며, 지금부터 프랑스에서 혼자 살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