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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나라는 우주를 기록하는 법 [사람]

아트인사이트를 마치며

by 문아휘 에디터
2026.10.30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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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 자신이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글처럼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뽑아내지도 못하고, 좋아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어 책도 읽는 것만 읽는다. 좋게 말하면 줏대가 있고, 나쁘게 말하면 고리타분한 사람에 가깝다. 그런 사람이 쓰는 문장이니 확실히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고, 뱉어내는 문장의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말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작은 것에도 크게 감동하고 크게 실망하기를 반복하며, 혼자만의 아집이 꽤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사람이기에 쓰는 글들에도 그 고집이 묻어난다. 모든 것에 단정을 짓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사적인 세계에서는 명확한 시비를 가르는 기준이 존재하고 그것이 지금까지 나라는 사람의 취향을 형성해 온 것이다.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한정된 정원이 곧 세계라 믿으며 살아가지만, 그러다가도 어느 날 견고히 지켜온 패러다임이 완전히 전환되는 작품을 만났을 때의 쾌감과 짜릿함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고집이 세지만 그 고집이 꺾이는 경험을 즐기는 이 성정이 문화 예술을 즐기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잘 맞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여온 메모장과 일기장에는 나의 취향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떤 것에 감동했는지, 지금 내가 이런 작품을 좋아하게 된 원천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과거에 적어둔 짧은 감상 하나가 지금의 취향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선명하게 읽히기도 한다. 그렇게 기록을 들여다보다 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 인지뿐만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라는 연대기를 써 내려간다. 나 한 명 한 명이 자신에게는 역사이고 하나의 원대한 우주가 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팽창한다. 그래서 나는 과거에 내가 쓴 일기장을 읽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일이 바빠지고 하루하루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날이 늘어날수록 일기장을 펼칠 일이 줄어들고, 올해는 한 달이 통째로 비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번 달부터는, 내년부터는 다시 꾸준히 써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다. 마음이 힘들어지고 내가 누군지를 모르겠을 때 그 일기장들이 나라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안개 낀 나를 선명하게 하는 유일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광활한 우주 속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꺼내 보고, 그때 쓴 내 글을 읽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앞으로의 미래를 설계해야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지. 작은 것 하나하나도 살얼음판 위에서 선택해 나가야 하는 하루하루, 그리고 그 선택들에 따라오는 고민과 책임감이 나를 하염없이 짓누르고 부담감과 불안함에 숨이 막혀올 때, 그저 오늘 읽은 책 한 권이 좋았네 싫었네, 오늘 컴백한 가수의 신곡이 취향이네 아니네 하는 시시콜콜한 감정들이 의외로 숨통을 틔워주는 도구가 되어준다.


      곧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취업을 해야 하며, 어른이자 사회인으로 살아갈 미래를 상상하면 미래에 도움이 되어야만 현재가 의미 있어지고 용서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때는 취향을 바꿔보려고도 했다. 지적 허영심으로 어려운 책을 사서 읽고, 지식 채널의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물론 그런 것들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마음이 따르는 대로 문화 예술을 소비한 게 언제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삶이 재미 없어지고 무료해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간이 붕 뜨면 할 일이 없어지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며, 오히려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언어 공부를 하고 과제를 하고 자기 계발을 위한 공부를 하려다가도 의욕이 떨어지고, 뭘 위해 이렇게 물 위의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며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기를 읽고 일기를 썼다.


      돌이켜보면 내가 일기장을 펼치는 순간은 대개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지금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을 때마다 과거의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는 거창한 인생의 해답 같은 것은 없었다. 좋아하는 작품을 발견하고 기뻐했던 일, 기대했던 신곡에 실망했던 일, 별것 아닌 장면 하나에 오래도록 마음을 빼앗겼던 일들이 전부였다. 그 사소한 기록들을 읽다 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기뻐하는 사람인지 다시금 알게 된다. 미래를 위해 잠시 미뤄두었던 나의 취향과 감정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나는 여전히 나'라는 그 단순한 명제가 실감이 나는 순간일 것이다.


      매일매일이 숨 못 쉬게 밀려들어오지만 언제든지 우리는 누워 있을 수 있고, 작은 행복이 지천에 널렸다는 게 큰 위로가 된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선택과 책임이 따르겠지만 그때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싶지는 않기로 한다. 오늘 읽은 책이 좋았다는 것,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 별다른 이유 없이 하루가 즐거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날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나의 취향을 기록하고, 그것을 다시 읽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일. 어쩌면 일기를 쓴다는 것은 그렇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가장 사소하고도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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