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쓰는 행위, 그 자체로 충분한 이유

 

“오늘은 그저 그런 하루였다.” 성인이 된 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 일기를 쓴다. 나만의 약속이기도 했고, 처음에는 기록보다는 정리가 목적이었다.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마음이 복잡할 때 정돈할 수 있는 하나의 루틴으로 사용했다. 매일 같은 시간 반복되는 글쓰기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대단한 감정이 없어도,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쓴다. 대부분은 하루를 짧게 요약하고 끝난다. 그런데 그 ‘짧은 요약’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그날 하루를 내가 살아냈다는 조용한 선언이며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지만, 스스로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증거이다. 특별한 감정이 휘몰아친 날에는 더 길게 쓴다. 화가 나서, 속상해서, 우울해서 혹은 너무나도 행복해서 쏟아내는 문장들이 있다. 말로 하지 못한 것들을 글로 옮기고 나면 언제나 조금은 가벼워진다. 누가 들어주지 않아도 내 문장은 내 안에서 유효하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닌데 왜 기록하는 걸까? 그건 아마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듯 나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기 위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읽는다는 것 : 과거의 나와 만나는 감각

 

처음에는 일기를 다시 읽지 않았다. 지나간 감정은 지나가게 두는 편이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난해의 어느 날 혹은 몇 년 전 오늘 날짜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았고 그건 아주 묘한 경험이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감정들. 그날의 날씨, 분위기들이 글 속에서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때로는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놀라고, 때로는 왜 이렇게 힘들어했을까 하며 웃기도 한다.

 

일기장 속 ‘나’는 낯설면서도 친근했다. 완전히 같은 사람도, 완전히 다른 사람도 아닌 존재였다. 무심코 지나간 하루가 그날의 나에게는 얼마나 의미가 있었는지, 일기장을 읽고서야 깨닫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남겨둔 기록을 읽으며 종종 위로받는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고민을 혼자 끙끙 앓던 시기에 써 내려간 감정의 조각들이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내가 나를 지탱한 증거가 된다. 그때의 나,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를 연결하는 끈끈한 실이자 누구보다 솔직한 자기소개서다.

 

 

jan-kahanek-fVUl6kzIvLg-unsplash.jpg

출처 : unsplash / honza_kahanek

 

 

결국 다 지나간다는 것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은 내가 아주 우울하고 불안했던 시기의 일기를 다시 읽을 때이다. 그땐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고 다시는 웃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조용히 되뇐다. “결국 다 지나갔구나.” “이때 이렇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웃고 있네.” 이 깨달음은 큰 힘을 준다. 아무리 힘든 순간이라도 결국은 지나간다는 것을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지나간 감정은 흐릿해지더라도 그때 남겨둔 문장들은 시간의 파도 속에서도 뚜렷이 남아 나를 감싼다. 내게 일기를 쓴다는 건 단순한 감정 발산이 아니다. 그건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작은 구조 요청이자, 언젠가 그 구조 신호를 발견할 내가 다시 손을 내미는 다정한 메시지다. 결국 가장 깊이 이해하고 지켜봐 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걸 일기를 통해 천천히 배워간다.

 

 

증거로 남겨두는 삶, 아무도 보지 않는 자서전

 

일기는 나만의 비공식적인 자서전이다. 세상에 발표되지도 않고, 누군가 읽어주지도 않는다. 이건 아주 사적인 존재의 증거물이다. SNS는 기록이지만 동시에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감정을 포장하거나, 맥락을 숨기곤 한다. 그에 반해 일기는 다르다. 나는 거기서 어떤 역할도, 의무도, 필터도 없다. 이러한 기록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삶의 흐름이 보인다. 내가 언제 지쳐 있었고, 어떤 일에 들떠 있었으며, 반복되는 고민과 불안이 무엇이었는지. 무의식적으로 지나친 순간들을 되짚어보는 소중한 도구이자 삶의 패턴을 읽어내는 비밀 통로 같기도 하다.

 

일기를 쓴다는 건 매일의 사소한 순간들을 붙잡는 일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기에 거기엔 솔직함이 있고 그 솔직함 속엔 진짜 내가 있다. 돌아보면 기록은 나를 버티게 한 증거였고 어떤 시절은 글로써 포착되었기에 의미가 남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적는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글을 다시 볼 내게 말을 건넨다. 지금 이 마음을 분명 너도 기억하고 있다고.

 

 

 

아트인사이트 에디터.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