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내림을 받으러 갔는데, 찾아온 신이 베트남 신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근호 감독의 단편영화 <월남보살>은 이렇듯 엉뚱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고등학생 수연은 신병을 앓다가 내림굿을 받는다. 그런데 수연에게 찾아온 신은 다름 아닌 베트남 신이다. 베트남으로 가야 한다는 무당의 말에, 수연은 자신이 평생 살아온 곳을 갑작스럽게 떠나야 할 처지에 놓인다.
다문화가정의 아이에게는 어느 나라의 신이 찾아올까.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지만, 영화 속 수연에게 이는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 수연이 한국에 남기 위해 친구들과 벌이는 작전은 이 난감한 상황을 유쾌한 소동으로 바꿔놓는다. 참신한 설정에 이끌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수연이 어떤 신을 받아들일지에 온 관심을 쏟게 된다.
수연에게 베트남은 어머니의 나라지만, 자신이 나고 자라며 평생 추억을 쌓아온 곳은 한국이다. 베트남 신이 찾아왔다는 이유만으로 베트남에 가야 한다는 무당의 말은, 수연에게는 익숙한 생활과 관계를 두고 떠나라는 무리한 요구일 뿐이다. 수연이 베트남 신을 거부하고 한국 신을 부르려는 마음은 이 포인트에서 이해할 수 있다. 수연은 그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곳에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수연과 친구들이 찾아낸 해결책은 ‘셀프 내림굿’이다. 친구들은 독서실에 모여 직접 한국 신을 부르기로 한다. 과자와 젤리가 굿상에 오르고, 스피커가 악기 소리를 대신한다. 부채를 대신하는 손풍기까지 등장한다. 익숙한 물건들로 꾸려진 굿판은 어설프기에 더 재미있다. 한국 신을 불러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과, 아이들이 학생 신분에서 동원할 수 있는 소박한 물건들이 한자리에 놓이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친구들과 함께 직접 굿을 벌이는 수연의 모습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바꿔보려는 의지가 드러난다. 그러나 한국 신을 불러내기만 하면 해결될 것 같았던 문제는,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진다. 한국 신과 베트남 신이 함께 독서실에 나타나 서로 자신을 모시라고 다투기 때문이다. 그러한 두 신의 모습은 수연에게 한국과 베트남 중 어느 한쪽을 택하라고 요구하는 듯하다.
수연에게 한국은 자신이 나고 자란 익숙한 나라지만, 베트남 역시 어머니를 통해 자신과 이어진 나라다. 그중 하나만 자신의 일부로 남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수연은 결국 두 신을 모두 받아들인다. 한국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이어가면서, 베트남 쪽 배경도 함께 받아들이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후 수연이 베트남어를 공부하는 모습은 그 선택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처음 수연이 베트남 신을 거부했던 것은 그 신을 받으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두 신을 모두 모시며 한국에 남게 된 수연은, 낯설었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며 베트남 쪽 배경에도 조금씩 가까이 다가간다.
영화 <월남보살>은 수연이 자신의 삶을 정해가는 과정을 친구들과 벌이는 유쾌한 소동으로 풀어낸다. 영화의 마지막에 두 신의 속삭임을 들으며 점을 보는 수연의 모습은,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짧게나마 비춘다. 낯선 신 때문에 삶의 터전을 떠날 뻔했던 수연이 이제 그 신과 함께 이곳에서 살아갈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 두 신을 모두 모신다는 선택은, 그렇게 수연의 새로운 일상으로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