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박한 성취와 보람이 모여 충만해지는 삶 [영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게 임하는 삶의 태도
글 입력 2023.12.3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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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화 ‘리빙: 어떤 인생’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리빙: 어떤 인생>은 갑작스럽게 삶을 끝내야 하는 처지에 처한 한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다루는 영화다. 죽음에 다다라서야 본인의 삶과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하게 되는 인물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를 묻는다.

 

평생을 시청 공무원으로 살아온 윌리엄스는 암으로 인해 빠르면 6개월, 길어도 9개월 안에 삶을 마감하게 된다는 의사의 판정을 받는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여느 사람들과 같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어릴 적 기차역에서 본 신사들의 모습, 멋들어진 중절모를 쓰고 서류 가방을 든 채 기차를 기다리는 그들을 동경했던 윌리엄스는 어느새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렇게 출근을 반복한 모범 공무원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인생을 복기해 보니, 꿈꾸던 모습과는 달리 남은 건 생명력 없는 껍데기의 삶뿐이다. 일상에서 즐거움이라 칭할 사건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 직장에서도 항상 정해진 시간에 기계처럼 출퇴근하며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한다. 시청의 다른 부서 직원들과 책임감 없이 서로 일을 떠넘기느라 처리하지 못한 민원들이 책상에 쌓여만 간다.

 

가정의 형편도 별다를 바 없다. 꽤 일찍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아들을 키우며 외롭게 살아왔지만, 아들은 결혼 후 낡은 집에서 벗어나 아내와 새살림을 차리기에만 급급해 보인다. 그런 아들에게 차마 자신의 병세를 말하지 못한 그의 속은 문드러져 간다.

 

그에게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평생 동안 저축해 놓은 돈뿐이다. 그는 그 돈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인생을 바꿔보려 한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삶을 향한 그의 첫 번째 시도는 일탈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찾기 위해 무작정 휴양지로 떠나 술집을 전전하지만, 그곳에서도 마음은 공허할 뿐이다.

 

그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두 번째로 바라본 곳은 그의 주변이다. 그는 항상 웃음과 활기가 넘치던 전 시청 직원 마거릿을 만나기로 한다. 그녀와 함께 사람 많은 극장과 예쁜 카페를 드나들며, 그녀로부터 자신에게는 없는 생명력을 얻어보려 하지만 여전히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방법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던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하게 된 곳은 바로 책상 위 쌓여 있던 수많은 서류들 중 하나다. 마을 한구석 폐허를 아이들의 터전인 놀이터로 탈바꿈시켜달라는 세 여성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민원을 다른 부서로 넘기기 바빴던 자신의 모습이 뇌리에 스친다. 동네 주민들의 오랜 염원을 떠올린 직후, 그는 곧바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윌리엄스의 이 선택은 그가 죽음을 앞두고서야 찾아낸 삶의 가치다. 그가 해결하고자 한 민원은 작은 동네 놀이터를 마련하는 사소한 일이었지만, 현재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게 임하는 삶의 태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죽기 전 꾀할 수 있는 아주 작고 사소한 변화를 위해 이때까지의 후회를 그러모아 주어진 책임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삶에 대한 뉘우침에서 멈추지 않고, 남아있는 짧은 시간을 충만하게 살아내려 애쓴 그의 의지에서 삶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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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표를 위해 매일 애쓰는 건지 확신할 수 없는 날들이 찾아오면, 무엇보다 일상에 지쳐 움츠러드는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의 작은 놀이터가 완성된 순간에 느꼈던 소박한 보람을 떠올려 보길 바랍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윌리엄스가 시청의 신입 직원 웨이클링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 담긴 말이다.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일이 지금 당장은 무의미해 보이고 성과도 분명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하루하루 작은 노력을 통해 이루는 소소한 성취들을 따라가다 보면 삶의 의미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언이 마음을 울린다.

 

영화는 윌리엄스가 인생의 종점에서 마침내 마주한 삶의 가치, 그리고 그 가치를 후대의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애쓴 마지막 순간을 통해 값지고 귀중한 삶의 의미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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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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