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공기가 가득할 것만 같은 저 먼 땅, 부에노스 아이레스.
영화는 2001년,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당시 수도의 모습을 담았다.
아르헨티나 영화가 처음인 나에게 이 영화는 일종의 소개서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여 안녕]은 경제위기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기도, 훌리오와 마리엘라의 로맨스 코미디를 보여주는 ‘로코’이기도, 아르헨티나 탱고의 매력을 보여주는 콘서트이기도, 나와 동네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긴 질문이기도 하다. 첫 아르헨티나 영화를 게르만 크랄 감독과 함께해서 기쁘다.
이야기의 흐름이야 영화를 보면 알게 될 테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내가 좋았던 부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말처럼, 결국은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짜임새 있는 영화의 줄거리를 줄줄이 적으며 감탄하다가 글을 싹 갈아엎었다.
1. 탱고로의 소개
탱고라는 장르 자체가 생소한 나, 그리고 한국 관객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왜 ‘탱고’를 택했는지의 설득이다. 영화는 탱고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리카르도 토르토렐라’를 기용했다.
격하게 말다툼하는 폼페샤의 이웃들을 조용하게 만드는 전설의 탱고 가수, 그러나 현재는 요양원에 방치된, ‘살아있는 시체’인 과거의 잔재. 생기를 잃은 토르토렐라는 마치 모두가 떠나기 시작한 당대의 아르헨티나 같았다.
마른 고목과 같았던 토르토렐라는 탱고를 통해 삶을 되찾는다. 다시 공연을 시작할 때 깊이를 되찾는 그의 눈에서, 머뭇거리다 재채기처럼 첫 소절을 내뱉은 순간 돌아온 그의 생기, 섬세한 기교로 그려내는 풍부한 감정의 진폭에서 관객은 탱고라는 음악에 완벽하게 설득당한다.
영화를 보기 전, 포스터의 뒤편에 적힌 셋리스트의 제목을 해석해보길 권한다. “Cambalache(난장판)”에서 고조되는 감정을 극대화하는 마지막 곡 “Honrar La Vida (인생에 경의를)”를 듣는 순간, 토르토렐라의 목소리를 통해 영화가 건네는 메시지는 그 어떤 노래보다도 묵직하다.
2. 아르헨티나로의 소개
주인공 훌리오는 말이 적고, 감정을 공유하거나 크게 드러내지 않는 묵묵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일면엔 섬세한 악기인 반도네온을 사랑하는 탱고 연주자의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염세적인 사람이기에 이민을 준비하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오는 낭만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훌리오의 여정은 아르헨티나인들의 가진 애향심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보여준다.
훌리오와 이야기의 한 축을 함께 구성하는 마리엘라는 불같은 사람이다. 코너에서는 휙 차를 꺾어야 하고, 애매한 것은 불편하더라도 직면해 물어야 하는 성정의 택시 기사는 경제위기 시기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살아낸, 더 정확히는 위험에 크게 노출된 여성이 살아남은 억척스러움을 보여준다. ‘억척’만이 마리엘라를 구성하진 않는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훌리오에게 마리엘라는 확실히 마음을 들이받고, 단호하게 인사한다. 그는 맺고 끊음이 확실한 사람이지만, 돌아온 훌리오를 환한 미소와 거친 운전으로 맞아줄 만큼 배포가 큰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마리엘라는 훌리오에게 돌아올 곳이, 아르헨티나가 된다.
3. ‘우리’에게로의 소개
이 영화는 결국 떠났던 발걸음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많은 이들이 경제위기를 피해, 독재를 피해 한국을 떠났다. 내가 훌리오처럼 떠날 기회가 주어진 채 그 시대를 살아냈어야 한다면 글쎄, 나 또한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났을 것 같다. 그들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고, 외려 조금은 지지한다.
그러나 영화는 ‘우리’가 이 자리에서 지켜낸 것들에 주목한다. 낮은 화질로 보여주는 당시의 시위들, 아틸리오의 죽음과 정치인을 위한 공연의 대비는 역사와 동시에 우리에게 남은 소중한 유산이다. 그들의 죽음이 아르헨티나의 기반이 되었고, 그날의 Cambalache, 난장판이 역사에 남았다. 아르헨티나, ‘우리’를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여전히 남아 우리의 땅이 된다.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그들의 인생에 존경(Honrar La Vida)을 표하는 것일 테다. 발걸음을 돌린 수많은 훌리오들이, 거리에서 싸운 아틸리오들이, 자리를 지킨 토르텔라, 마리엘라, 티토와 카를로스들이 지금의 아르헨티나를 만들었고, 그들의 인생은 이루 말할 것 없이 값지다는 것을.
[부에노스 아이레스여 안녕]이라는 렌즈를 통해 본 아르헨티나는 수많은 삶에 경의를 표할 줄 아는 속 깊은 나라다. 그 나라의 속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어졌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한시간 반의 아주 훌륭한 소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