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포트라이트 밖의 뉴욕, 그리고 서울의 우리 - 뮤지컬 '틱틱붐'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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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뮤지컬 [렌트]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영화나 뮤지컬을 보진 않았지만, 나 또한 [렌트]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 바 있다. 그럼에도 [렌트]가 아닌 [틱틱붐]을 올해의 첫 뮤지컬로 고른 이유는 [렌트]가 성공하기 전, 작가 조나단 라슨의 현실을 담아낸 뮤지컬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이다. [틱틱붐]은 내놓아 자랑할 만한 작품이 없는, ‘만년 유망주’였던 뮤지컬 작가의 불안과 갈등을 ‘30살 생일’을 키워드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마침 친구가 2021년에 넷플릭스로 개봉했던 영화 [틱틱붐]을 재미있게 보았다길래, [렌트]를 먼저 본 친구와 아직 보지 않은 나의 감상평을 비교해 보자며 코엑스 신한 아트리움으로 향했다.
렌트 관객을 위한 헌정
뮤지컬이 끝난 후 친구와 감상을 나누며 “아, [렌트]를 미리 보고 올 걸!” 하고 얕게 후회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반적으로 [렌트]와 유사한 연출이 몇 있었고, 배우들 또한 렌트에 참여한 적 있었던 배우들이 몇 있었다는 것이다. “Sunday”에서의 긴 테이블, 비디오 카메라 화면과 같은 스크린 연출이 [렌트]와 비슷한 부분들이라고 들었다. 시리즈물을 보는 기분으로 뮤지컬을 보러 오는 관객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그것 또한 즐거운 경험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크게 아쉽지는 않다. 이제 나는 [틱틱붐]의 시선에서 [렌트]를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스크린 연출과 음악
코엑스에서 공연을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스크린이 제법 커서 놀랐다. 공연 내내 장소마다의 스크린, 멀리 위치한 관객들도 배우의 표정 연기를 볼 수 있는 줌인 덕분에 몰입에 도움을 쏠쏠히 받았는데, 특히 ‘마이클’의 사무실로 존이 올라가는 장면에서의 엘리베이터 연출이 참 마음에 들었다. 배우를 가까이에서 줌인하는 스크린에 왜 비디오카메라 화면 같은 연출이 들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작가의 현실을 다룬 극이라는 특성을 살린 것으로 보여서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풍성한 음악을, 그리고 록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이 공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음악일 수도 있겠다. 나레이션과 대화가 생각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는 극이니만큼 뒤를 받쳐주는 음악의 존재가 크다. 중앙이 아닌 사이드 좌석에 앉아서 지휘자의 지휘봉을 얼핏 볼 수 있는 위치였는데, 거의 한 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지휘봉에 감명받았다. 풍부한 음악 덕분에 다면적으로 뮤지컬을 즐길 수 있었고,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흔들릴 때 흐름을 다시 안정적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나에게는 그랬다. 커튼콜 당시 지휘자와 밴드에 가장 큰 박수를 보냈는데, 부디 그분들께 닿았길 바란다.
앙상블과 일요일
공연을 본 후 찾아보니, 몇 년 전 공연되었던 [틱틱붐]은 소극장에서 공연했던 3인극 뮤지컬이었고, 그 이전엔 (라슨 본인이 공연했던) 1인극이었다. 이를 대극장에 걸맞은 규모로 키우는 과정에서 앙상블이, 커다란 세트가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세트와 스크린 활용에서 오는 박진감과 여러 명의 배우가 다함께 노래하는 생동감이야말로 대극장의 묘미이니만큼, 앙상블의 화음과 스크린의 활용 덕에 뮤지컬에 풍미가 더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Sunday”가 깊게 남았다. 배두훈, 방민아, 양희준 배우가 일인다역의 열연을 펼치며 식당 직원과 손님들의 모습을 그려냈고, 앙상블 배우들(홍동하, 서정, 백종훈, 권수정, 권릴리)이 화음으로 문 댄스 식당의 혼잡한 일요일 브런치를 내 귀에 밀어 넣어준 덕분이다. 어쩌면 내 사회적 소속과 가장 가까운 넘버여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주말마다 사람에 치이면서도 친구, 연인과 식사하러 오는 사람, 그 주말에도 일하며 이들을 상대하는 사람도 다 내 또래의 이야기 같았다. 길고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Sunday”를 합창하는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통해 극으로 확 빨려 들어갔다.
뮤지컬의 줄거리 자체가 아직 주목받지 못하는, 스포트라이트 바깥의 삶을 이야기해서일까? 공연 내내 앙상블 배우들에게 눈이 자주 갔다. 계속에서 세트를 돌리고, 화음을 넣고, 의상을 갈아입는 모든 과정에서 한순간도 연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 화음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역할을 맡았더라면 공연의 질에 더욱 올렸을 사람들을 보았다. “Louder than words”에서의 몇 마디를 제외하면, 이들에게 각자의 대사가 주어진 넘버는 없었다.
물론 세 주연 배우의 연기로도 충분했지만, 커다란 무대를 채워야 하는 주연 배우들의 부담이 너무 크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다. 연극의 끝자락, 주인공인 조나단 라슨을 연기했던 배두훈 배우의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을 분명히 들었는데, 다른 등장인물들의 넘버나 대사가 적절히 주연을 보조하는 구성이었더라면 더 다채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앙상블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가 훌륭했다.
당시의 뉴욕과 지금의 서울
이야기의 골자는 앞서 말했다시피 서른 살 생일을 목전에 둔 청년 조나단 라슨, 존의 갈등과 고뇌다. 뮤지컬 작가의 꿈을 포기하고 수잔과 마이클이 권하는 대로의 안정적인 삶을 택할지, 만약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제쯤 업계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존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30이라는 숫자가 틱틱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상황에서 주인공의 불안과 주변인들의 고민이 충돌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시한폭탄 같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존의 상황을 보고 있자면 나 또한 절로 불안해진다. 나에게도 서른 살은 다가올 거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인생의 기회가 줄어드는 것처럼 다가오니까. 영화 [틱틱붐]을 본 친구가 “나이가 더 많아질수록 더 세게 치는 영화다”라며 감상평을 남겼던 게 생각났다. 마침 가까워져 오는 생일, 감상을 쓰는 지금도, 소리를 만들 리 없는 디지털시계가 틱틱거리며 소음을 만드는 것만 같다. 지나가는 시간에 관한 두려움만큼은 우리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주제 아닌가.
배경적인 아쉬움은 물론 존재한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1990년대 극초반의 미국, 뉴욕이다. 2025년, 서울에서 이 뮤지컬을 보는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는 시대상이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센트럴파크 서쪽과 동쪽이 어떤 차이인지, 뉴욕의 소극장 공연과 대극장 공연이 뭐가 다른지, 왜 이 사람은 세면대가 싱크대 하나인 집에서 살고 있는지에 관한 배경을 한국인 관객이 이해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를 아무리 현지화하더라도 우리에게 존이 느꼈던 모든 것을 전달하기는 불가능했을 것 같다.
그러나 분명 전해지는 무언가는 존재한다. 꿈을 쫓는 존의 불안, 안정적인 삶을 향한 수잔의 갈망, 병과 싸우는 마이클의 절망까지 사실 사람이라면 한 번쯤을 느껴볼 '청춘'의 감정이다. 틱틱붐이라는 뮤지컬을 제대로 현지화한다면 서울 어드메,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청춘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써내려갈 수 있을 정도다. 겁먹은 우리의 내면을 배우들이 대신 재현한다.
손가락 사이 모래처럼 흐르는 시간이지만
당시의 뉴욕과 지금의 서울은 물론 다르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주제로 관객에서 감동을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넘버 “Louder than words”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럼에도 하늘을 택하는 새, 나아가는 우리를 향한 응원이 뮤지컬 [틱틱붐]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틱틱붐]이라는 멋진 극을 알게 되었고, 이 후기를 쓰며 찾아낸 더 많은 이야기들을 즐길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이 마침 내 생일이다. 이야기 속의 존처럼 제대로 정리된 것은 하나 없지만, 어쨌거나 내일의 나는 내일의 삶을 살아가겠지? 그 앞날에 이 공연이 분명 힘이 되어줄 것이다.
가끔 생각날 이야기였다. 아마 첫 넘버 30/90을 내 서른 살 생일에 듣고 있지 않을까?
[박주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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