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부도', '정권 퇴진'과 같은 거대한 단어들이 화면을 덮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거대한 혼란을 목도하면서도, 나는 당장 내일 출근을 버스로 할지, 지하철로 할지 고민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계속되니까. 절망적인 뉴스가 쏟아져도 사람들은 매일 일을 하고,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안부 전화를 하며, 서로를 위로하며 삶을 지탱한다.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여 안녕>은 2001년경,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극심했던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작은 구두 가게를 운영하며, 탱고 밴드에서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훌리오. 그는 낭만을 잃지 않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걱정한다. 독일 이민을 결심한 훌리오가 떠나기 직전, 아르헨티나 정부는 전국의 은행 계좌를 동결하고 현금 인출을 전면 제한하는 조치를 단행한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이 묶여버린 훌리오는 어떻게든 탈출할 방법을 찾는다.
모든 것이 막혀버린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훌리오와 동네 친구들은 모여 탱고를 연주한다.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기 속에서도 그들은 합주를 이어간다.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결국 그 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것은 거창한 애국심이 아니라, 함께 숨을 맞추며 음악을 연주하는 동료들이 결국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외적으로도 묘한 오버랩이 존재한다. 영화가 촬영되던 2020년 초, 그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마주했다. 아르헨티나 전역에 락다운이 내려지며 촬영을 11개월 동안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2021년에 비로소 촬영이 재개되었고, 그마저도 매일 코로나 검사를 받고 마스크를 쓴 채 엄격한 방역 수칙을 지켜가며 겨우 완성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느꼈을 고립감과 사람의 귀중함을 모두가 뜻하지 않게 체감했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매일 일어나는 정치적 혼란, 경제 위기 직전인 것 같은 전 세계를 마주한다. 언뜻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위태로운 시기들로 구성된 것 같지만, 어느 책의 제목을 빌리자면 '그래도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 고향이란 어쩌면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나와 함께 같은 음악을 연주해 줄 사람들이 있는 곳일 것이다.
내가 기다리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