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으면 오로라가 보인다는, 알래스카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캐나다 북부의 작은 도시를 방문했을 때 나는 생각했었다. 오후 다섯 시가 채 되기 전에 해가 지면 사람들은 마을에 딱 하나 있다는 펍으로 모여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겠지. 바깥은 강물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눈썹이 통째로 얼어붙어 버릴 만큼 추우니 이곳의 모든 사교 활동은 주로 실내에서 이루어지겠지. 지금 아빠의 손을 잡고 가게를 나서는 저 아이는 온몸을 꽁꽁 싸맨 채 집으로 돌아가 장작이 얌전한 소리를 내면서 타오르고 있는 벽난로 옆에 앉아 핫 초콜릿을 마실지도 모르지.
바다가 내다보이는 열차에 몸을 싣고 오타루에 내려 늦여름의 곳곳을 천천히 걸어다녔을 때에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저 이층 목조 주택의 창문 달린 방 하나가 내 공간이 된다면 어떨까. 오타루에는 일이 많이 없을지도 모르니 바다가 보이는 열차를 타고 인근의 큰 도시로 출근했다가 다시 이곳으로 퇴근하는 것도 할 만하지 않을까. 저녁으로는 스프 카레를 먹고, 버려진 기찻길 옆에 난 작은 문 너머의 오래된 카페를 들렀다 이층의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한다면.
삶의 반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향할 때마다 그곳에서의 삶을 막연히 그려 보는 습관이 있었다. 내가 런던에서 유학 생활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남태평양 언저리가 보이는 오클랜드의 세컨더리 스쿨을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조금은 지루하고 한없이 평화로운 선샤인코스트 일대의 집에서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유목 목축을 하는 부모님 아래서 태어나 울란바토르의 학교와 테를지 초원을 오가야 했다면 어땠을까.
실은 이렇듯 다른 삶을 상상해 보는 습관이란 실제로 걸음해 본 곳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어서, 내게 영영 쥐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한 다른 삶의 모습을 떠올리며 달큰한 괴로움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고 있노라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조각이란 얼마나 가당찮은 것인가, 지금 여기 이 삶의 모습이란 어찌나 애매하고 멋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단면이 시원찮고 눅눅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었을 터였고. 선후관계란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튼 간에, 나는 내 삶이 애틋한 동시에 진절머리가 났다.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열망은 고요히 접어 포기하는 법을 일찍이 잘 체득했기 때문에, 내가 한때 그렸고 바랐지만 결코 지녀 볼 수 없는 삶이 누군가에게는 태생적으로 너무나 손쉽게 주어지는 광경을 볼 때에도 박탈감이라거나 절망감이라거나 하는 것이 딱히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별개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광경에서 추한 부분들이 눈에 띌 때마다 그것들이 끔찍이 싫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도피의 일환으로 올랐던 여행길에서 한 독일인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소속된 대학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머무른 적이 있다 했다. 스물하나 스물둘 언저리의 내가 폐부가 짓눌리는 감각에 시달리고 있던 동안 같은 학교, 같은 동네, 같은 도시에 머물고 있던 그 친구는 숨통이 트이는 신선함과 해방감을 느꼈다 했었다.
나는 그 동네에 너무 좋은 기억이 있어. 아직도 그 캠퍼스 곳곳이, 골목 구석구석이 선명히 기억나.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입을 벌렸다. 말도 안 돼. 그 동네가 얼마나 조잡하고 어지러운데. 식당가며 상점가를 쏘다니는 무리는 하나같이 시끄럽고, 주거 공간은 낡아빠졌고, 학내의 풍조는 사람을 지치게 하는데.
물론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삶의 현장인 곳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발견의 장이자 추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공간에 관한 기억도, 삶도 모두 상대적인 것이니까. 이를테면 그 유명한 홍콩의 구룡성채도 누군가에겐 처절한 공간일지언정 누군가에겐 영화적인 영감이 되니까.
나는 대만이나 홍콩에 좋은 기억이 제법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대만과 홍콩의 친구들은 내게 이런 말을 종종 했었다. 네가 한국을 힘겨워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나는 이 나라가 힘들어.
프랑스에서 한평생을 살다가 대만으로 이사를 온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대만이 정말 좋아서 프랑스로 돌아갈 생각이 딱히 없어. 이곳의 밤은 너무 활기차고 낭만적이지 않아?
뉴욕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고베로 건너와 직장을 잡은 또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더랬다. 뉴욕을 사랑하긴 하지만 특별한 점은 잘 모르겠어. 난 조용하면서도 있을 건 다 있는 고베가 훨씬 마음에 들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는 그리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법이겠거니 싶어 놀랍지는 않았다. 아니면 주어진 환경에 절망감을 맛본 이들만이 떠날 결심을 하는 법이고, 그렇게 ‘떠날 결심을 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나눈 대화이니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었다.
내 삶도 누군가에겐 이국의 낭만이고 다른 세계의 환상이고 영화적인 장면일 수도 있다. 그다지 살갗에 와닿지는 않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한 작가가 마지막 말로 남겼다는, ‘내 삶은 제법 괜찮았어요. 나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이라는 문장을 되새기며 실은 내 삶도 제법 괜찮을 수 있으니 그걸 조금 더 일찍 깨달아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뭐 정녕 내 삶이 괜찮지 않은 것이래도 무슨 상관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삶을 바꿀 수 없다면 생각이라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창덕궁 인근의 오래된 카페를 찾았다.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카페까지 오는 길목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갖가지 짐과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는 관광객들 속 이어폰을 꽂고 가벼운 차림새로 길을 걷는 나는 홀로 눈에 띄었다.
인파를 빠져나오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저 사람들의 눈에 나는 누가 봐도 의심의 여지 없는 현지인으로 비치겠지. 어쩌면 저 사람들 중 누군가는 이곳에서의 삶은 어떨까 하고 떠올려 볼 수도 있겠지. 또 만에 하나 어쩌면 저 사람들 중 누군가는 이곳에서의 삶을 퍽 낭만적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의지가 생겼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삶의 반경에서 낭만을 찾아내어 아껴 줄 의지가. 삶의 진절머리는 조금 줄이고 애틋함은 조금 더 길러 볼 의지가.
이제야 생각건대 그간 만났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쓴 일이 있었다. 나와 같은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왔던 독일인 친구에게, 대만과 홍콩의 친구들에게, 프랑스와 뉴욕과 그 밖의 다른 여러 도시를 떠나온 길에서 나를 만났던 친구들에게. 그때 나는 모든 편지의 끝맺음을 이렇게 했었더랬다. 네가 언제 어디에 있건, 네가 발 디딘 그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행복을 찾길 바랄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말을 내게 다시 돌려줄 참이 된 것도 같다. 네가 발 디딘 오직 그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빛나는 무언가를 만끽하길. 그야 조금은 어렵겠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