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해 겨울의 복판에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함께 기다리게 되는 뮤지컬이 있다. 봄을 데려오는 시인 오르페우스와 그의 연인 에우리디케를 다룬, ‘지금 여기,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바로 2021년 한국 초연에 이어 지난해 재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뮤지컬 <하데스타운>이다.
<하데스타운>은 고대 그리스 신화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더 나아가 인류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모든 설화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연인인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누구나 익히 아는 신화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현대적인 변주가 더해지며 나오는 시너지가 <하데스타운>의 주 매력이다. 신들과 님프들이 노닐던 산천과 지하세계는 뉴올리언스의 재즈 바를 연상케 하는 고풍스럽고도 현대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신화적 장치는 ‘지하세계로 가는 열차’라는 서슬 퍼렇고도 낭만적인 대상으로 세련되게 대체된다. 신들과 님프들은 재즈 바에서 술잔을 들어올리며 건배하고, 지하세계의 인간들은 기름 냄새와 엔진 소음으로 메워진 공장에서 밤이고 낮이고 일에 매진한다.
극적이고 강렬한 연출. 쇼뮤지컬 특유의 화려함. 춤과 노래의 합이 선사하는 유쾌함. 관객들이 뮤지컬을 찾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고, 관객들이 뮤지컬에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여러 영역에는 각각 그 영역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작품이 적어도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하데스타운>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가장 서정적인 뮤지컬’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에서 서정성과 낭만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하데스타운>은 단연코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다. 오랜 신화의 원형은 극의 서사에 무게를 더하고, 현대적인 변주는 오늘날의 관객과 저 머나먼 옛날의 신화 사이 거리감을 줄여 몰입을 증대시킨다. 신화의 원형과 현대적 변주는 서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극의 연출 전반에 교묘히 어우러지고 그리하여 극의 서정성은 극대화된다. 재즈 바의 한복판에 앉아 앞으로 다가올 봄을 노래하는 시인 오르페우스의 모습, 지하세계로부터 달려온 열차를 타고 멋지게 등장해 사방에 여름을 불어넣는 페르세포네의 모습, 빙글빙글 돌아가는 저승길을 거슬러 오르는 두 연인의 모습 등은 아주 오래전에도 있었으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있을 사랑의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하데스타운>의 넘버 역시 ‘가장 서정적인 뮤지컬 넘버’라 칭해지는 데에 손색이 없다. 가장 처음으로 등장하는 넘버인 ‘Road to Hell'은 뉴올리언스 재즈 바에 하나둘씩 모여드는 신들과 인간들이 한데 쌓아올리는 감각적인 화음으로 극의 초입을 완벽히 사로잡는다. ‘Wait For Me’는 극이 가장 격정적으로 치닫는 순간에 등장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 서사의 갈림길을 그려내며 관객을 압도한다.
오르페우스가 아주 오래전 이곳에 있었던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사랑을 노래하는 넘버인 ‘Epic 1’, ‘Epic 2’ 그리고 ‘Epic 3’는 동일한 멜로디 라인을 서로 다른 시점에 반복하는데, 앞선 장면에서는 맑고 진솔한 느낌을 주었던 멜로디가 극의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절박하고도 장엄한 노래가 되어 무대를 울린다. 오르페우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일곱 음절의 반복적인 멜로디는 <하데스타운>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음률이자, 세상에서 가장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넘버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노래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방대한 공간적 설정을 제한된 무대 위에서 완벽히 구현해냈다는 점은 <하데스타운>의 또 다른 강점이다. 지상과 지하세계를 가로지르는 지극히 험난한 길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의 핵심적 배경이지만, 무대라는 형태 위에 생동감 있게 옮기기 힘든 종류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회전하는 무대, 열리고 닫히는 열차의 문, 길게 늘어뜨린 조명과 같은 장치들의 적절한 활용은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고도 충분히 배경의 변화와 공간감을 살려내는 데 성공한다. 지상과 지하세계 간의 이동, 봄과 겨울 간의 이동, 신과 인간 간의 이동은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하데스타운>은 언뜻 봄을 지나쳐 겨울에 도달한 이들이 다시 돌아올 봄을 노래하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봄과 겨울, 그리고 다시 그 이후의 봄이라는 순환을 연상시키듯, 극의 전반은 병치와 반복이라는 핵심적인 서사의 방식에 이끌려 나아간다. 지금 이곳의 사랑은 옛 시절의 사랑을 꼭 빼닮아 있다. 페르세포네와 하데스, 그리고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가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 서로 다른 시대의 서로 다른 두 사랑은 아름답게 병치된다. 더불어 극의 첫 장면은 극의 마지막 장면을 꼭 빼닮아 있다. 이 모든 사랑 이야기는 변할 듯 그리고 변하지 않을 듯 반복될 것이라는 암시와 함께.
이듬해의 봄이 지난해의 봄과 완벽히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다가올 봄은 지난 봄과 마찬가지로 봄이다. 겨울이 되면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데스타운>을 기다리게 되는 것은, <하데스타운>이 맞이하는 결말과 그 뒤에 다시 이어지는 시작이 ‘이번에도 똑같이 반복될 것만 같으면서도’ 동시에 ‘이번에는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다가올 봄 같은 믿음을 주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니 오늘도 우리는 음유시인 오르페우스가 자신의 노래로 봄을 불러올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