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들

글 입력 2022.06.1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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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늘 내게 말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고. 한번은 참지 못하고 물었었다. "그래도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건 당연한 거지?" 그때 엄마는 "당연한 게 아닌데도 엄마는 그래"라고 하셨다. 그것만큼은 예외라고, 조금 다른 대답을 바랐던 나는 어쩐지 서운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야 조금씩 엄마의 말을 헤아릴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서운한 마음도 퇴색되어 갔다. 그래서 지금은 안다. 당연한 게 아닌데도 엄마는 그렇다는 말이 뜨거운 사랑 고백이었다는 것을.

 

나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많은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다.

 

특히 부모님의 사랑이 그랬다. 부모는, 엄마는, 아빠는 당연히 자식을 사랑하는 거지. 그건 본능적인 거니까.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생각해왔다. 돌이켜보면 참 오만한 생각이었다.

 

모성애와 부성애는 모든 부모에게 다 존재하지도, 절대적이지도, 무한하지도 않다. 나는 그걸 종종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어쩌면 거의 모든 시간을 잊은 채로 살지 않았나 싶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름표'를 부여함과 동시에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요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모는, 자식은, 가장은, 첫째는, 막내는, 여자는, 남자는 '-답게' 행동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 이름표에 친구를 새겨넣어도, 연인을 새겨넣어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관계에서 당연한 건 없다. 그러니까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당연하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끔은 씁쓸하고, 또 가끔은 슬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지 않음에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더 충만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말 '나'라는 사람 자체가 사랑받는 느낌이라서.

 

그래서 감사해진다. 당연하지 않음에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더없이 소중해진다. 그들의 마음을 잘 지켜내고, 아주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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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기저기서 '일상 회복'이라는 말이 들려온다. 문득 그 단어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반복되는 것이 일상인데, 그 일상을 회복한다니. 그건 더 이상 일상이라고 할 수 없지 않나.

  

고통과도 같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일상은 사전적으로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로 정의되지만, 그렇다고 당연한 건 아니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거릴 걷고

친굴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주던 것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우리가 살아왔던

평범한 나날들이 다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버렸죠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날

다시 돌아올거예요

 

 

이적의 노래 '당연한 것들'에 나오는 가사이다.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이, 멈춰졌던 것들을 되찾을 날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이 이 노래를 통해 위로와 응원을 받았다.

 

제목은 '당연한 것들'이지만 내게는 되레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마스크 없이 바깥 공기를 쐬고, 지인과 거리낌 없이 약속을 잡고, 타인의 온기를 느끼고, 어디든 마음 편히 갔던 시간들. 그 평범한 시간들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음을, 유한함을 깨닫게 했다.

 

과거의 언젠가 연말 가요제에서 BTS의 RM이 한 말이 떠오른다. 멤버들에게 고마웠던 점을 한마디씩 이야기해달라는 MC의 말에, 그는 "살아줘서, 숨 쉬어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3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건 그 말이 참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살아있다는 것,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고마움을 표한 것이 아닐까.

 

예전에는 막연히 그의 말이 멋지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가슴에 사무치게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이 자리를 빌려 나를 포함한 내 주변 사람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살아줘서, 숨 쉬어줘서 고맙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들여다보면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는 요즘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사랑이, 일상이, 내일이, 푸른 하늘이, 편안히 숨 쉬는 것이, 삶이 당연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하기를 바라는 것은 있어도 진정으로 당연한 것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엄마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고, 그렇게 되는 걸 경계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당연하게 생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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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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