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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말 없는 것들과 눈을 맞추는 시간 -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 [도서]

과거의 유산에서 살아 있는 이야기로

by 김민주 에디터
2026.08.23 11:22

3.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_평면표지.jpg

 

 

작품이 예술가의 또 다른 몸이라면, 유물은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닌다. 유물은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존재다. 그래서 유물에 '예술적 의도'라는 틀을 씌우는 것은 너무 지엽적인 시선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유물은 거대한 의미의 '문화'로서 존재하며, 그 앞에 선 사람에게 울림을 준다. 30년 넘게 카메라로 우리 문화유산을 기록해 온 사진작가 서헌강의 첫 에세이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는 바로 그 울림의 기록이다.

 

 

 

비인간과의 대화, 그 낯선 제안

 

전시장에서 작품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비인간과 인간의 대화로 받아들인다. 전시가 내세운 거대한 주제, 작품이 선택된 맥락, 캡션의 문장들을 하나씩 지나 마침내 작품 그 자체로 시선이 옮겨가는 순간, 비로소 작품과 나의 대화가 시작된다. 그 대상은 인간이 아닌 존재로서 나와 소통한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에 '대화'라는 단어가 놓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저자 서헌강은 30년 넘게 카메라로 우리 문화유산을 기록해 온 사람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국가유산청 등과 협업하며 연간 6000건 이상의 문화유산을 촬영해 왔고, 조선왕릉부터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까지 우리 문화유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의 결정적 순간마다 셔터를 눌러 왔다. 하지만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화려한 이력이 아니라, 유물 앞에서 그가 지켜 온 태도다. 저마다의 사진은 저마다 다른 스토리텔링과 만남, 우연을 계기로 태어난다. 저자 개인의 이야기, 유물의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한 장의 사진에 근거를 부여하고, 그 사진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든다.

 

 

 

돌의 생애주기, 그리고 고대인의 수수께끼


책의 3장 '유물의 이야기를 찍다'에는 「고대인의 수수께끼를 품은 돌」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고인돌과 암각화를 다룬 이 글을 나는 가장 흥미롭게 읽었는데, 그 이유는 이 글이 나의 오래된 기억 하나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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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게도 생애주기가 있다. 거대한 크기에서 시작해 점차 작아지다가 끝내는 모래가 된다. 그 거대한 크기는 언제나 인간에게 압도감과 함께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을 안긴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 아래 대부분의 것에 통제력을 지녔다고 믿지만, 정작 한 사람이 거대한 암각화 앞에 서면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통감하게 된다. 고대인들이 철근과 콘크리트도 없이 거대한 돌로 고인을 모신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고인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나는 어느 학교 뒷산의 가느다란 줄 하나로만 둘러쳐진 고인돌을 본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 온 돌은 우리에게 어떤 주술적인 힘을 나눠 준다. 불국사에 갔을 때, 담과 나무 근처에 쌓여 있던 돌탑을 보고 놀랐던 기억도 떠오른다. 나 역시 그 곁에서 자그마한 돌들을 괜히 쌓아 올리며 기원의 마음을 담았었다.

 

책 속 문장, "시간을 품은 이 같은 바위들은 우리가 사라진 이후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고백은 내가 돌탑 앞에서 느꼈던 그 막연한 경외감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 주었다.

 

 

 

유물 사진에서 '대화'로


이 책을 읽기 전, 유물 사진은 나에게 하나의 정보였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니 유물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작가라는 직업 자체에 매료되었고, 그가 셔터를 누르기까지 유물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지 상상해 보게 되었다. 5년을 기다려 종묘 정전의 밤을 찍고, 같은 장소를 수십 번 다시 찾으며 원하는 빛과 시간을 기다리는 일.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고된 노동이겠지만, 저자에게는 문화유산이 품은 이야기를 온전히 기록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유물을 '보존하고 관람하는 오래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호흡하며 살아 있는 이야기를 품은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진부한 것은 문화유산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시를 보든, 이 책의 사진을 넘기든,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말이 없는 대상이다. 하지만 그 침묵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서느냐에 따라 대화는 시작되기도 하고, 끝내 시작되지 않기도 한다. 서헌강의 사진과 문장은 그 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30년의 시간으로 증명해 보인다. 이 책을 덮은 뒤, 나 역시 다음 유물 앞에서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서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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