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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산책하러 나왔는데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2026 GDIF 개막무대 “360” [공연]

동런던 거리예술축제 현장을 다녀오다

by 정진형 에디터
2026.10.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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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위치 광장 전경. 출처: 직접 촬영

       

       

      지난 8월 21일, 런던 동부 울위치 광장(Woolwich Square) 중앙에 무대가 들어섰다. 아직 해가 늦게 지는 계절의 저녁 7시, 시민들은 서서히 광장 중앙의 무대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8명의 댄서들이 관객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연의 제목은 “360”, 해마다 런던 동부 지역에서 열리는 거리 문화예술 축제 GDIF(Greenwich+Docklands International Festival)의 2026년 개막 공연이다.




      360: 공동체가 형성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사회적 춤


       

      이 공연은 프랑스의 크레테유 발드마른 국립안무센터(CCN de Créteil et du Val-de-Marne | EMKA)의 디렉터 메디 케흐쿠슈(Mehdi Kerkouche)가 기획한 무대로, 제목 그대로 관객들이 원형 무대를 360도로 둘러싸고 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메디는 이 공연을 통해 사회적 춤이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식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360”의 사회적 춤은 두 가지 상호작용을 보여줬다. 초반부와 중반부는 서로 다른 인종, 성별, 각기 다른 장르에 특화된 댄서들이 하나가 되어 가는 서사가 담겨 있다. 공연이 시작됐을 때 댄서들은 서로를 등진 채 원형으로 서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때때로 시계 방향으로 이동했지만 정해진 동선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안무를 수행하는 모습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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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스틸컷. 출처: GDIF 공식 웹사이트

       

       

      이윽고 음악이 전환되고, 댄서들은 기존의 동선과 대형을 깨고 무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댄서들은 서로를 스쳐 지나가고 무대 중앙의 구조물에 매달리거나 턴을 하는 등 바쁘게 무대를 누볐으나 여전히 함께 어우러지지는 못했다. 그 모습은 무질서한 공간에서 낯선 이를 마주할 때 우리가 느끼는 혼란과도 비슷했다. 모든 댄서가 움직임을 멈춘 가운에 한 여성과 한 남성 댄서만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는 듯했다. 남자가 무대 안쪽에서 천천히 시계 방향으로 걷고 있었고, 여자는 그를 따라잡으려는 듯 무대 바깥쪽을 끊임없이 뛰었다. 마침내 둘은 만나 서로를 껴안았다. 무대에서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첫 상호작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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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스틸컷. 출처: GDIF 공식 웹사이트

       

       

      댄서들은 그녀를 중심으로 처음으로 화합을 시도했다. 발을 구르고 막대로 구조물을 두드리고 박수를 치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전자음악을 반주 삼아 합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서로를 무대 중앙에서 끌어내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몸싸움으로 번졌다. 싸움이 잦아들고, 공동체 안에서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보여주었던 여성을 중심으로 댄서들은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만남과 경계, 애(愛)와 증(憎)의 과정을 거친 후 서로를 믿고 지탱하며 무대 360도 곳곳을 하나의 몸처럼 함께 누볐다.


      두 번째 상호작용은 이들이 제4의 벽을 허물고 관객과 직접 마주하며 이루어졌다. 댄서들은 신나고 빠른 박자의 전자음을 배경으로 힙합, 아프로, 락킹 등 각자의 장기를 자유롭게 선보이며 프로그램의 ‘수행자’가 아닌 ‘댄서’로서 관객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마지막 파트에는 디렉터인 메디 케흐쿠슈도 무대에 함께했다. 일부 관객들도 댄서들의 호응 유도에 화답해 박자를 타거나 자리에서 춤을 추며 공연에 함께했다. 광장 전체가 무대가 된 순간이었다.




      GDIF: 나의 생활권에서 마주하는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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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IF 홍보 자료 이미지. 개막 공연인 "360"을 활용했다. 출처: GDIF 공식 유튜브

       

       

      동런던의 거리예술축제 GDIF(Greenwich+Docklands International Festival)는 축제 기간 동안 그리니치, 뉴햄, 울위치 등 동런던 여러 지역에서 공연과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특히 런던의 중심부인 1존이 아닌 비교적 외곽 지역인 2존-4존을 중심으로 개최되어 참여 아티스트의 구성은 국제적이지만 동런던 거주민의 문화 접근성 개선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다른 런던 기반 도시형 문화 축제와 차별화된다.


      축제는 1996년부터 지역민들이 생활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여러 공공 공간에서 여러 야외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축제의 취지에 맞게 모든 공연과 행사는 무료이며 프로그램의 질 또한 상당히 높다.* 이러한 특징은 공연 “360”에서도 잘 드러난다. 공연 장소가 되었던 울위치 광장은 인근 지하철역에서 각각 도보 5분과 10분 거리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우수했으며 공연 시간 또한 오후 7시로 많은 시민이 퇴근길에 들르기 좋았다. 게다가 이 공연은 이번 GDIF에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유료 공연으로 선보인 바 있다. ‘국제’ 행사답게 검증된 해외 아티스트를 초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GDIF의 예산은 재단 혹은 기업의 후원과 개인 기부로 마련된다. “360” 공연이 마무리되는 현장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이 모금 활동을 하고 있었다.

      **접근성 등의 이유로 좌석을 확보하고 싶은 방문객들을 위해 일부 지정석을 5파운드에 판매하고 있었으나 무료 관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산책길, 장 보러 가는 길, 출퇴근길이 새로운 취향으로 다가올 때


       

      공연 평론가 린 가드너(Lyn Gardner)는 GDIF에 대해 오늘날 문화예술이 티켓값을 지불한 이들에게만 열려 있다는 한계를 넘어 거리, 수로, 쇼핑센터 등 다양한 공간으로 모든 사람을 초대한다고 평했다. 실제로 “360”을 본 관객으로서 티켓값을 지불해도 아깝지 않은 공연이라고 느꼈고, GDIF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었다. 평소 문화생활로 전시나, 영화, 뮤지컬 등을 주로 즐겼던 터라 야외에서 현대무용 공연을 감상한 것 또한 개인적으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평소 자주 접해보지 못했던 문화예술을 적은 비용으로 경험할 기회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만족이 보장되지 않는 경험에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은 부담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GDIF와 같은 도시 단위의 문화 축제는 시민들이 적은 부담으로 여가 시간에 문화예술을 즐기고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달력을 들여다보고 티켓을 구입한 뒤, 정해진 시간에 맞춰 교통편과 일정을 계획하는 수고를 줄이고, 누군가의 출퇴근길, 등하교길, 산책길 가까이 찾아가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마련한다. 이를 통해 색다른 일상을 경험한 이들은 자신의 취향을 넓혀 갈 ‘다음’을 직접 찾아 나서지 않을까.


      한국에서도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재단이 지역민이 생활권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마련해 왔다. 지난 9월 19~20일 열린 ‘서울거리예술축제’는 뚝섬한강공원과 서울숲을 주요 무대로 프랑스 극단과 공연 제작사를 초청해 선보인 3건의 작품과 공모로 선정한 국내외 16개 작품을 시민들에게 선보인 공연예술축제다. 현재 진행 중인 축제로는 10월 4일부터 11일까지 열리는 ‘수원화성문화제’가 있다. 수원화성의 역사성에 중점을 둔 축제이지만 수원화성·화성행궁·행궁광장·연무대·방화수류정 등 구도심 곳곳에서 공연과 행사가 진행되며, 문화유산과 미디어아트를 결합한 ‘수원화성 미디어아트’도 열려 낭만적인 가을밤을 즐길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 색다름을 한 꼬집 더하고 싶다면 지역 축제를 찾아가 보자.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는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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