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산국제거리극축제, 거리에서 벌어지는 예술의 향연 [공연]

글 입력 2022.03.1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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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있는 곳이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우리의 발걸음은 거리 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너무나도 흔하게 등장하는 소재인 거리는 그만큼 익숙하고, 그렇기에 오히려 존재감이 부족하다. 그래서 ‘거리’는 공간을 출발지와 도착지를 잇는 과정일 뿐, 절대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그런 거리를,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활용하는 장르가 있다. 바로 '거리극'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거리극’이라는 단어는 생소하고도 익숙할 것이다. 길거리의 버스킹, 우리 전통의 마당놀이나 국가 기념일마다 진행되는 퍼레이드는 접해봤어도 그걸 ‘거리극’이라는 장르로 통칭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 말이다.

 

이렇듯 문화 향유와 병치 되기엔 조금 어색한 공간인 거리에서 우리에게 낯선 예술의 형태인 거리극이 펼쳐지는 행사가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이다. 거리를 무대로 활용하는 이 축제에서는 신도시 한가운데의 ‘25시 광장’을 중심으로 연극, 춤, 퍼레이드 등의 거리 공연이 펼쳐진다. 개막식과 폐막식에는 오직 한 팀만이 광장 전부를 무대 삼아 퍼포먼스를 펼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광장 일대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곳곳에서 거리극이 진행되어 시간과 인원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행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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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 말하는 ‘거리극’은 생각보다 넓은 범위를 지칭한다. 음악, 춤, 연극, 퍼레이드부터 불쇼나 기구를 이용한 서커스, 건물을 등반하는 행위 예술, 국가무형문화재인 봉산탈춤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퍼포먼스가 이에 속한다. 그리고 거리극축제 참가팀들은 '거리극'이라는 장르의 다양성을 몸소 증명하듯 그 종류와 방식이 아주 다양하다. 그들은 해외공연단체부터 시민 단체까지 다양한 국적과 나이대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각자의 독특한 이야기들을 풀어 나간다.

 

그렇다면, 거리극축제의 개괄적인 소개는 이쯤하고, 본격적인 매력 탐구에 들어가보자.

    

 

 

# 어린이날, 모두가 들뜨는 초여름의 축제


 

안산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 거리극 축제는 매년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였다. 거리극축제라는 말만 들어도 설레는 것은 비단 행사의 완성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날짜와 날씨의 덕도 분명히 있다. 안산거리극축제는 2005년에 시작된 이래로 거의 매년 어린이날을 끼고 3~4일간 진행하고 있는데,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한껏 온화해진 5월의 날씨가 축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때문이다. 또, 어린이날은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는 날이자, 학생들이 중간고사를 끝낸 직후이고, 어른들도 모처럼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날이라서 거리극축제가 진행되는 첫날부터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게 모인다. 그 속에 있자면, 잔뜩 신나 웃고 떠드는 많은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들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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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반팔을, 누군가는 얇은 긴팔을 입고 하나같이 밝은 표정으로 거리를 지나다니는 풍경, 아이들이 비눗방울을 불며 뛰어다니고, 가족은 함께 손을 꼭 붙잡고 걸어다니고, 연인들은 공연을 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딱 알맞게 따뜻한 휴일에 느낄 수 있는 행복은 거리극 축제 곳곳에 꿈틀거리고 있다.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함께 해서 의미 있는 공연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가장 큰 강점은 접근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콘서트장, 전시장, 박물관과 같이 닫힌 공간이 아닌 ‘거리’라는 열린 공간에서 축제가 진행되며 입장료도 무료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언제라도 참여할 수 있다.

 

광장 일대 전체를 쓰는 개막식과 폐막식과 경우에는 이 수많은 인파 모두가 함께하는 것의 묘미를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다. 함께 환호하며 감정을 공유할뿐더러 여러 사람이 그 공연에 집중하며 관람하는 덕에 극의 분위기가 확 살아나기 때문이다. 일례로 내가 관람했던 2016 거리극 축제 개막식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당시 개막작은 프랑스 팀인 'Compagnie Gratte ciel'의 '천사의 광장'이었다. 이 공연은 푸릇푸릇한 5월의 밤하늘을 배경으로 진행되었는데, 순백색의 옷을 입은 공연팀과 거대한 천사 풍선이 광장 위 하늘을 날아다니며 눈부시게 빛났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는 곳을 눈으로 좇으며 감탄을 연발했고, 그곳에 있든 모든 이의 시선, 음악, 조명 등 모든 것이 단숨에 우리를 천국으로 옮겨 놓았다.

 

그렇게 위를 올려다보며 천국의 이상을 동경하고 있던 그때,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순백색의 천사들이 관람객들에게 깃털을 듬뿍 뿌려주었다. 그 깃털들이 우리 모두의 발아래 그득하게 쌓여가던 순간,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지상에서 하늘로, 다시 천국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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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의 기분은 마냥 신나고, 기쁘지 않았다. 뭔가 차분하고, 아련하고, 낯선 환경이지만 착 가라앉으며 편안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갓 고등학생이 되었던 나는 그 감정이 막연히 음악 때문이거니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기 전에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시 기준으로) 불과 2년 전에 있었던 세월호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찾아봤더니, 역시나 이 공연에는 그러한 맥락이 담겨있었다. 당시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윤종연 예술감독은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 안산에는 아픈 기억이 남아 있다. ‘천사의 광장’을 통해 내리는 깃털이 안산의 아픈 기억과 아물지 않은 상처를 순백의 눈처럼 덮어주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기획팀은 안산이 겪어온 시간을 공연에 담기 위해 이 팀을 섭외하고 공연을 올렸던 것이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는 단순히 흥미와 완성도만을 고려한 것이 아닌, 시민 사회 속에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를 고려하여 작품을 선정하기에 시민들은 하나 되어 이 공연들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생각하면, 시민들이 함께이기에 그 공연이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함께 할 수 있어서 좋고, 함께 하도록 의도되었으며 함께 해야만 좋은 공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로 통제, 즐겁고 자유롭게!


 

거리극 축제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주변 도로가 축제 기간 내내 모두 통제된다는 것이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4차선 도로들과 그 일대의 도로들은 모두 통제되고 해당 구간을 들르는 버스들조차 운행 노선이 일시적으로 바뀐다. 그래서인지 가끔 도로에 누워서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도 보이는데, 나도 도로를 가로질러 다니는 그 기분을 굉장히 좋아해서 거리극 축제 때에는 일부러 인도를 피해 다닌다.

 

그렇지만, 본의 아니게 마음껏 무단횡단을 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도가 아닌 차도조차 문화예술의 공간이 되고, 자유롭게 공간들을 넘나다니며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진귀한 문화예술의 경험이 될 것이라 믿기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나와 공연자가 서 있는 곳이 어디든 서로의 영감을 마음껏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는, 그런 아주 매력적인 경험을 하고 싶다면,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 한 번쯤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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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다시 함께!


 

지난 2020년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취소되고, 2021년엔 축소 운영되었던 안산국제거리극축제가 올해에는 다시 광장에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돌아온다고 한다. 기간은 여느 때처럼 푸른색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어린이날부터 5월 8일까지 진행이 된다. 다만, 코로나 19 감염 예방을 위해서 올해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이 된다고 하니 혹시 방문하고 싶다면 공식 사이트에서 예약 일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문화예술과 그 무대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면 얼마 남지 않은 안산국제거리극축제를 방문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참고>

2017 안산국제거리극축제 배포 팜플렛

2015 안산국제거리극축제 공식 홈페이지

일간경기, 윤종연 예술감독 인터뷰

 

 

[김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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