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부터 26일까지 파주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내가 사는 곳에서 파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파주에는 아이들이 갈만한 곳이 많아서 어릴 때는 엄마 아빠를 따라 자주 가곤 했다. 그렇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다. 어릴 때의 추억 속 장소로만 간직하고 있던 파주를 이번에 가게 된 이유는, 내 친구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낯선 장소가 누군가에겐 추억이 가득 묻어있는 장소라는 건 언제 생각해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파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꽤 복잡했다. 차로는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환승도 두어 번에 무려 2시간 20분이 걸렸다. 내가 사는 곳에서 파주까지 가기 위해서는 고양시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지하철을 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40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다행히도 놓치지 않아서 무사히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대곡역이었다. 대곡역은 가끔 킨텍스에 갈 때 노선도에서 마주쳤던 역인데, 한 번도 내려본 적은 없었다. 대곡역은 허허벌판 한 가운데 위치한 역이었다. 무려 4개의 노선으로 환승할 수 있는 큰 역인데도 이런 곳에 위치해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역에 들어서니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뻥 뚫린 콘크리트 기둥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초록빛 풍경이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멋진 장소를 알게 되었다는 생각에 왠지 두근거렸다. 내가 만약 영화감독이었다면 이 공간에 어떤 장면을 배치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괜스레 해보며 환승을 위해 지하철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벌써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왠지 설렜다.
파주에 도착해서 친구를 만나 헤이리 예술마을로 향했다. 헤이리 예술마을에는 ‘딸기가 좋아’라는 키즈카페가 있었는데, 어릴 때 그 공간을 굉장히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소소한 추억에 잠겨 도착한 헤이리 마을은 예전과 비슷했다. 물론 그때보다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졌지만 헤이리 마을 특유의 아기자기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숲속처럼 푸릇푸릇한 느낌이 좋았다.
헤이리 마을에 온 이유는 헤이리 시네마 때문이다. 나에겐 지역 독립 영화관을 다 가보고 싶다는 작은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의 첫 번째 목적지가 헤이리 시네마가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 카페에 잠시 앉아 공간을 둘러봤다. 우드톤에 뻥 뚫린 공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창문이 크게 나 있어 햇빛이 들어오는 것도 좋았다.
헤이리 시네마에서 특히 좋았던 점은 영화관에 입장할 때 물을 나눠준다는 것과 방석, 담요, 목베개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모든 자리가 소파여서 영화를 더욱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부작용으로 영화가 재미없으면 깊은 잠에 빠져버릴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이날 봤던 영화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인데,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고 답답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감독의 실제 가족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여서 그런지 참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함께 간 친구는 편안한 소파에 취해 잠이 들어버렸다. 왠지 이 장면이 자꾸 생각난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파주 출판단지로 향했다. 지혜의 숲을 가기 위해서다. 지혜의 숲은 북카페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인데, 이곳에 우리의 숙소인 ‘지지향’이 있었다.
지혜의 숲에 들어서자 수많은 책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천장 끝까지 이어진 책장과 넓게 뚫려있는 공간은 보고만 있어도 힐링 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책과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평소에 책을 잘 읽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책은 왠지 보고만 있어도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책 속에 흠뻑 빠져서 책장을 휘리릭 넘기는 그 순간만큼은 이 지구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책 속 세상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조용히 흐르는 음악과 낮게 깔린 사람들의 대화 소리는 책 속에 들어가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책 한 권을 읽었다. 2026 젊은 작가상 수상작들을 읽어보았는데, 재미있는 단편이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쏙 빠져들어 버렸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남희현 작가의 <나는 야구를 사랑해>였다. 왠지 쓸쓸하고 공허한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는 사랑의 감정이 참 인상적이었다. 책을 다 읽으니 왠지 뿌듯한 마음과 함께 남은 하반기에는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하리라.
지혜의 숲을 나와 파주 출판단지 곳곳을 돌아다녔다. 푸른 녹음이 가득한 출판단지는 정말 예뻤다. 초록빛의 풍경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낮은 건물들 때문인지 탁 트인 느낌이 들어 참 좋았다. 이런 곳에서 출퇴근하는 출판사 직원들이 괜히 부러워졌다. 책과 나무가 가득한 공간이라니.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어느 소설 속 장소에 와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파주에서의 1박 2일은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밖 풍경이 내가 사는 곳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 왠지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기분이 좋았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불안함은 책 속 어딘가에 덮어버리고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밤새 친구와 나눴던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푸르른 풍경들이 아른아른 떠오른다. 이런 게 여행하는 이유 같다. 내 삶의 여행지가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한 뼘씩 자라나는 기분이 든다. 일상 속에 이런 이벤트는 늘 필요한 것 같다. 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다.
파주는 참 좋은 곳이었다. 늦여름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될 파주,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