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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규율의 벽, 종이 위의 저항 - 뮤지컬 '비더슈탄트' [공연]

1938년 독일의 한 스포츠 학교를 배경으로 펜싱부 소년들의 저항과 연대를 그린 이야기

by 이유빈 에디터
2026.08.26 18:49

1938년 독일의 한 스포츠 학교를 배경으로 펜싱부 소년들의 저항과 연대를 그린 창작 뮤지컬 <비더슈탄트>가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1관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순종과 복종, 계급으로 점철된 강압적 환경의 학교 안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은 사람의 비밀을 파헤치는 소년들의 이야기는, 무엇보다 이를 담아내는 연출과 무대를 통해 설득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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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적 규율이 지배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자라나는 청춘들의 균열이라는 이러한 무거운 주제에 대해 뮤지컬 <비더슈탄트>는 무대라는 물리적 공간과 그 위를 채우는 연출적 장치들을 통해 '억압이란 무엇이며 그에 맞서는 저항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관객이 눈과 몸으로 먼저 느끼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의 연출은 서사를 보조하는 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서술 방식이 된다.


뮤지컬 <비더슈탄트>의 무대는 처음부터 관객에게 명확한 하나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것은 바로, 규율과 통제가 지배하는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극의 또 다른 등장인물처럼 기능한다는 점이다. 격자무늬 구조물과 반복적인 선형 조명은 인물들이 놓인 위계질서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으며, 소년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의 폭이 극이 진행될수록 좁아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대사나 넘버로 설명되지 않아도 관객이 억압의 실체를 몸으로 느끼게 만드는 효과적인 장치였다.


이러한 공간감은 조명의 각도와 밀도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 개방된 야외나 자유로운 공간을 표현할 때조차 조명은 완전히 열린 형태를 취하지 않고, 어딘가 한 겹의 경계를 남겨두는 방식으로 설계된 인상을 준다. 이는 관객에게 '이 학교 안에서는 그 어떤 순간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느낌을 은연중에 각인시킨다. 무대 세트 역시 화려한 전환보다는 절제된 구조물의 배치와 재배치를 통해 장면의 성격을 바꾸어 나가는데, 이 절제된 미감이 오히려 극의 억압적 정서를 해치지 않고 지속시킨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장면 전환의 속도감이다.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임에도, 무대 전환이 매끄럽고 신속하게 이루어지면서 극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펜싱 시합 장면에서의 조명과 동선 활용은 스포츠의 역동성과 인물 내면의 갈등을 동시에 표현해내며 극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을 만했다.

 

도서관에서 인물이 책을 펼치는 장면의 연출도 눈길을 끌었다. 무대 중앙 벽면에 빔프로젝션으로 낡은 책의 지면이 투사되고, 페이지가 넘어가는 이미지가 배우의 손짓과 맞물려 진행되면서 객석 전체가 그 책을 함께 들여다보는 듯한 착시를 만들어냈다. 텍스트로 존재하는 과거의 기록을 무대 위 이미지로 전환해 관객을 '읽는 행위'에 직접 동참시킨 이 장치는,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인물의 시선을 관객의 시선과 포개어놓는 효과적인 연출이었다.


별도의 앙상블 없이 여섯 배우만으로 극을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이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군무의 밀도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중 단장 역 배우를 제외한 다섯 소년이 맞추는 획일적인 동작은 개인의 개성을 지우는 학교 체제의 폭력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이후 각자가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며 대열에서 이탈하는 순간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인원을 늘려 화려함을 더하는 대신, 다섯 인물 각각의 존재감을 살린 절제된 군무를 택한 연출적 선택은 '순응과 저항'이라는 극의 핵심 주제를 몸짓의 언어로 번역해낸 시도로도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이 군무가 단순히 시각적 볼거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는 다섯 사람 사이에서 한 인물의 동작이 미세하게 어긋나거나 늦어지는 순간들이 배치되는데, 이는 소수의 인원이었기에 오히려 더 선명하게 포착되는 지점이었다. 관객은 획일적 대열 안에서도 균열의 씨앗이 이미 자라고 있었음을 미리 감지하게 되고, 이러한 안무적 복선은 이후 소년들이 개별적인 신념을 드러내며 저항에 나서는 서사적 전환을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1막의 마지막 장면 역시 이 작품의 연출력이 응집된 대목이었다. 학교의 어두운 진실이 적힌 종이를 소년들이 각자 손에 쥐고 무대 위로 일제히 던져 올리는 장면은, 그 자체로 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압축한 이미지였다. 각자 감춰두었던 문서가 여럿의 손에서 동시에 뿌려지는 모습은 '연대'라는 극의 주제를 대사 없이도 명료하게 전달했다. 흩날리는 종이가 조명 아래로 떨어지며 만드는 시각적 잔상은 1막을 닫는 이미지로서 여운이 컸고, 인터미션 이후의 서사에 대한 기대를 효과적으로 증폭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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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무대 언어가 설득력을 갖는 것은 결국 그 위에서 쌓이는 인물들의 서사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이미 희생된 라이너가 남긴 저항의 흔적은 아벨에게로 이어지고, 복종과 침묵으로 일관하던 프레드릭이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만들며, 명예와 힘에 눈이 멀어 있던 매그너스에게는 권력의 이면을 자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각 인물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라이너의 흔적과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극은 '옳지 못한 것에 맞서는 저항은 성공과 실패의 결과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완성해낸다. 인물 각자의 서사가 곧 극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변하도록 설계된 구조는, 앞서 언급한 무대와 연출의 상징들과 맞물려 극의 완성도를 한층 높이는 요소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값진 것은, 연출이 만들어낸 상징들이 인물들의 서사와 정확히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라이너가 남긴 저항의 흔적이 아벨에게 전해지고, 그것이 프레드릭의 침묵을 흔들고, 매그너스의 눈을 가리고 있던 명예와 권력의 허상을 걷어내는 과정은 무대의 시각적 상징들과 함께 겹겹이 쌓이며 완성된다.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옳지 못한 것에 저항하는 행위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는 극의 메시지는, 이렇듯 인물 개개인의 서사와 무대 위 이미지가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비로소 관객의 마음에 온전히 도달한다. <비더슈탄트>는 무대와 서사, 인물이 하나의 방향을 향해 정교하게 짜인 작품이었고, 만족스러운 관극 경험을 선사함에 분명했다.

 

이 작품이 이야기했던 저항의 의미가 극장을 나선 이후 지금까지도 여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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