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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독을 건네는 어머니 - 뱅크시 : Still Here [전시]

익숙한 이미지의 틈 속에 저항을 던지다

by 길유빈 에디터
2026.08.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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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분유 대신 독을 먹이고 있다. 이 여자는 자비로운 모성의 초상이자,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다. ‘모성’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성모 마리아가 아이에게 독을 먹이고 있는 모습은 괴리감과 불쾌함을 불러일으킨다.


어머니가 건네준 것이 분유일까? 아이는 그것이 분유인지 독인지 알 길이 없다. 그저 받아먹으며, 나의 처음을 책임지는 어머니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는 뱅크시가 정형화된 어머니상인 성모 마리아를 통해, 당연하게 여겨져 온 사회의 정상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처음을 책임져주는 이의 행동이라고 해서 그것이 모두 올바른 것일까? 아이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흔히 말하는 ‘정상성’이라는 프레임에 의구심을 품을 자격이 있으며, 뱅크시는 그러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며 작품을 만들어 왔던 것이 아닐까.


뱅크시는 세간에 ‘얼굴 없는 예술가’로 알려진 사회운동가이자 거리 예술가로, 스스로를 ‘아트 테러리스트’라고 칭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활동해 온 신원 미상의 예술가인 그이기에, 그의 ‘정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내가 인상 깊게 느꼈던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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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챕터에 입장하면 대부분의 그림에서 쥐를 발견할 수 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보이는 쥐의 모습에, 쥐라는 존재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쥐는 작고 귀여운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햄스터처럼 애완동물로 인식되기보다는 지하나 하수구에서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존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기에 나는 쥐를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질서와 규범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작품 ‘러브 랫’을 보며 쥐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뱅크시의 작품 속 쥐는 사회 주변부에 존재하는 익명의 개인이자, 제도와 권력의 바깥에 있는 거리 예술가를 의미한다. 작품명처럼 사랑의 상징인 하트와 천대받는 존재인 쥐가 결합하면서, 아름다움과 불결함, 희망과 상처가 공존하는 인간 감정의 복합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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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이라는 작품도 재미있었다. 온화한 분홍색 바탕에 인자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들이 뜨개질을 하고 있다. 그런데 뜨개질에 새겨진 글자는 이 모습과 완전히 대비된다. ‘펑크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평생 불량배’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전 문화초대로 관람했던 작품인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를 보고 느꼈던 감정이 다시 밀려왔다. 당시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적었는데, 나는 할머니에 대한 연민이 싫었다. 단순히 할머니를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느끼는 동정심에 거부감이 들었다. 할머니도 춤을 출 수 있고, 경제력에 집착할 수도 있고, 헤비메탈과 힙합을 하루 종일 들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할머니들’이라는 작품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평생 불량배'라는 담요를 웃으며 뜨개질하는 모습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할머니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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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장면이라고 느꼈다면 정답이다. ‘펄프 픽션’이다. 그런데 무언가 다르다. 손에는 총이 아니라 바나나를 들고 있다. 흑백의 장면 속에서 이질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노란색 바나나를 겨누고 있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허나 뱅크시는 그 누구보다 폭력과 전쟁이 없는 세계를 원하는 예술가다. 그의 신념을 알고 작품을 다시 바라본다면,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겨누는 것은 당연히 총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뱅크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꽃을 던지는 남자’와 ‘풍선을 든 소녀’를 꼽을 수 있겠다. 뱅크시가 이루고자 하는 ‘저항’은 근본적으로 폭력과 전쟁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며, 두 작품 역시 그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 인상 깊었던 작품을 꼽자면 독을 건네는 마리아와 ‘평생 불량배’라는 글자가 새겨진 담요를 뜨개질하는 할머니였다. 정형화된 세상 속에서 한 끗 차이로 익숙한 이미지를 뒤집고 저항을 담아낸 작품이 나의 마음을 건드린 것일까. 어머니는 항상 자비로워야 한다는 정상성, 할머니는 항상 다정하고 인자해야 한다는 정상성. 사회는 수많은 이들에 의해 ‘옳음’과 ‘그름’을 틀에 짜 놓았지만, 세상은 그 틀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해졌다. 실은 내가 이미 그러한 프레임에 잠식되어 있기에 더욱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정상성’에 의문을 품는 것 역시 하나의 저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뱅크시가 보여주는 ‘저항’이라는 키워드는 단순히 무언가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과 맞물려 있는 ‘시대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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