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판타지 소설 연구자이자 작가인 브라이언 애터베리의 신작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가 출간되었다. 판타지란 지극히 허구적인 것이며 그와 반대로 인간의 삶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을 논하는 데 있어서 판타지를 제외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거짓말로 진실을 말하기'라는 저자의 책 속 표현은 판타지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문장이다.
책을 읽고 나서는, 판타지의 현실적 효용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상징화된 가치의 창의적 재현'으로 말이다. 말이 꽤나 현학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이 각각의 판타지 세계 속에서 고유의 문법을 통해 상징적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책과 영화 <말레피센트> 시리즈를 번갈아 보면서 저자가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판타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본 결과 나 역시 양탄자를 타고 날아다니는 장면과 같은 여러 판타지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읽고 보는 것을 좋아했음에도, 어느샌가 현실 속 삶의 법칙에 너무 길들어져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책과 판타지 영화를 번갈아 가면서 검토해보는 작업은 저자가 말하고 있는, 판타지의 현실적 효용성을 감성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여기서, 이 글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에 앞서,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두 가지 염두 사항이 있음을 밝힌다.
첫째, 이 글에서는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주장의 근거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 <말레피센트>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 설명이 다뤄질 것이다. 최대한 스포일러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설명할 것이기에,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가능하다면 영화 <말레피센트>를 함께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둘째, 이 글은 책의 모든 챕터를 다루지는 않는다. 책의 방대한 내용을 전부 개괄식으로 다루기보다는, 필자가 잘 소화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이 책을 소개해 나가는 것이 더욱 좋은 글이 완성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3장 [화합을 추구하는 결말]과 4장 [갈등보다 건설적인 각본]에서의 주장을 영화 <말레피센트>의 이야기를 가지고 다룸으로써 '판타지의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이해해보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줄거리*
말레피센트는 원래 디즈니 만화 시리즈중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오로라 공주에게 저주를 거는 마녀 빌런이다. 그러나 영화화되면서 말레피센트에게 부여되었던 기존의 서사가 다음과 같이 변형된다. 즉, 말레피센트는 사랑했던 사람의 배신으로 인해 크나큰 상처를 받아 복수를 다짐하긴 하지만 또한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낳은 아이인 오로라 공주를 뒤에서 챙겨주는 입체적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1. 화합을 추구하는 결말 - 서로 다른 세계가 나란히 자리하면서도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는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3장]에서 서술되고 있는 애터베리의 주장과 같이, <말레피센트>에서 등장하는 인간 세계와 마법 세계는 서로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해 서로 경계하는 태세를 보인다. 하지만 <말레피센트> 시리즈 모두에서 두드러지는 가치는 바로 '복수심과 그것을 초월하는 사랑과 유대'이다. <말레피센트 1>에서, 말레피센트는 어린 시절, 고아인 스테판이라는 소년을 사랑했지만, 야심이 가득했던 그 소년은 말레피센트를 잡아오라는 왕의 명령을 받고 그녀가 잠든 사이 그녀의 날개를 도려내 그녀를 죽였다는 거짓 증명을 함으로써 인간 세계의 왕이 된다.
사랑했던 스테판에게 상처받은 말레피센트는 복수심에 불탄 나머지 왕국에서 그의 딸이 태어나자마자 세례식에 나타나, 그 공주가 16살이 되는 날 진정한 사랑의 키스가 없다면 물레에 손가락이 찔려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저주를 걸어버린다. 그 저주로 인해 스테판 역시 분노와 복수심에 사로잡히게 되고, 결국 자신의 망상 속에 사로잡혀 버리게 된다. <말레피센트 2>에서도 인간에게 지난한 시간동안 수모를 겪고 점차 자신들의 서식지를 잃게 된 것에 큰 분노를 느낀 (말레피센트와 같은 종족인) 다크 페이 종족들은 인간들과 대규모 전쟁을 하게 된다.
사실 '복수심'이라는 키워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부터 현대 작품까지 전체를 관통하는 주된 테마이다. 한 쪽이 다른 쪽에 가하는 복수는 그 반대 방향으로의 복수를 낳는다는 점이 주된 플롯이다. 하지만 <말레피센트>는 각각 다음의 내러티브로 복수심을 넘어서는 '유대와 사랑의 가치'를 전파하고자 한다. 1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즉, 오로라의 성장 과정에 함께 있으면서 복수심을 넘어서는 모성애를 느꼈던 말레피센트는 자신이 오로라에게 건 저주를 후회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저주를 풀 방법을 고민해보고 시도해보았지만 결국 실패하자 후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녀에게 우연히 입맞춤하게 되는데 그때 오로라가 깨어나게 된다. 한때 스테판의 배신으로 인해 진정한 사랑을 믿지 않았던 말레피센트도, 자신의 성장 과정 내내 그녀의 사랑과 챙김을 받아왔다고 느껴왔던 오로라도 그 장면을 통해 서로에게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한편, 2편에서는 오로라의 약혼자 필립 왕자가 있는 왕국의 잉그리스 왕비의 지배 욕망으로 인해 오로라와 말레피센트의 관계가 어긋나 버리고, 이내 죽음의 위기에 내몰린 말레피센트가 다크 페이 종족과 연합을 통해 인간 세계와의 대규모 전쟁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2편에서도 진실을 밝혀내는 오로라와 인간 세계 이외의 다른 세계 역시 존중하려는 필립 왕자 그리고 다크 페이의 수장 코널 등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서로 다름을 존중할 수 있으면서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침내 서로 다르지만 모두 환영받고 존중받는다는 오로라의 힘찬 마지막 선포와 함께 두 세계는 다시 화합의 상태에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끝맺음으로써, 현실에 있는 우리들은 다른 특성 혹은 속성을 가진 존재들도 각자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공존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 세계를 상상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갈등보다 건설적인 각본 - 정의를 향해 새로운 각본을 창조하는 것이 판타지의 핵심 주제이자 필수적인 기능
하지만 이렇게 <말레피센트> 시리즈 내용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복수를 넘어서는 사랑과 유대'의 가치는 쉬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 간의 갈등과 대립은 판타지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도, 아니 현실 세계에서야말로 인간 사회가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많은 판타지 연구가 '갈등'을 판타지의 스토리가 전개되기 위한 강한 충동의 엔진, 즉 메인 스트링이라고 보는 견해에 반박한다. 오히려 판타지는 현실 세계가 변화되기 위한 보다 건설적인 서사와 모티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저자는 아동 청소년 문학가 마레크 오지에비치의 주장을 가져와, "정의를 향해 새로운 각본을 창조하는 것이 판타지의 핵심 기능이자 필수적인 기능이다."라고 덧붙인다.
이때 판타지 장르인 <말레피센트> 시리즈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건설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갈등'은 해당 시리즈에서도 굵직하게 다뤄지는 주 골자이긴 하나, 해당 작품에서 서로 다른 왕국들 간의 싸움이 적나라하고 잔인하게 그려지진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스토리에서의 갈등은 영화에서의 액션과 같은 것이다. 더욱 폭력적인 싸움, 더욱 길어진 추격전, 더욱 큰 폭발과 같은 것들이 스토리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스토리가 액션 그 자체에 너무 치중할 경우 그곳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무언가를 깨닫지도 않고 캐릭터에 대한 사실이 드러나지도 않으며 그 어떤 것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게 될 수 있음에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말레피센트> 시리즈에서도 갈등이 다뤄지는 장면을 사실적이고 긴 시간을 할애하여 다루기보다는, 영화가 지향하는 가치(여기서는 사랑과 유대)를 향하는 과정으로서만 부분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갈등이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데 흥미를 끌어낼 수는 있어도, 그것의 짝인 '해결'의 키워드가 있어야만 그것을 다루는 스토리와 내러티브가 건설적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스토리 안에 갈등이 생성되었을 경우, 갈등이 존재하는 공간을 싸움터 이상의 의미를 갖는 공간으로 표현할 방법을 판타지 작가라면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말레피센트>에서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공존하는 법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가? 필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즉, 서로 다른 존재들 간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서로 간에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이고 축적됨으로써 서로에 대한 애정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그로 인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어쩌면 극복하기까지에 이를 수도 있을 가능성을 말레피센트와 오로라의 관계성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3. 이 글을 마치며
저자의 숙고된 판타지 연구들을 읽어 내려간 후 필자가 미약하게 나마 덧붙이고픈 생각이 있는데, 그것을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이 글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즉, 판타지에서 제시될 가치들은 상징적으로 제시되어야 하지, 사실적으로 제시될 경우 그것은 프로파간다에 더욱 가까운 무언가가 될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판타지가 가상이기에 줄 수 있는 고유의 미학적 가치가 있을 것이다. 미학적 가치가 있다고 함은 판타지의 속성이 '가상적 속성'을 지녔기에 현실적인 물리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다. 현실 세계의 물리법칙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어도 작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들이 판타지 작품 곳곳에 장치와 실마리를 통해서 상징적으로 제시될 수 있도록 변형의 작업이 있어야만 그 작품은 판타지로서 자리하고, 또한 온전히 제대로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이전에 필자는 인어와 관련된 판타지 만화에 깊이 빠져서, 그들이 물에 닿으면 원래 인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필자도 집에 있는 목욕탕 물에 들어가면 인어가 되기를 바랐던 시절이 있다. 판타지가 머릿 속에 가득했던 그때를 추억하는 동시에 판타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발전시켜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