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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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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늙지 않는다. 몸이 늙는 건 세월에 비례해 비교적 정직하고 공평하지만, 정신과 마음의 노화 속도는 제멋대로에 불공평하다. 늙어가는 몸의 색은 흐릿해지는데, 정신과 욕망의 색깔은 젊을 때보다 더 붉게 타오를 때도 있다. 모든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욕망(欲望)의 사전적 의미는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이다. 많은 이들이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무엇’은 뭘까. 돈, 아름답고 값비싼 예술 작품, 나를 배신한 전 연인의 파멸, 내 사회적 위치를 굳건하게 지켜줄 수단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는 뚜렷한 결과다.


그렇다면 결과보단 과정만을 추구하는 욕망도 있을까. 손에 쥐는 것이 없거나 아주 적더라도, 어떤 과정을 수행하는 것에만 기쁨을 느끼려면 삶의 내공을 얼마나 쌓아야 할까. 결과를 손에 쥐는 것보다, 과정의 흐름만을 즐기는 일이 훨씬 어려울 것이다. 누구나 원하는 것은 영원히 소유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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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꽃의 비밀> 후 10년 만에 신작을 선보인 장진 작·연출 연극 <불란서 금고-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이하 <불란서 금고>)엔 욕망을 품은 다섯 인물이 등장한다.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은행 지하 건물 ‘불란서 금고’ 앞에 모인 이들은 나이, 직업, 살아온 환경, 성격까지 제각각이다. 평생 금고를 열어온 기술자 ‘맹인’, 부와 명예를 가졌지만 비밀도 많은 ‘교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광적으로 수집하는 ‘밀수’, 거칠고 무식하지만 순수한 ‘건달’, 선한 얼굴로 섬뜩한 복수심을 내뿜는 ‘은행원’까지. 이들은 금고를 열기 위해 정체를 감추고 힘을 합친다.


건달은 거액의 돈을, 밀수는 ‘해궁신유도(장진 감독이 설정한 가상의 그림 이름)’를, 은행원은 전 연인의 고통과 몰락을, 교수는 과거에 저지른 끔찍한 죄의 증거를 불란서 금고에서 꺼내려 한다. 이들이 가지려 하는 결과들은 구체적이지만 비현실적이다. 지나치게 값어치가 높고, 희귀하고, 잔인하며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노인이자 앞을 못 보는 금고 털이 기술자 맹인은 불란서 금고에서 꺼내고 싶은 것이 없어 보인다. 그는 금고를 여는 대가로 누군가에게 선금을 받은 듯 여유롭다. 그러면서도 천만 원만 있으면 좋겠다며 현실적인 욕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세속적 욕심이 전혀 없는 인물은 아니더라도, 맹인은 금고 안의 물건보다 금고를 여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은행원의 말에 따르면, 맹인은 ‘금고 성애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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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은 미제도, 독일제도 아닌 불란서 금고는 지나치게 예술적이라 열기 어렵다고 푸념한다. 그러면서도 샹송 ‘불란서의 하루(Une journée en France)’를 배경음악으로 다이얼의 아름다운 마찰음을 느끼며 금고를 열 땐 순수한 희열을 만끽한다.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밀수, 교수, 건달, 은행원은 원하는 걸 얻지 못했지만 맹인은 예술적인 불란서 금고를 열며 욕망을 실현했다. 그 욕망이 다다른 곳은 대사로 여러 번 강조되는 ‘북벽’이다.


작·연출 장진은 신구가 출연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영감을 얻어 <불란서 금고>를 집필했다고 밝혔다. 그러한 의도에 걸맞게 신구가 연기한 맹인은 첫 대사로 극을 열고, 인물 중 홀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묵직한 존재감으로 극을 이끈다. 신구는 <불란서 금고> 프로그램 북 인터뷰에서 실제로 금고가 있다면 뭘 넣을 것이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넣을 것이 없습니다. 욕심을 덜어내고 싶습니다. 가볍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령 배우인 신구가 계속 무대에 서며 묵묵히 연기하는 모습, 대한민국 연극사의 산증인임에도 늘 겸손한 태도와 맞닿은 답이다. 신구는 <불란서 금고> 참여 소감을 묻는 말엔 무대에 서는 건 아직 살아 있는 증거이며, 관객과 같은 숨을 쉬며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 고맙고 귀하다 답했다. 이처럼 연극을 사랑하는 신구의 숭고한 마음은 <불란서 금고> 무대에 그대로 드러났다. 금고 안 물건엔 욕심을 내지 않고, 금고를 여는 과정에 행복해하는 맹인과 살아 있기에 연기를 한다는 배우 신구의 깨끗한 마음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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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 금고>에서 모두가 오르고자 하는 ‘북벽’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오지 않는 ‘고도’를 연상시킨다. 고고와 디디가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리다 오늘과 똑같은 내일을 맞는 것처럼, <불란서 금고>의 인물들 또한 금고 안 잡히지 않는 욕망에 닿으려 발버둥 친다. 그럼에도 북벽에 오른 이는 금고 안이 아닌 금고 밖, 즉 금고를 여는 것에만 집중한 맹인뿐이었다.


맹인은 평범한 노인이라기보단 신선 혹은 도인에 가깝다. 터무니없는 욕심은 부리지 않고, 결과보단 과정을 즐기고, 다이얼의 아름다운 마찰음을 마음껏 느낀 후엔 미련 없이 금고를 떠난다. 금고를 지키는 창살 안, 즉 욕망의 감옥에 갇힌 건달과 은행원은 아직 청년이며 중년인 교수와 밀수 또한 맹인에 비하면 젊다. 그들은 갖고 싶은 것도, 지키고 싶은 것도 많기에 적극적으로 욕망을 탐했다. 탐닉의 엔딩은 허무였다. 이런 모습은 우리 인생을 상징하는 걸 수도 있겠다.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욕망은 가진 것이 많을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연극 <불란서 금고>는 블랙코미디를 표방했지만, 마지막 장면에선 철학적인 주제로 문을 닫는다. 이들에게 금고로 오라고 전화를 건 이는 특정 인물 한 명이 아닌, 결국 자신의 욕망이었다는 것이 은행원의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추리물로서의 장르적 재미를 느끼길 기대했다면 호불호가 갈릴 작품일 수도 있겠다. 엔딩 의미를 깨닫는 건 어렵지 않지만, 사건의 흐름이나 개연성보다는 주제가 강조되는 결말이기에 의문이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밀폐된 공간과 극적인 상황에서 뒤엉키며 오는 재미, 배우들의 연기와 앙상블, 허를 찌르는 반전들, 코미디에 충실한 재치 있는 전개에선 ‘역시 장진’이란 감탄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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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벽 장춘이라고 했다. 깎아내린 듯 가파른 돌 절벽, 가장 높은 봉우리가 북벽이었고 그 위에 오른 자가 상좌를 틀어 모든 걸 가져갔다. 북벽에 오르면 아래 세상이 훤히 보였고, 구름도 발 아래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지.’


극을 여는 맹인의 첫 대사이자 장진이 <불란서 금고> 희곡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 대사다. 북벽에 오른 자가 봄을 베푼다는 뜻의 상징적 표현이 담긴 ‘북벽장춘(北壁張春)’ 이야기는 장진이 작품을 위해 구성한 우화적 설정이다. 처음엔 의미보단 이미지로 대사를 받아들였단 장진은, 사람들이 왜 북벽에 오르려 하는지 질문을 던져봤다고 한다.


답은 <불란서 금고> 속 인물들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금고를 털기 위해 모인 이들뿐 아니라, 작품의 숨은 키를 쥔 금고를 지키는 인물 ‘그리고’ 마저 선명한 욕망을 감추지 못한다. 이는 과정 지향적 인물인 맹인조차 피해 갈 수 없었다. 관객은 여섯 인물을 통해 씁쓸한 웃음과 함께 깨달음을 얻으며 극장을 나설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욕망을 탐할 수밖에 없으며, 욕망의 한 자락이라도 쥐어보고자 발버둥을 치는 게 삶이란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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