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
......
...
아 썅! (왜 안 떨어지지?)
- 「꿈꿀 수 없는 날들의 답답함」 전문
온라인에 편린처럼 돌아다니는 시들이 있다. 위의 시를 나는 온라인에서 우연히 자주 마주쳤다. 이렇게 떼어놓고만 봐도 좋은 시지만, 시집으로까지 확장되어 읽혔으면 하는 책이 있다. 위 시가 수록된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이 가장 큰 예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허수경 시집에 대한 해설을 읽다가, 그를 더러 “이미 이십 대에 다 늙어버린 시인”이라 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정확한 반대가 최승자의 시라고 생각한다. 영영 이십 대 초반의 아픔에 머무르는 시.
이 시집의 시들이 1976~1981년에 쓰인 시들을 묶은 것이기에 어조가 상당히 옛스러운데도,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고 도리어 세련됨을 주는 것은 감성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이 시집은, 이십 대에서 헤어 나올 수 없어 끊임없이 자해하는 기록처럼 보인다.
아마 이십대 초만큼 이 시집을 잘 읽어낼 적기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를 잘 읽지 않는 주변 친구에게도 많이 선물하였다. 치밀어오르는 망령의 갈증 같은 언어가 나 대신 그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 가는 것임을 알면서도.
『이 시대의 사랑』에 등장하는 '이 시대'의 절망과 희망과 사랑을 함께 살펴보자.
1.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 「일찌기 나는」 전문.
위 시는 내가 이 시집을 읽게 된 계기가 된 시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어딘지 지극히도 익숙한 문장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 문장은 시 전문을 다 읽었을 때 더 다가오는 힘이 강력하다.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고백하는 솔직한 목소리. 그 목소리는 우주 같은 공허를 처절하게 품고 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나 벽에다 누고 눈 오줌 자국보다 못한, 그런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느끼는 자기혐오가 사무치게 와닿는다.
이 시를 읽으면,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생각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년은 ”난 가끔 저 우주가 더 내 집처럼 느껴져“라고 말한다. 이에 소녀가 공감하는 순간, 그 둘은 사랑에 빠진다. 지구보다 우주에 더 그리움을 느낀다는 공통점에 감화된 것이다.
나는 최승자의 시를 읽을 때 많은 이들이 이와 비슷한 감각으로 사랑에 빠질 것이라 생각한다. 최승자는 그것이 아주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2. 어디까지 갈수있을까 한없이흘러가다보면
1
어디까지갈수있을까 한없이흘러가다보면
나는밝은별이될수있을것같고
별이바라보는지구의불빛이될수있을것같지만
어떻게하면푸른콩으로눈떠다시푸른숨을쉴수있을까
어떻게해야고질적인꿈이자유로운꿈이될수있을까
(중략)
4
자신이왜사는지도모르면서 육체는 아침마다배고픈시계얼굴을하고 꺼내줘어머니세상의어머니 안되면개복수술이라도해줘 말의창자속같은미로를 나는걸어가고 너를부르면푸른이끼들이 고요히떨어져내리며 너는이미떠났다고대답했다 좁고캄캄한길을 나는 기차화통처럼달렸다 기차보다앞서가는 기적처럼달렸다. 어떻게하면 너를 만날수있을까 어떻게달려야 항구가있는 바다가보일까 어디까지가야 푸른하늘베고누운바다가 있을까
-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中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어디까지 가야 하고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고통스러워하는 화자의 목소리가 마치 광증처럼 느껴졌다.
이 시집을 읽는 내내, 시적 세계의 내부적 실험이나 새로운 세계의 창조보다는 그저 괴로워 몸부림치는 목소리의 형형한 재현이라고 느꼈다. 시집 전체가 그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읽으며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이 시인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글이 가장 잘 써질 때는 사실 정말 괴로운 때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낼 때, 주체할 수가 없어서 무엇이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면 좋은 글이 나온다.
내가 그 목소리와 그 감정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시집에서 이토록 괴로워하는 감정의 결들은 시인과 그 감정이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었을지 상상하게 만든다. 한없이 떨어지고 있고, 차라리 떨어지길 바라지만 어쩐지 떨어지지 않아 더 괴로운 마음을.
자아가 생겨나고 사유를 시작하게 되면 자연스레 이러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언어 사이를 누비며 태어남과 살아감, 그리고 죽음 사이에서 연연하게 된다. 삶과 시간은 휘몰아치는데, 그 안에서 자리한 자아의 공간은 너무도 고요하다. 그러한 이질감, 유리감을 메우고 싶을 때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시를 읽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덜 외로워지기에 시를 읽는다. 느끼는 감정을 적확하고 뾰족한 말들로 풀어 헤쳐 내놓을 때, 왠지 위로받은 느낌이 든다. 이 시 또한 그런 시이다. 나 외에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가닿길 바란다.
3. 나는 살아 있어요 살아 있어요
대낮에 서른세 알 수면제를 먹는다.
희망도 무덤도 없이 위 속에 내리는
무색투명의 시간.
온몸에서 슬픔이란 슬픔,
꿈이란 꿈은 모조리 새어 나와
흐린 하늘에 가라앉는다.
보이지 않는 적막이 문을 열고
세상의 모든 방을 넘나드는 소리의 귀신.
(나는 살아 있어요 살아 있어요)
소리쳐 들리지 않는 밖에서
후렴처럼 머무는 빗줄기.
죽음 근처의 깊은 그늘로 가라앉는다.
더 이상 흐르지 않는 바다에 눕는다.
- 「수면제」 전문
깊은 밤하늘 위로
숨죽이며 다가오는 삿대 소리.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죽음이 나를 겨누고 있다.
어린 꿈들이 풀숲으로 잠복한다.
풀잎이 일시에 흔들리며
끈끈한 액체를 분비한다.
별들이 하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쨍! 죽음이 나를 향해 발사한다.
두 귀로 넘쳐 오는 사물의 파편들.
어둠의 아가리가 잠시 너풀거리고
보라! 까마귀 살점처럼 붉은 달이
허공을 흔들고 있다.
- 「불안」 전문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에서 반복되는 죽음 충동과 사랑, 즉 에로스의 투사는 자기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다. 앞서 발췌한 시들은 주로 ‘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시이지만, 시집 내에서는 에로스를 포함한 육체적인 ‘사랑’에 대한 노력이 반복적으로 보여진다.
성관계와 같은 에로스를 표현한 작품들이 세간에 많은데, 보통 그러한 장치가 작품 내에서 유효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그것이 '연결'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서 역시 그러한 '육체적인 연결'을 위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에로스가 시 속 화자의 결핍을 전혀 채워주지 못하며, 그럼에도 화자는 반복해 대상인 '그'를 사랑하고 그녀와 우리로 환원한다는 것이다. 고독과 결핍은 그 빈 자리를 무언가로 채우고 싶다는 욕망을 낳지만, 그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에로스 즉, 연결을 위한 시도는 실패를 반드시 전제로 하기에 죽음충동을 향해 나아간다.

이 시집은 1, 2, 3부를 나눠 시간순을 역행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출간될 당시의 1부가 좀 더 시인과 시대가 심미적 거리를 더 갖추고 구성되어 있어 개인적으로 더 선호한다.
‘살아있음’이 시인에게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다. 그렇기에 시 속의 화자는 귀신처럼 삶에서 유리되어 무의식의 세계를 떠돈다. 그러나 이 시들은 단순히 고통을 토해냄에 그치지 않는다. 시인은 시를 씀으로써 자아를 유지하고, 나아가기 위해서 노력한다.
“나는 살아 있어요 살아 있어요”라고 외치는 목소리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