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것은 설치미술인가 전통공연인가 - 수림뉴웨이브 ‘초임계유체’

새로운 시도가 만들어내는 풍부한 그림
글 입력 2023.09.1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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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마음이 복잡스럽던 날이었다.

 

앞서 일어난 좋지 않은 일들로 잔뜩 심통이 나 있었고, 게다가 믿었던 지도 어플은 그날따라 나를 배신하며 수림문화재단의 정문이 아닌 후미진 후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정상적인 루트로 들어갔다면 바로 매표소가 보여야 했지만 나는 과연 열어도 될지 모르겠는 무거운 후문 슬라이드를 열고, 사무실로 즐비한 위 층에서 1차 당황을 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 층으로 내려와야 했다.


거기까지 와서도 쉽지 않았다. 반쯤 문이 열린 객석 공간을 보고 ‘이곳이다!’라고 확신했지만 그 앞의 매표소는 텅 비어 있었고, (심지어 공연 시작 시간 30분 전이었다) 이제는 내가 건물을 제대로 찾긴 한건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아래쪽 지하 공간으로 분주하게 오가는 셋업 직원분이 계시기에 지층 객석 공간을 가르키며 “여기 공연 표는 언제 받나요?”하고 여쭤보았지만 “글쎼요 저는 여기 아래 공연 스텝이라서요..”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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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힐끗 아래 공간을 보게 되었는데, 나는 정말이지 아직 셋업이 진행 중인 줄로만 알았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곳은 오늘 리뷰할 공연이 진행되는 공간이 맞았다. 처음 보는 장비들이 빼곡히 즐비하고, 간이 의자가 펼쳐져 있던 완전히 오픈된 공간, 내가 어렴풋이 생각하던 ‘이런게 객석과 무대지’라는 그림에 완전히 어긋나는 공간이었다.


새삼 당연스레 그곳이 아닌 객석문을 통해 들어가야 전형적인 객석이 나오는 위층 공간이 공연 장소일 것이라 지레짐작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름 에디터 활동을 하며 여러 형태의 공연을 접해보았다고 자부했지만 나의 식견은 아직 넓지 못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또 그만큼 이번 공연이 굉장히 창의적이고 신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구나 싶어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객석 공간에 앉아 자세히 살펴본 무대 공간은 그야말로 처음보는 구성이었다. 기다란 은색 철사가 달린 목조 기계들이 줄 세워 마치 비석처럼 서있었고, 가장 안쪽 가운데에 음향 장비로 보이는 기계와 곳곳에 북과 같은 전통 악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공연의 무대를 보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전시회장의 설치미술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신기했다.

 

 

[23nw] 송지윤 (2).jpg

 

 

이윽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멕시한 드래스를 입은 송지윤 대금연주가가 등장했고, 공연은 별다른 안내나 방송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송지윤 연주가와 합을 맞추는 또다른 연주가가 있었는데 그는 북과 음향장비를 다루었고, 두 사람은 마치 한 연주가가 멀티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공연을 이끌어 갔다.


무엇보다 눈이 갈 수밖에 없던 것은 정체모를 설치 작품 같은 악기였는데, 대금과 북 소리 중간 중간 연주자들은 이 악기에 달린 은색 철사를 돌리거나 쳐서 사운드를 곁들였고, 혹은 철사 스스로 돌아가며 소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풍부한 음향으로 공간을 채웠다.


그러니까 이번 공연이 어땠는지 한 마디로 말해보자면, 정체모를 피리 소리에 홀려 들어간 대나무 숲에서 때 아닌 소낙비를 마주한 기분이랄까?

 

연주가들이 내는 전통 악기의 사운드는 오픈 된 공간으로 퍼져 나가 공간을 가득 매우며 마치 바로 앞에서 이루어진 소리가 아닌 저 멀리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실려오는 소리처럼 들렸고, 신기한 악기가 만들어 내는 철사 움직이는 소리는 빗소리처럼 갑작스럽게 귓가를 사로잡았다.


목조 악기에 달린 철사에는 흰색 천이 늘어뜨려져 있었는데, 이것은 철사가 돌아갈 떄마다 함께 움직이며 시각적으로도 굉장히 풍부한 그림을 형성했다. 흰 천들이 제 각기 움직이며 일정한 간격을 만들어내는 그림 또한 비 내리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연주자들이 전통 악기를 다루는 방식 또한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여태껏 당연히 ‘이것이 올바른 연주법이지’하고 생각해왔던 방식을 가뿐히 뛰어넘어 생경한 소리들을 만들어 냈다. 대금 연주자는 단순히 불어서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대금의 표면을 긁거나 두드려 다양한 소리를 만들었고, 또 다른 연주자 또한 북의 겉면을 긁어 소리를 내거나 부드러운 붓 같은 장비를 이용해 북을 통해 투박하지 않은 섬세한 소리를 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토록 모든 것이 새롭고 익숙치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낸 사운드임에도 이들이 생각보다 잘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던 이번 공연의 인상처럼, 듣고 있다 보면 Asmr처럼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는 비 오는 날의 연주를 들은 기분이었고, 생경한 그림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부감을 최소화 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들였을 연주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컬처리스트 명함 (1).jpg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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