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한 세기의 삶을 꿈꾼다는 건 -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글 입력 2024.04.0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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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살고 싶어지네.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의 막이 내리고 떠오른 첫 생각이었다. 나에게 살고 싶어진다는 감각은 삶이 찌질하고 이상해도 무방하단 걸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을 때 찾아온다. 누군가의 잘난 한 시절보다 취약한 한 때를 함께하며 피어나는 원동력. 그것은 왠지 조금 더 알 것 같으면서도 누구나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공정한 힘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는 레즈비언 커플인 재은과 윤경, 그들의 딸 재윤의 ‘이상한 삶’을 다룬다. 극이 다루는 시대는 동성애, 퀴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2000년부터 혼인평등이 이뤄지고 우주까지 탐사할 수 있는 2099년까지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한 생애를 계획하고 성취하고 실패하고 수정하는데 충분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공평하게 주어진 한 세기의 상상 같지만, 그조차 꿈꾸지 못하고 변두리로 내몰리는 존재들이 많다.


실제 삶의 역사에서도 문학적인 상상에서도 퀴어에게 100년이라는 긴 시간은 낯선 수식어다. 길라잡이가 되는 다양한 삶의 모양이 불충분하고, 불안 속에서 마음 편히 믿을 수 있는 것은 점점 휘발되기 때문이다.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 퀴어의 지긋한 삶을 상상한 이 연극이 소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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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큰 특징은 ‘퀴어의 시간성’을 다루면서 ‘시간의 퀴어성’을 다룬다는 것이다. 퀴어함을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위계와 그 근원을 심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시간의 퀴어성’이라는 말은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른다는 관념을 향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삶이란 매끈하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보단 얽히고설키는 뒤죽박죽에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극의 진행은 시간의 구속에서 벗어난 채 진행된다. 재은과 윤경은 선형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특정한 연도를 언급하며 여러 시대를 어지러이 오간다. 가령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환희에 찬 2022년의 이야기 끝에 “2055년”을 외치며 이혼하는 이야기로 바로 넘어가는 형식이다.


그 풍경은 불시착 하는 타임머신 같기도, 연도별로 정리해놓은 홀로그램을 무작위로 재생하는 것 같기도 하다. 놀라운 것은 시간을 조각내어 무분별하게 모아놓은 것이 타당한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인물을 더 애틋하고, 밉고, 사랑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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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재현된 어지러운 시간성은 곧 관객 스스로 시간 여행자가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그 길에는 여러 자취들이 남겨져있다. 아무리 흘러도 해결되지 않는 후회의 조각, 어떤 풍파에도 잊을 수 없는 희열의 조각, 자기도 모르는 곳에 박혀 있는 슬픔의 조각. 한 시절의 파편은 특정한 시간을 거점 삼아 계속해서 잔존한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뒤섞여 또 다시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변모한다.


삶의 여러 모순은 복잡한 시간성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무 자르듯 딱딱 떨어지지 않는 생각이, 마음이, 법칙이 되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모두가 시간의 법칙을 벗어난 채 살아가는 어긋난 존재라면 모순은 그 자체로 삶의 원칙이다. 모순은 모순이면서 동시에 모순이 아니다. 서로를 배반하며 공존할 수밖에 없는 사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또 하나의 법칙에 가깝다.


퀴어함은 이미 인간 삶에 내재하고 있다. 퀴어함을 받아들일 때 삶은 그 자체로 명료한 모순이 되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삶을 세밀하게 애정할 수 있다. 보편적인 삶의 원칙을 기반으로 한 퀴어 부부의 이야기는 너무나 독특하면서도 너무나 평범한 가족의 형상으로 거듭난다. 재은과 윤경과 재윤의 이야기가 반드시 퀴어로서만 환원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여느 가족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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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재은과 윤경의 퀴어한 정체성으로 벌어지는 흐름을 좇는 건 중요하다. 두 사람을 통해 바라본 퀴어의 삶을 ‘슬픔에서 유래한 웃음, 웃음에서 유래한 슬픔’이라고 아주 거칠게 말해보고 싶다. 재은과 윤경의 삶 역시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는 웃음과 슬픔이 반복되는 역사다. 그들에게도 소수자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수동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환을 명확히 인식함으로써 유희로 포섭하는 주체적인 해학성에 더 눈길이 간다. <퀴어돌로지>의 공동저자 연혜원은 여성의 삶에 빗대어 퀴어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여성은 자기 안에 내재하는 가부장적 여성성과 공존하는 동시에 가부장적인 세계를 변형하는 과정에서 숭고함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은 퀴어에게 있어 일상 그 자체다.


퀴어는 반反퀴어적인 사회의 가치를 내재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 존재인 동시에 그것을 조롱하고 부수는 능동적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일상적인 투쟁은 삶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요소이지만 역설적으로 끈끈한 연대와 웃음을 만드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혼인신고불수리 서류를 혼인신고서로 여기며 당당히 전시하는 모습, “우린 현행법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란 거지”라고 너스레를 떨며 서류상 보호자가 되기 위해 유언장까지 작성하는 모습, ‘혼인 신고서’를 손에 쥔 게 퍽 기쁘다가도 곧바로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에 사무치게 우는 모습은 이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평범하고 소소하면서도 과장되고 극단적인 퀴어의 삶. 어디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한 개인으로서의 특성을 외면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삶을 편집하는 연극이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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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경험이 다르듯 퀴어 개인의 경험, 퀴어 예술을 보는 시선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떠나서 퀴어함은 이미 모든 삶에 내재해있다는 것, 퀴어에게는 애환과 동시에 웃음을 발굴하는 능동성이 있다는 것이 내가 주목하고 싶은 단편이었을 뿐이다.

 

청년. 노년, 레즈비언, 모녀 관계, 이성애 등 연극에서 다뤄진 소재는 많고, 각각의 카테고리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서사 역시 다양할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피어나든, 그 끝은 퀴어는 부지런히 존재한다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재은과 윤경이 무대를 벗어나 관객 사이를 떠다니며 대사를 나누는 장면처럼. 어디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벽을 두고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낯설 만큼 가깝고 평범한 아무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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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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